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Jan 27. 2024

가우디로 시작해서 가우디로 끝난 하루

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15

10월 9일 오늘은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에 가우디 투어를 하는 날이다. 보통은 여행 초반에 한다는 가우디 투어를 우리는 떠나기 직전에 하게 되었다. 역시 푸짐하고 맛있는 조식을 일찍 먹고 호텔을 나섰다.  

투어 장소는 '까사 바트요' 앞이라 숙소에서 걸어갔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까사 아마뜨예'도 건물이 예쁘다. 이 건물에 유명한 초콜릿 샵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들어가 보진 못했다. 두 개의 건물 모두 가우디가 직접 만든 것으로 까사 아마뜨예를 먼저 만들고 그걸 보고 바트요가 집을 의뢰한 것으로 들었다. 


이것 모두 가이드한테 들은 말이었는데 따로 여행 일기를 써놓지를 않았더니 시간이 흐르니까 기억이 가물거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행기를 빨리 썼어야 하는데...


앞에 우리 말고 다른 여행사에서도 와서 처음엔 거기 갔다가 아닌 줄 알고 뻘쭘했던 기억이 있다. 가우디 투어는 워낙 많은 여행사에서 단체로 진행하기 때문에 다니다 보면 자주 마주치거나 심지어 인원이 적으면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움직이기도 한다. 


일행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다가 앞에 있는 외국 분들이 남녀 상관없이 양볼에 입 맞추며 인사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봤는데 신기했다. 인간 사이의 사심 없는 스킨십이 과연 존재할까 싶지만 나이가 지긋이 든 분들이 반갑게 서로 번갈아 가며 인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 건물이 바로 까사 바트요다. 같은 건축가가 지었음에도 까사 아마뜨예와는 전혀 다르다. 그 시대에 어쩜 이런 생각으로 집을 지어 놨을까. 까사 아마뜨예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예쁜 과자 집처럼 보이는데 까사 바트요는 구불거리는 것이 바다를 연상케 한다. 

내가 신청한 투어는 까사 바트요 내부 투어도 포함되어 있어서 까사 바트요 관람 오픈 전에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 일반 관광객들이 오기 전에 잠깐 단체 투어한테 오픈하는 것 같았다. 

가우디는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고 까사 바트요는 바다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바트요를 위한 집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이곳에서 과연 편하게 살았을까, 정말 만족했을까 궁금해진다. 우리 엄마 말에 의하면 독특하고 예쁘긴 한데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평이다. 후훗. 

계단 하나하나, 조명 하나, 창문 하나, 난간 하나까지 허투루 만든 게 없고 직선은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 곡선을 이용해서 지었고 기사가 용과 싸우는 전설을 담고 있단다. 푸른 빛깔의 색채와 타일 등도 모두 아름답다.

이 시대 때 사람들은 과연 가우디가 만든 집을 보고 어떤 평을 내렸을까. 버스에서 가이드한테 들었던 안토니오 가우디의 생애를 들어보니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짓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끝내 거리 위에서 사고를 당해 노숙자로 오해받아 쓸쓸하게 죽어갔다. 위대한 건축가의 황당하기까지 한 말로에 대해서 듣자니 허망했다. 그의 건축물들을 보면서 느낀 건 가우디에게 있어 종교와 자연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키워드였던 것 같다.

걸어서 가야 하는 까사 밀라는 같은 듯 다르다. 까사 바트요가 바다였다면 까사 밀라는 산을 형상화했다. 외관을 감싸고도는 구불거리는 선과 베란다 난간을 무작위로 쌓아 올린 것 같은 패턴들이 흥미롭다. 


어떻게 이런 건물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솔직히 까사 시리즈 중에서 까사 밀라가 가장 좋았다. 실제로 이곳은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여기에 아직도 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가격은 물론 굉장히 비싸고 마음이 내킬 때면 문을 열고 나와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한다니, 관종력이 있는 분이 집을 산 게 아닐까 싶다. 하긴 세계각국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전부 자기 집을 올려다볼 텐데, 마치 국왕이라도 된 기분일까나.  

구엘 공원은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스페인에 있는 동안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문제는 10월인데 덥다. 여름처럼 더운 건 아닌데 암튼 한국의 10월 날씨보다는 훨씬 덥다. 


구엘 공원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어 있고, 가우디가 후원을 받아 지은 주택단지였지만 분양이 저조하고 공사도 중단되어 나중에 시청에서 사들여 공원으로 만들었다. 

가우디 건축물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구불거리는 선으로 쭉 이어진 의자는 인기가 많아서 앉아 있을 곳을 찾기가 힘들다. TV에서 봤을 때 궁금했던 게 과연 정말 앉으면 시원할까였는데 오! 정말 시원하더라. 모두 사진을 찍기 위해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고 잠깐 앉기 때문에 자리는 금방 난다.


구엘 공원은 보기보다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체계적으로 만든 건축물이다. 비가 오면 이곳에서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아래층에 있는 거대한 기둥아래에 저장되게 만들어져 있다. 이 물이 나중에 계단에 있는 도마뱀 분수로 흘러내려온다고 하니 공원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저장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 집이 정말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을 모티브로 만든 집이다. 독실한 신자답게 위에는 어딜 봐도 십자가 모양으로 보이는 3D 십자가까지 만들었다. 이 십자가를 가운데로 두고 2층 의자에 앉아서 찍으면 인생 사진이 나온다. 줄이 기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건축물을 지탱하는 기둥들이 모여 있는 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 같다. 특히 사진을 많이 찍는 장소로 자연스럽게 비쳐드는 빛과 기둥이 만들어 내는 패턴은 조금만 포즈를 잡아도 멋져 보인다. 

위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저장되는 기둥이자 처음 만들어진 목적은 장터 등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이 고개를 들어 쳐다보며 감탄하는 곳이 되었다. 기둥과 타일로 이어지는 높이가 전부 달라서 자기 키만 한 기둥을 찾아 인증숏을 찍으라는 말에 열심히 찾았다. 

물이 흘러나오는 도마뱀 분수인데 지금은 물도 안 흘러나오건만 사람이 흘러나온다. 무슨 말이냐면 이곳은 굉장한 정체구간으로 모든 사람들이 나가기 전에 이 도마뱀 앞에서 어떻게든 사진을 찍기 위해 모두 몰려들기 때문이다. 하하. 도마뱀이 생각보다 귀엽긴 하다. 

도마뱀 분수에서 내려와서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어느 각도에서도 사람이 안 잡히는 각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내 모습도 누군가의 사진에 배경으로 많이 나왔겠지.

탄생의 파사드

마지막 코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성당까지 걸어가면서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는데 아무리 사진과 영상으로 많이 보고 가도 막상 내가 현장에서 이 장면을 보게 되면 그냥 압도될 수밖에 없다. 


1882년에 짓기 시작한 성당은 지금도 공사 중이며 완공예정이 2026년이라지만 아무도 모른다. 가우디 본인은 2082년으로 예상했을 만큼 지난하고 어마어마한 건축물인 것이다. 세기를 지나면서 지어진 건물은 오래된 것과 새로 지어진 것과 앞으로 지어질 것의 차이가 보는 사람 입장에선 묘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만약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된다면 그 해 바르셀로나에 가려는 사람들로 미어터지지 않을까. 당장 나도 가고 싶은데... 

수난의 파사드

가이드와 함께 성당을 빙 돌면서 각각의 파사드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3개의 파사드로 이뤄져 있다. 현재 입구로 사용되는 가장 먼저 지어진 탄생의 파사드, 그리고 수난의 파사드, 영광의 파사드이다. 완공이 되면 영광의 파사드가 입구로 사용된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 탑

가이드가 날도 더운데 열정적으로 설명해 줬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이때쯤엔 완전히 지쳐서 솔직히 제대로 다 듣진 못했다. 가우디 투어는 외부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종료한다. 입장권은 각자 알아서 미리 예약해 와야 한다.  


설명을 제대로 못 들어도 입장권을 사면 오디오 앱을 다운 받아 내부에서 설명을 들어도 된다. 혹은 본인이 미리 공부해 와도 좋다. 투어가 끝나면 1시가 훌쩍 넘어 있어 점심 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3시 45분 표로 예약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미리 찍어둔 식당을 가니 하필 오늘이 휴무일이다. 이미 걷기도 너무 힘들고 지쳐서 당장 어딜 들어가야 했다. 터덜거리고 걷다가 이탈리안 식당을 발견하고 무조건 들어갔다. 가려고 했던 식당도 이탈리안 식당이라 잘 된 셈이다.  

목이 말라 콜라를 시켰던 것 같은데 여긴 콜라에도 오렌지를 넣어줬던가. 주인 분이 미국인처럼 생겼는데 친절했다. 맛있다고 하니 굉장히 좋아하셨다. 

식당 이름은 'Tuscania'였고 디아블로 피자와 라자냐를 시켰다. 양이 두 사람이 먹기엔 많았다. 둘 다 맛있었는데 배가 불러 다 못 먹겠더라. 피자 남긴 건 아까워서 일정만 아니면 싸가고 싶더라. 

입장 시간보다 일찍 와서 근처에서 조금 쉬다가 들어갔다. 간단한 짐 검사를 하고 탄생의 파사드를 먼저 마주했다. 실제로 가까이 보니 더 대단하다.

탄생의 파사드에 있는 조각상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각의 파사드 주제에 맞는 인물과 성경 이야기가 새겨져 있는데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에서 느꼈던 충격과는 다른 충격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건물은 이제까지 살면서 본 적이 없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목 디스크도 절로 나을 정도로 고개가 내려올 줄 모르게 된다.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든 정교하고 독창적인 천장과 연결된 기둥까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든다. 

스테인 글라스는 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빛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내가 들어간 오후의 빛이 성당 내부를 환상적으로 감싸준다. 스테인 글라스의 색상에 따라 빛의 색상도 달라져서 안에는 온갖 빛의 향연이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찾아 삼만리 하다가 드디어 나도 내 눈으로 봤다. 사진 속에서 맨 왼쪽 아래에 있는 동그란 스테인 글라스에 'A.KIM'이라고 쓰여 있다.

영광의 파사드 쪽에 있는 세계 각국 언어로 되어 있는 주기도문의 문. 가자마자 한국어를 가장 먼저 찾아봤다. 왼쪽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구절이 쓰여 있다. 

몇 번을 사진을 찍고 돌아서도 다른 곳엔 또 다른 빛의 향연이라 계속해서 찍게 된다. 오전에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지만 오후에 온 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출구는 수난의 파사드로 나오게 되는데 이곳에는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때의 조각이 있다.

가우디 흉상

다 보고 나오면 가우디 박물관도 있어서 한 바퀴 돌고 나올 수 있다. 


사실 가우디 투어 끝나고 나면 숙소에 가기 전에 쇼핑하려고 했다. 시간이 없어서 몇 군데 뽑아 놓고 빠르게 움직이려고 했는데 어쨌든 또 걸어야 해서 엄마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우선 스타벅스에 가서 쉬기로 했다. 스페인에서 처음 들어간 스타벅스는 사실 알다시피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익숙한 곳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 다만 한국 여성 분들이 문가에 자리 잡고 엄청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어서 약간 민망했다. 차라리 한국어가 안 들리면 좋겠는데 다들 조용한데 한국어가 시끄럽게 들리니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바테르 비누와 라 치나타 오일을 빠르게 샀다. 솔직히 기념품을 사다 줄 모임이나 몸 담고 있는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딜 가도 그런 거 챙겨서 사다 줄 인간형도 아닌데 암튼 바르셀로나에선 뭐라도 사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사바테르 수제 비누는 미니 사이즈로 여러 개 샀고, 라 치나타 오일은 내가 쓰고 싶어 샀다. 캐리어 사이즈가 작으니 큰 건 살 수 없어 작은 사이즈로 샀다. 


한 가지 해프닝이 있었는데 내 앞에 계산한 외국 여성 분이 꽤 많은 양의 오일 제품들을 샀다. 계산하고 있어서 난 아무 생각 없이 내가 고른 걸 계산대 위에 올려놨는데 그걸 세상에나 계산하던 직원이 그대로 같이 그 여성 분의 가방에 넣었다. 


계산할 때까지 매장을 둘러보다 왔는데 내 물건이 없어서 어디 갔냐고 했더니 그제야 달려 나가 그 여성 분을 다시 불러왔다. 쇼핑백 안에서 내가 고른 것들을 빼냈는데 여성 분이 나한테 엄청 뭐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는데 화를 내려면 계산을 잘못한 직원한테 화를 내던지 할 것이지. 나도 피해자인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계산이 아직 끝나지 않은 계산대 위엔 다음 사람의 물건을 올려놓으면 안 되는 룰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남의 물건을 같이 계산한 줄 알고 넣는 직원이나 자기 물건도 아닌데 들고 간 여자나. 이해가 안 된다. 살짝 기분 나빠져서 나왔다. 

이런 기분엔 당충전을 해줘야 해서 초콜릿 박스에서 젤라또를 먹었다.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비센스에서 뚜론을 사고 까루프에서 꿀국화차도 샀다. 이걸로 기념품은 끝이다. 


역시 울 엄마는 오늘도 저녁 식사는커녕, 침대에 넉다운이다. 내일이면 벌써 떠날 날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여행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너무 빨리 흐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몬세라트 트래킹은 절경이고 장관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