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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 Apr 15. 2020

<고도를 기다리며>의 다른 이름 '종전을 기다리며'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새뮤얼 베케트

어느 한적한 시골 언덕, 시간은 저녁 무렵, 중년의 두 남자가 우두커니 서서 ‘고도’라는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그들의 기다림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고도’를 본 적은 없다. 만약 오늘 고도를 보지 못한다면 내일도 기다릴 것이고 모레도 그들은 ‘고도’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끝내 마지막까지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고도’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극으로 처음 선보이게 됐을 때, 연출자가 저자 베케트에게 한 질문이다.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겠죠”



결론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며> 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겨진 여백의 책이다.  나는 작가가 보내는 메시지를 수용자인 내가 읽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 그런데 작가조차 말해주지 않는 존재라니…


그 때문에  작품이 발표되었던 20세기 초부터 수도 없이 많은 해석들이 존재한다. 이름 날리던 유명 공연에 노벨상까지 받은 명성 있는 작가의 작품이니 알 만하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도대채 누구일지 궁금한 나에게 이 책은 결국 사유하게 만들었다.     



['고도를 기다리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익살스러운 두 사내     


한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구두끈을 매려 안간힘을 쓰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의 남자가 여기서 뭐 하냐고 물어보며 등장한다. 그리고 약간은 바보 같으며 호흡이 맞지 않는 대사를 서로 내뱉는다.


대화 내용은 물 위를 걷는 듯 가볍고 익살스럽다. 할 수 있는 아무 말은 다 하는 것 같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당신이 고도입니까?”라고 묻고 아니라고 하면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들의 '아무 말 대잔치'은 다시 이어진다.     



에스트라공 : 멋진 경치군. 자, 가자.

블라디미르 : 갈 순 없어

에스트라공 : 왜?

블라디미르 :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 참 그렇지.     


수도 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대사 중 하나다. 신발을 신다가, 노래를 하다가, 춤을 추다가 이 대사를 반복한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두 명의 남자가 이틀에 걸쳐 나타나게 되는데 그들의 존재도 심상치 않다. 그렇게 둘은 넷이 되어 다 같이 아무 말을 하고 헤어진다. 그중 한 명은 다음날 다시 그곳을 지나게 되는데 자신이 어제 그곳에 왔었다는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쯤 되니 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책으로 처음 접했지만, 실제 공연장에서 연극으로 본다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대사와 행동이 매우 예측할 수 없고 황당했기 때문이다.     


두 남자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고도를 기다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냥 기다림 자체를 즐기는 듯하다. 오히려 고도가 오면 안 될 것 같았다. 독자들과 관객들도 그들이 대화 속 표면적인 익살스러움에 빠져들어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빛과 어둠은 늘 함께 존재하는 법, <고도를 기다리며>의 배경을 알고 나면 유쾌하게 웃고 있을수만은 없다.


사뮈엘 베케트 (1906~1989, 아일랜드)


종전을 기다리며     


엄격한 청교도 가정에서 자라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자기의 작품과 그의 삶과 항상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실제 그의 집은 그의 작품 속 무대와 똑같이 연출되고 있었고, 자신의 환경을 작품화하는 사람이었다.     


1939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보클루즈에 숨어 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베케트는 두 번째 소설인 <와트>를 집필하게 된다. 그 소설은 훗날 <고도를 기다리며>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작품화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작품 해설이 책과 함께 실려있다.


과연 ‘고도’는 베케트가 그토록 기다리던 종전이었던 것일까. 지금까지의 작품 해설은 종전 쪽으로 치우치는 분위기지만 그리고 작가의 환경, 그리고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했을 때 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블라디미르 : 그럼 가자

에스트라공 :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이 책을 보고 있자니 소리 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의 봄 같은 표현인 역설법이 떠올랐다. 익살스러운 대화와 몸짓, 이 극의 전반적인 웃음을 담당하는 것들과 비극을 농담으로 순화시켰던 것 말이다. 오히려 힘든 상황을 겪거나 생각이 많을수록 표현이 간결하고 짧아지는 경우가 있다. 베케트는 아마 자신이 겪는 슬픔을 익살스러움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가볍게만 느껴졌던 <고도를 기다리며>가 내막을 알고 보니 더 가깝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식의 표현을 했던 나의 순간들이 생각났고 앞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유명한 작품들이 그렇듯 책 속의 내용 의외에도 배울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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