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Dec 27. 2023

꿀대구와 끝내 나오지 않는 몬주익 분수쇼

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13

호텔 레스토랑에서 보이는 세비야의 전경

10월 7일, 세비야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 호텔 잉글라테라에서의 조식도 마지막이다. 조식은 항상 첫 타자로 급하게 먹고 나가느라 사진도 못 찍었는데 오늘은 여유롭게 느지막이 내려가서 먹었다. 빨리 먹고 나가느라 몰랐는데 늦게 나오니 그동안 못 봤던 한국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이 호텔엔 한국인이 없는 줄 알았는데... 심지어 많다. 한국인들 원래 빨리 먹고 나가는 거 국룰 아니었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어 본 조식 사진은 이게 전부다. 왜냐면 먹느라 바빠서. 이나마도 먹다가 찍어서 형편없다. 엄마 때문에 식당에선 못 먹는 하몽은 호텔에서 실컷 먹었다. 치즈와 함께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바르셀로나로 가는 부엘링 비행기는 오후 1시 45 분행이라 오전 시간은 여유로웠다. 특별히 가고 싶었던 곳은 없어서 세비야의 라떼 맛집 Utopía Café에 다시 갔지만 토요일은 휴무라 문을 열지 않았다. J의 탈을 뒤집어쓰고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역시 P는 P일 뿐. 당일 휴무 체크 따위 하지 않는다. 허허. 


어쩔 수 없이 근처 다른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여행 팁은 맛집과 카페 리스트는 구글맵에 많이 찍어올수록 좋다. 여행하다 근처에 점찍어둔 곳이 있으면 따로 검색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딱 한 군데만 정하고 왔다가 허탕을 치게 되면 다른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현지에서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들어가는 곳이 오히려 성공 확률이 높거나 숨겨져 있는 맛집일 수도 있지만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닥치는 대로 리스트업 해오자. 

그래서 간 곳은 'Confitería La Campana' 라 깜빠냐 같은 경우, 130년 된 베이커리 카페로 워낙 유명한 곳이다. 이른 아침이었는데 이미 카페 안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손님도 많았을뿐더러 일하는 분들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직원들 대부분 나이 든 분들이었는데 젊은 사람들처럼 친절한 느낌은 없지만 불친절한 게 아니라 거칠지만 다정하달까. 

카페 안은 좁고 긴 형태였는데 앉는 좌석은 거의 없고 대부분 서서 먹거나 가지고 나갔다. 엄마는 아이스크림을, 나는 라떼를 마시고 싶어서 한꺼번에 주문하니 커피를 주문하는 곳과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곳이 달랐다.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사진 속 병이 진열된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해야 한다. 계산은 한꺼번에 해준다. 처음엔 서서 마셔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자리가 났다. 

대신 의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엄마는 앉고 나는 서서 마셨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스페인에선 아침에 서서 마시는 커피는 일상이라 나도 기꺼이 동참해 본다.(그래도 앉고 싶었다;;;)

처음엔 에스프레소가 잘못 나온 줄 알았다. 하지만 라떼가 맞다. 굉장히 진하다. 라떼에 왜 설탕을 주나 했더니 이래서 줬구나. 원래 커피에 시럽이나 설탕 넣어서 마시는 거 싫어하지만 중간쯤 설탕을 넣어보고 이유를 알았다. 유럽 커피들이 진하니까 설탕 넣어서 먹는구나.


바르셀로나로 올 때도 부엘링 이용했는데 별 이슈 없이 도착했다. 다만 세비야 공항에서 물 사려고 자판기 이용하다가 헤매서 결국 현지인 분께 물어봐서 한 건 안 비밀이다. 자판기 사용이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생각해 보니 한국 지하철에 있는 자판기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그것도 헤맬 것 같긴 하다. 내가 사용해 본 자판기라곤 그 옛날 종이컵에 믹스 커피 뽑아 마시던 게 전부다.;;; 왠지 어르신들 키오스크 어려워하는 기분을 알 것만 같아.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해서 이번엔 공항버스를 타고 카탈루냐 광장 근처에 내렸다. 바르셀로나에서 3박을 할 곳은 H10유니베르시타트 호텔이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가까워서 정한 곳인데 직접 가서 보니 H10 호텔 지점이 워낙 많아서 어딜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세비야와 바르셀로나 호텔 분위기는 천지차이다. 정말 많이 다르다. 세비야가 지방 휴양지 느낌이라면 바르셀로나 호텔은 정말 딱 도시 속 호텔 그 자체. 직원들의 태도, 룸, 분위기 등등 전부 도시 그 자체다. 이 호텔은 예약한 숙소 중 가장 비싼 곳이었는데 룸은 세비야의 호텔 잉글라테라 하고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부족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워낙 넓은 곳에 있었다가 와서 그런 거지. 여긴 땅값이 비싼 바르셀로나 한 복판이잖아. 게다가 세비야는 아미고가 업그레이드도 해줘서 그랬던 거지. 


하지만 조식은 이곳 H10호텔이 종류도 많고 더 좋았다. 짐을 풀고 바로 밥을 먹으러 나왔다. 아침 조식 외엔 먹은 게 없어서 거의 아사 직전이었다. 

지나다니다가 몇 번이나 봤던 곳인데 '화장품 한국'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웃기냐. 현대 차와 삼성 지점은 본 적 있는데 여긴 한국 화장품 지점인가? 


암튼 식사하러 간 곳은 꿀대구로 유명한 '시우다드 콘달'이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정말 거의 뛰다시피 갔다. 왜냐면 배가 고팠기 때문에. 웨이팅이 있다는 얘긴 들었는데 이 시간에도 1층은 좌석이 거의 없었다. 입구에 여자 매니저가 안내해 주는데 내가 급해서 다른 자리 있냐고 묻지도 않고 1층 바테이블에서 먹겠다고 했다. 


매니저가 굉장히 의아하게 보며 엄마가 나이가 있으신데 불편하지 않겠냐며 2층에 좌석이 있는데 괜찮다면 그곳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아, 이곳 2층도 있었어? 원래 내가 배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이다. 약간 헐크가 된달까.  


그렇게 안내받은 2층이 오히려 아늑하고 좋았다. 우리 담당하는 서버 분은 내가 스페인에서 본 식당 직원 분 중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싹싹하게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라면 당연한 속도일 테지만 여기선 그런 속도를 바라는 건 금물이라 빠릿빠릿한 사람을 보니까 신선했다. 

그 유명하다는 꿀대구를 엄마와 하나씩 시켰다. 음... 맛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입맛엔 그냥 그랬다. 하나 다 못 먹었다. 맛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다. 배가 고파서 거의 다 먹긴 했지만 굳이 다시 가서 먹을 맛은 아니었다. 물론 내가 생선을 요리보다는 초밥이나 회로 먹는 걸 더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다른 메뉴도 2개 정도 더 시켰다. 하나는 맛조개였는데 맛있었다. 다른 하나는 소고기 스테이크 타파스였는데 마늘빵 위에 스테이크 올려져 있고 위에 스페인 고추(?)가 올려져서 이쑤시개 같은 걸로 꽂아서 나오는 건데 사진도 못 찍을 정도로 당황했다. 


어쩐지 서버가 메뉴 주문할 때부터 너 진짜 이거 하나만 시키는 거 맞아?라고 물어보더라. 이거 존x 작으니까 최소 2개는 시켜야 해,라고 해주지. 왜 물어만 보고 하나라고 하니까 수긍한 건데...

스페인 타파스는 정말 말 그대로 한입 푸드라는 걸 내가 간과한 거지. 정말 나온 거 보니까 유치원생이 먹어도 될 한입 푸드였다. 엄마가 됐다고 했는데 굳이 나눠 먹겠다고 그걸 잘랐지. 허허. 간에 기별도 안 갔다.

스페인 가서 타파스 시킬 때 사이즈 잘 보고 시키고 아니면 서버한테 꼭 물어봐야 한다. 나는 너무 과하거나 너무 약소하게 시키는 게 문제구나. 

여기선 술은 안 마셨다. 갈증이 나서 물만 시켜 마시고 다 먹고 난 후 엄마만 커피 시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달라고 하니 가져온 것은 쓰디쓴 커피와 얼음이 든 글라스. 하하. 

이럴 줄 알고 아이스 마시지 말라고 했는데 굳이 괜찮다며 시켜서 반 이상을 남겼다. 커피가 굉장히 진한데 저 글라스에 부어서 마셔도 진하다. 그냥 유럽 쪽 가면 아이스 메뉴를 시키지 말자. 

배가 부르고 나니 마음이 또다시 태평양처럼 넓어져서 젤라또를 줄 서서 먹었다. 평소라면 줄 서서 먹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먹지도 않을 젤라또 먹겠다고 몇십 분을 줄 섰다. 

'루끼아노스'라고 유명한 젤라또 집인데 맛집 리스트에는 있는데 줄 서 있는 거 안 봤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거다. 긴 줄이 있길래 뭔가 해서 봤더니 루끼아노스였다. 줄 서서 미리 주문을 어떻게 하는지 창밖으로 뚫어지게 쳐다봤다. 대략 원하는 컵 사이즈를 미리 계산하면 번호표를 받고 번호를 부르면 베스킨라빈스처럼 원하는 맛을 직원한테 말해주면 된다. 번호는 당연히 스페인어로 불러주는데 자기 차례인지 모르겠다 싶으면 그냥 앞에서 대기하고 수시로 직원한테 번호표 보여주며 어필해도 된다. 직원들이 젊어서 차례 오면 알아서 영어로 불러준다. 

이 젤라또 먹겠다고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맛은 그 기다림을 충족하고도 남았다. 나는 티라미수와 피스타치오였나? 두 가지 맛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다만 조금만 더웠다면 더 맛있었을 텐데 날씨가 쌀쌀해서 약간 추웠다. 


오늘의 메인은 사실 '몬주익 분수쇼'였다. 몬주익 분수쇼는 목, 금, 토만 하고 밤 9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된다. 숙소로 가서 쉬다가 시간 맞춰 나와 지하철을 탔다. 진짜 스페인 지하철 최고다. 최고로 덥다. 젤라또 먹을 때만 해도 쌀쌀해서 외투 입고 나왔다가 땀으로 샤워했다. 


한국처럼 지하철 냉난방 시설 잘 되어있는 곳이 없다. 더우면 덥다고 지랄, 추우면 춥다고 지랄하는 사람들은 진짜 싹 다 유럽 지하철 타고 다니게 해야 한다. 지하철 안은 에어컨이 거의 안 나오고 플랫폼은 숨통이 턱턱 막힌다. 10월에도 이런데 한 여름에 지하철은 어떻게 타고 다니는 겨. 


심지어 몬주익까지 갈아타고 가야 했다. 미리 노선을 파악하고 왔기에 망정이지 헤매기까지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대중교통은 지하철 밖에 이용 안 했는데 T캐주얼 티켓을 사서 다녔다. 몬주익까지 가는 환승 통로에서 불시 검문을 당했다. 오렌지 색 유니폼 입고 덩치 큰 두 사람이 나와서 일일이 표 검사해서 무슨 일 난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이것이 말로만 듣던 불시검문! 언제 어디서 할지 모르니 표는 꼭 사서 다니자.

역에 도착해서 출구로 나갔는데 사람이 엄청 많았다. 게다가 역 앞에 웬 오토바이들은 그렇게 많은지. 도쿄 리벤저스 불량배들이 총 출동한 줄 알았다.(일본 애니 얘기다. 몰라도 된다.) 나는 이때만 해도 이 사람들이 죄다 몬주익 분수쇼 보러 가는 줄 알고 따라갈 뻔했다.

근데 아니었다. 가는 길에 보니 무슨 페스티벌이나 장이 들어선 것 같던데 줄 서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 맞은편에도 경기장 같은 곳이 있어서 안에 함성 소리가 장난 아니었다. 주말 밤이라 사람은 많았는데 다들 분수쇼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가더라. 이곳 사람들은 분수쇼를 하도 많이 봐서 감흥이 없는 줄 알았지. 우리가 남산에 자주 안 가는 것처럼.

분수쇼는 안 하는데 왜 레이저는 쏴줘서 설레게 만들었어...전기세도 아껴야지

한 시간 전에 가야 미리 자리를 맡아 놓을 수 있다고 들어서 한 시간 전에 갔건만 자리가 남아돈다. 눈치가 빨랐으면 이때 눈치챘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꽤 오기 시작해서 당연히 하는 줄 알았다. 왜냐면 음료수 파는 아저씨도 호객을 하며 돌아다니는 데다 심지어 옆에 앉아있던 현지인에게 분수쇼 하는 거 맞냐고 물어보니 한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원래 하기로 한 밤 9시가 되었는데도 저 앞에 분수대에선 도통 물 한 방울 튀어 오를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세계 3대 분수쇼라며, 실제로 보니까 엄청 거대하던데 빨리 물을 내뿜으라고!


하지만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면서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이게 다 시간 약속 지키지 않는 게으르기 짝이 없는 스페인 공무원들 때문일 거라고 굳게 믿었던 나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30분이 넘어서면서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에도 오늘 분수쇼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럽 여행 카페에서 몬주익 분수쇼가 스페인 가뭄으로 인해 무기한 중단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헉!! 망할!!! 언제부터 중단했던 거야. 알아보고 올 때만 해도 그런 얘기 없었는데... 세상에, 론다에서 가이드와 토론하던 가뭄이 바르셀로나에도 영향을 끼쳤네. 누구 탓을 하겠는가. 이게 다 유해한 인간의 탓이지. 이곳 사람들도 잘 모르는 것 보면 중단 된지 얼마 안 된 건지, 아니면 제대로 공지가 안 된 건지 모르겠다.


나오지도 않는 분수를 1시간이 훨씬 넘도록 지켜보며 뒤에서 들리는 고막테러 버스킹까지 참아내고 있었건만. 허탈한 마음에 엄마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오는 지하철도 역시 덥고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엄마한테 자리 양보를 선뜻 해준 현지인 분은 고마웠다. 몇 몇 젊은 사람들은 지하철 안에서 신나게 악기 두드리며 노래하다가 경찰한테 제지 받았다. 우리 같은 여행객들은 그런 돌발성 이벤트들이 재미있었지만 현지인 어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차더라. 세상 살아가는 게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구나. 그분들이 한국의 1호선을 타봤어야 하는데...허허.


엄마는 이미 잘 시간이 지난터라 서둘러 장만 보고 숙소로 복귀했다. 삶도, 여행도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저 그때 그때 다가오는 것들을 즐길 뿐. 분수쇼는 비록 보지 못했지만 우리는 애써 저녁 산책을 잘 하고 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마어마한 누에보 다리와 세비야에서의 불타는 금요일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