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
활자 읽기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는 나였지만 어려운 책이었다. 정확히는 소설이지만 어려웠다는 말인데 작가의 섬세한 서사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7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읽고 있자니 문득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라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생각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는 이유가 있었군"
오르한 파묵은 동서양의 문화가 동시에 공존하는 터키의 대표적인 소설가다. 이처럼 상이한 다른 문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터키가 유일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르한 파묵은 터키의 문화와 배경이 만들어낸 작가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을 배경으로 하여 문화의 충돌을 섬세하게 그려냈고 인물들의 고뇌와 갈등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 책은 추리소설이나 추리소설로 분류하기는 애매한 감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살인자를 찾는 과정이지만, 읽다 보면 살인자를 찾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에 시선이 간다. 그렇게 시선이 흘러가도록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사건을 두고 나무, 나비, 황새, 지나가는 개 까지 저마다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자신들의 사연을 말하는 모습은 작가의 의도가 살인자 찾기에 초점이 맞추는 것이 아닌, 책 속의 모든 사물과 생명체를 바라보게 하고 이를 독자가 전부 흡수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 소설은 성공했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 쉽게 드는 생각 (그래서 범인이 누군데? 그냥 건너뛰고 뒷부분만 읽을까?) 하는 유혹이 없다. 개인적으로 소설책은 속독하는 편이지만이 책은 놓치면 안 될 세세한 표현들이 많고 뒤로 갈수록 풍부한 표현력에 놀라고 즐거워서 한 줄씩, 꼼꼼하게 읽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모든 화가들은 살아있는 말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더라도 사실은 기억을 통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말과 말을 그리고 있는 종이를 동시에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빨강에는 등장인물이 많다. 한번 나열해 보았다. 시체, 카라, 개, 살인자, 에니시테, 오르한, 에스테르, 세큐레, 나무, 나비, 황새, 올리브, 금화, 빨강, 오스만, 악마, 수도승, 마지막으로 여자라고 불리는 사람까지 총 18명(마리, 그루, 개 등등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1권에 이어서 2권에서는 이 등장인물들이 다시 나와 저마다의 목소리를 낸다.
독특하다. 이런류의 소설을 본 적이 없는 나는 비슷한 이름(에스테르, 에니시테) 때문에 초반에는 애를 먹기도 했고, 맥을 한 번 끊고 다시 책을 들었을 때는 기억이 나질 않아 공책을 꺼내 인물정보를 적어야 하나 생각을 할 정도로 복잡했다.
1권을 볼때 까지 그 감정은 여전했으나 2권을 들었을 때는 점차 적응해 갔다. 결국엔 다음엔 누가 나와서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각기 다른 사람의 감정에 이입해서 사건 전개를 지켜보는 과정도 재밌었다.
여기서 말하는 스타일은 화가의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말하며, 서명은 그림 아래 자신의 이름을 적거나, 도형을 그리는 등 작가 고유의 표현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스타일과 서명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스타일과 서명은 미완성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오만함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화가의 독자적인 화풍과 서명은 당연한데 왜 이렇게 말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모네의 잔잔한 화풍과 피카소의 독특함은 스타일만 봐도 그들의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만큼 스타일적인 부분에서 확고해졌다는 뜻이고 그 확고함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것은 화가로서, 작가로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이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에 이 책의 배경이 되는 1951년 터키의 문화적 배경을 살펴봤다. 그리고 그 의구심을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 당시 사람들의 의식에는 자기 자신의 스타일보다 신이 더 우선시였고, 그림 역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그리는 것이 아닌 신의 시각으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화가의 스타일과 서명이 드러나는 것은 미완성이라고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화가들 사이에서는 어떤 스타일이 자리 잡게 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전개는 계속 충돌 양상을 띄게 된다.
여기서 제목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빨강은 무엇을 뜻하는 거지? 살해당한 자의 피일까? 아니면 화가들의 고뇌를 말하는 것인가? 싶었는데 1권의 마지막 장에 드디어 빨강이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예측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두 페이지에 걸쳐지는 긴 분량이라 요약해서 적어보려 했지만 간추리기엔 버릴 것이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부분은 직접 읽어보길 추천한다.
"나는 빨강이어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오르한 파묵의 이름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내 이름은 빨강>을 읽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몇 달 전 이스탄불을 방문했고 서점을 여러곳 들렀는데 가는 서점마다 오르한 파묵의 책은 한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으며, 그의 소설과 더불어 그의 일대기와 자서전이 즐비했고 그 벽면 앞에서 오르한 사람들이 파묵의 책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유명한 작가면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책을 주문했고 어렵게, 그리고 오랜시간을 들여 완독했다.
<내 이름은 빨강>은 단순히 살인 추리 소설이라기보다는 곳곳에 화가들이 충돌하듯 터키의 문화적 충돌이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터키의 역사적 배경을 궁금하게 했으며 검색을 하게 하고 터키의 오스만제국 쇠락 과정까지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 책이었다.
서평을 작성하기 위해 다시한번 책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10년뒤에 다시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