미스 리틀 선샤인, (아직까지는) 최악의 영화.
#미스리틀선샤인
1. 개봉일: 2006년
2. 등장인물: 그렉 키니어(리처드), 토니 콜레트(셰릴), 스티브 카렐(프랭크), 폴 다노(드웨인), 앨런 아킨(에드윈 그랜드파), 아비게일 브레슬린(올리브)
3. 감독: 조너선 데이튼, 발레리 패리스
4. 작가: 마이클 아노드
5. 평가: 호평, 상업적 성공, 아비게일 브레슬린의 인상적인 연기, 다수 상 수상 및 후보 지명
남자친구와 이런저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작품평을 나눌 기회가 많이 생긴다.
오랜만에 너무도 혹평하고 싶은 영화라 기록을 남긴다.
1. 작가가 사랑하지 않은 캐릭터, 그래서 떨어지는 개연성
나는 영상 작품을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 시나리오, 연출, 연기‘이고, 그중에서도 탄탄한 시나리오는 매우 중요하다.
브레이킹배드나 비밀의 숲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시나리오의 완결성은 ‘인물에 대한 깊이’가 결정짓는 것 같다.
하지만 미스 리틀 선샤인에 나온 인물들은 한 명도 깊이 있지가 않았다.
며칠 전에 자살 시도를 할 정도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동생이, 누나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함께 하다니.. 먹을 것도 어떤 사람도 보고 싶지 않을 텐데..
또 부부는 왜 그토록 싸우는지, 남편은 왜 지독하게 ‘성공의 법칙‘에 매달리고, 부인은 남편을 구박하기만 하는지.
할아버지는 내내 주구장창 섹스만을 최고선으로 여기다가, 갑자기 가는 도중에 돌아가셨다. 게다가 시체를 옮기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왜 그렇게 표현했을지. 나름 코믹한 요소로 넣었겠지만 경찰관(그리운 행크)이 성인 잡지를 보고 눈감아주는 그 장면까지도, 고인에 대한 칭송도, 사실표현도 아닌 모욕이었다. 보는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할아버지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했어야 하나?
이처럼 인물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느껴지지 않아서, 어떤 애정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작가가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는데 보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2.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 소재선정도 잘못되었고,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도 잘못되었다.
내 추측으로 감독은 대강 이런 내용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미인대회’를 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 어린아이들까지도 머리를 한껏 치장하고 진한 화장을 하고, 노출이 심한 원피스를 입고 열리는 대회는 잘못되었다. 뭐 이 정도의 문제제기. 진지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아동 성상품화’.
그러나 감독의 소재선정은 너무나도 틀렸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성 상품화가 되고 있다는 그 사실은 절대로 희화화시킬 수 없는, 전혀 웃기지 않고 보는 사람도 웃을 수 없는 소재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어떤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의 큰 목표는 막내 올리브가 미인대회 무대에 설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모들. 심지어 웬 늙은 MC 아저씨가, 무대에 선 여자 아이들에게 한 소절씩 노래를 부르면서 얼굴을 쳐다보는 장면은… 정말이지 다시는 보고 싶지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과연 아동 성상품화가 이렇게 우습게 표현될 수 있는 소재인가?
또 풀어내는 방식도 잘못되었다. 대충은 그런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은 알겠다. 올리브의 오빠나 아빠가 무대에 올리지 말자고 반대하고… 뭐 그런 대사도 나왔으니까. 그런데 감독의 진지함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게 우습고 웃긴가? ‘할아버지가 원했을 것’이라면서 마지막에 올리브가 춘 춤에서는… 진지함이라고는, 문제의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영화의 단순하고 가볍기 짝이 없는 소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이 춤을 가족들이 같이 춘다… 이게 정말 영화관에서 상영되었는지 그 시절 전 세계의 수준이 한심하기까지 하다. 어린 배우는 무슨 잘못이야. 관객이 느껴야 하는 감정과 감상은 대체 무엇인가? 이토록 폭력적인 장면에서 ‘가족은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진부한 메시지를 느껴야 하는 건지.
3. 2006년에 개봉되어서 천만다행이다. 10년만 늦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