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주치는 강아지와 고양이에 행복해지는 당신이라면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필명의 작가들이 아무리 많다하지만 가벼운듯하면서도 눈길이 가는 귀여운 필명이다. 의사 가운을 입은 고양이 표지를 보니 책의 내용이 얼추 짐작이 간다. “이 책은 분명 반려동물에 대한 수의사의 귀여운 에세이야!” 그리고 그 짐작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아이들의 사진과 김야옹 작가의 문체가 특히 귀여워서 읽는 내내 행복했기 때문에 그 감성을 이어가 나도 귀여운 마음가짐으로 <사연 많은 귀여운 환자들을 돌보고 있습니다>의 서평을 써보고자 한다.
얼마 전 집 앞을 걷다가 조그만 강아지가 달려가는 것을 봤다. 그리고 그 뒤로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급하게 소리를 지르며 따라가는데 딱 봐도 동물병원을 탈출한 강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따라가니 강아지가 갑자기 차도로 돌진하려는 게 아닌가! 나는 황급히 몸을 날려 강아지를 잡았고 솜 뭉텅이 같이 하얗고 작고 예쁜 강아지는 무사히 동물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뿌듯해하면서 나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중 “너 강아지 무서워하잖아, 웬일이야?”라고 하는 친구의 말에 “아 맞다!” 하며 문득 내가 놀라워서 입을 벌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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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일화를 소개한 이유와 이 책을 이번 달 PRESS로 선정한 이유는 조금 특별하다. 올해 초 새로운 지역으로 터전을 옮기고 이래저래 삶의 패턴이 많이 뒤바뀔만한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운 마음을 보람 있는 활동으로 가다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봉사활동을 찾다가 지역 봉사활동 단체에 들어가게 됐는데, 연탄 봉사, 보육원 활동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코로나 19로 인해 봉사활동을 받아주는 곳은 유기견 보호소밖에 없었다.
평소 살면서 강아지를 가까이 접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눈으로는 예뻐하지만 막연한 무서움이 있었고 ‘설마 물지는 않겠지! 조용히 견사만 청소하고 와야겠다’ 생각하며 방문했고 첫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강아지와 고양이를 떠올리면 가정집에서 평화롭게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귀여운 모습만 생각했지 냄새나고 축축하고 기본적인 환경조차 갖춰지지 않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런 환경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왜 진작에 몰랐을까 하는 마음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면서 몇 번의 봉사활동을 더 나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봉사자들이 올 때마다 우렁차게 짖는 것에 지레 겁을 먹었던 나는 그것이 공격이 아닌 반가움의 표시라는 것과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무한한 애정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 그리고 나쁜 사람들의 횡포로 인해 학대를 당해 사람을 피하게 된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는 알고 있는 지식과 알아야 하는 지식 사이에 필연적으로 간극이 있는 존재들이라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 간극이 아주 넓어서 내가 다른 수의사만큼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많은 편이다. p50
그렇게 유기견 봉사활동을 다니던 와중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행운이었다. 본문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예쁜 고양이를 보고 마음 같아서는 호들갑을 떨면서 콧소리를 한껏 섞어 ‘애귀양~ 반가웡~ 하면서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다 늙고 머리 빠진 늙수그레 원장이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상한 원장으로 소문나서 그나마 없는 병원 손님도 다 끊길 것이기 때문에 항상 엄수근 즉, 엄숙, 근엄, 진지, ’엄근진‘ 애티튜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라는 이런 솔직한 고백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도 했고 김야옹작가는 측은지심이 많고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수의사로서 사명감이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줬다.
또한, 귀엽다는 이유로 쉽게 데려와서 치료비 문제로 쉽게 버리기도 하는 사람들과 길거리에서 다친 아이를 데려와 없는 살림에 자비로 치료를 하고 싶다고 울먹이는 취준생의 이야기까지 상반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미소가 지어질 때도, 안타깝고 화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장과 2장은 동물병원을 거쳐 간 강아지와 고양이의 일화들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면 3장은 김야옹 작가가 수의사가 되기 위한 했던 처절한 노력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많다. 김야옹 작가를 포함하여 자신을 희생해서 아이들을 보살피려고 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수의사들이 이 세상에 많다는 것, 입양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된다는 것과 생명을 키우는 것에는 그 생명이 주는 행복만큼의 슬픔도 같이 따르기 때문에 늘 신중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생소한 질병들과 공혈견, 병돌이의 이야기까지 읽는 내내 정감 가고 따뜻한 문체가 이미지화되기 좋은 생생한 묘사 덕분에 잔상이 오래 남는 책이었다.
“뭐, 말이 되건 안 되건.. 제 생각에는 말이에요. 정은 주지 마세요,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돌봐주고... 물론 아이들이 떠나면 서운하겠지만, 그 아이들이 가야 또 다른 아이들을 받아줄 자리가 생기니까요. 지금은 아쉽고 서운하지만 우리에게는.... 내일은 또 내일의 고양이가 있으니까요.”
-p143
책에 담긴 크고 작은 사건 하나하나를 담고 싶지만 특별하지 않은 아이들이 없고 소중하지 않은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요즘 내가 활동하는 유기견 보호소 카페에 글을 남기면 스텝들이 아이들을 예뻐해 줘서 고맙다고 댓글을 남겨주시는데 나에게 기쁨을 주고 가르침을 준 사람들과 아이들인데 누가 누구를 고마워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며칠 전 내가 다니는 천사들의 보금자리라는 유기견 보호소에 후원하는 아이가 생겼다. 지난봄 첫 방문 때 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던 강아지인데 처음으로 손길을 주었던 귀여운 아이다. 원래 이름은 ‘여름이’인데 망나니짓을 해서 애칭은 ‘망나니’이다. 가끔 정말 망나니짓을 하는 게 꼭 어릴 적 내 모습 같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새로 공부를 시작하여, 삼십 대 중반에 수의대에 입학했다. 어릴 때무터 아픈 동물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결국은 하늘이 돕기라도 한 듯 우여곡절 끝에 수의사가 되었다.
투철한 직업 정신과 따뜻한 측은지심으로 생명들을 돌보는 게 그의 특기이자 직업, 도로에 뛰어다니는 강아지를 점프해 구조하고, 수영장 물속에서 벌레를 구조해주는 섬세한 측은지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의 동물병원 앞엔 늘 길고양이들을 위한 작은 사료가 준비되어 있다.
사연 많은 고양이와 강아지 환자들을 보며 자주 울고, 자주 웃는다. 서울에서 자그마한 동물병원을 운영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수의사가 되고자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