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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 Dec 22. 2020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보존과학의 세계

Ars longa, vita brevis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예수를 원숭이로…

스페인서 명화 복원 ‘대참사’”



8년 전 스페인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초유의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라고사 근처 보르하 마을 성당에 있던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의 프레스코화인 <에케 호모>가 세월의 풍파를 견디지 못해 망가져가자 복원작업이 착수된 것. 하지만 불운하게도 비전문가였던 80대 할머니 세실리아 히메네스가 작업을 맡게 되면서 해당 그림 속의 예수 얼굴은 우스꽝스러운 원숭이의 형태가 돼버렸다.



현지 언론은 이 사건을 두고 ‘이 원숭이를 보라’라는 뜻의 ‘에케 모노(Ecce Mono)’라는 별칭을 붙여주었으며 그 후로 많은 사람들에의 입에 몽키 그리스도라는 별명으로 오르내렸다.

알고 보면 예술계의 복원 실패 사례는 꽤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정확한 예술품 복원에 대한 자격이나 제한 등의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빈번히 벌어지는 작품 훼손의 사례를 겪어야 했던 스페인 예술품 보존협회(ACRE)는 “이런 사고는 불행하게도 생각보다 흔하다”. “이 분야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현행법상 이에 대한 규제 강화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오늘날도 여전히 많은 예술품들은 엉터리 복원에 의해 망가져가고 있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해 밤이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는 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예술작품의 직관람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근현대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개중에는 무려 기원전 BC 시대를 넘나드는 지극히 오래된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토록 많은 명작들이 우리와 동시대에 함께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에는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본인의 맡은 임무를 묵묵히 다하는 복원가들의 마술이 숨어있다.

본 책의 김은진 저자 역시 여행 중 우연히 미술품 복원 현장을 눈으로 목격하게 되었고, 그 후로 회화 보존을 공부하여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연구사로 전공을 틀게 되었다고 한다. 우연히 알게 된 미술 작품의 생명 연장술이 저자의 인생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이다.
 
평소에는 접하기 힘들지만 알고 보면 무궁무진한 매력을 가진, 그리고 알게 모르게 존재의 필연성을 가지게 된 ‘미술품 보존과학의 세계’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지금 소개할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이다.



미술 작품의 생명 연장, 보존과학의 세계




복원-가 (復元家)의 사전적 의미는 ‘손상된 미술품이나 건축물 따위를 본디의 상태로 되돌리는 사람’이다.
 
‘미술 작품의 생명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 긴 생명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의 손길로 지켜진다.’는 본문의 말처럼 예술가의 작품들이 오래도록 보존되기 위해서는 복원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복원의 기술은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함께 진화되어 왔는데, 이전에는 스펀지에 포도주를 적시거나 빵을 문질러 닦아내는 사람의 손맛에 의존하는 1차원 적인 기술이 대다수였다면 현재는 특수 약품과 레이저 등을 혼합하여 철저히 분석한 과학적 메커니즘에 의한 복원 방법을 선호하는 편이다.
 
전혀 다른 분야라 생각했던 예술과 과학의 만남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보존과학은 혼자 불쑥 자라난 학문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두 학문, 예술과 과학이 공생하는 과정에서 싹이 텄다.”

- p.299


25번의 복원의 손길을 받은 작품이 있다


복원과 관련한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야간 순찰>이라는 작품 이야기를 꼽고 싶다.
 
<야간 순찰>은 거대한 크기로 인해 놀라운 존재감을 자랑하는 작품으로 네덜란드의 화가인 렘브란트의 걸작 중 하나다. 네덜란드의 황금시대 절정기에 그려져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작품으로 유명한데 이 작품은 동시에 남모를 숱한 수모를 당한 불운의 작품으로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이 작품은 1911년 실직한 구두 제작공이 구둣주걱로 그림을 찢으려 시도하였으며, 1975년에는 실직한 교사가 빵 칼로 그림에 지그재그 형태의 흔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몇 년 후 해당 그림은 복원가들에 의해 수습이 시도되었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여전히 손상의 흔적이 남아있게 되었다.
 
1990년에는 정신 병동에서 탈출한 한 환자가 산성 액체를 가지고 들어가 그림에 뿌리기도 하였는데 경비원들이 재빨리 현장을 발견해 캔버스에 물을 뿌려 산이 바니시 층에만 침투하는 데에 그치긴 하였으나 이렇게 많은 테러를 당한 작품은 그 이후로도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후 복원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복원을 시도하였고 현재까지 최소 25회 복원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약 복원가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네덜란드 국립 미술관의 좋은 목에 위치한 <야간 순찰>의 자리를 잃을 뻔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복원가는 윤리의식을 가져야 하는 직업 중 하나라고들 한다. 단순히 손상된 부분을 복원하는 것이 아닌 해당 작품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전공 지식, 그리고 왜 복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동반되어야만 작가의 본래 의도의 손상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복원이라는 작업의 특성상 100% 원형으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기존 작품에 사용된 물감과 캔버스의 특징을 모두 염두에 두어 최대한 티 나지 않도록 살려내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다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존중을 반영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간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그림에 가치를 더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요소라고 주장하며 무조건적인 클리닝에 대해 거북함을 표현하는 이들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많은 곳에서는 복원에 대한 논란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작가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해 복원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최대한 전달자의 입장에 집중하여 ‘티가 나지 않는’ 복원 작업에 집중한다면 소크라테스의 명언처럼 긴 예술을 후대에도 길이길이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막중한 임무 속에서 신중한 작업을 진행 중일 복원가들의 무거운 어깨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너무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그 첫 번째는 작품의 원형에 대한 존중이다.” -p.16
 
“무조건적인 배접과 간섭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보존가들 사이에서 싹텄고, 작가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지켜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p.145
 
“작가 의도와 다르게 작품의 원래 모습이 변해버렸을 때라고 한다. 그래서 보존 처리에 사용하는 재료는 반드시 제거가 가능한 것으로 써야 한다. 문제 발생 시 원래 물질은 훼손하지 않고 복원 처리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게 말이다.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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