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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an 28. 2024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16

10월 10일 바르셀로나를 떠나는 날에는 일정이 따로 없어서 처음으로 조식을 느긋하게 먹을 수 있었다. 8시 넘어 내려가니 안 보이던 한국인들이 꽤 보여서 좀 놀랐다. 한국인들 조식 일등으로 먹고 나가는 거 국룰 아니었어?

공항 가기 전에 호텔 앞에 있는 시라 커피에 들렀다. 내가 좋아하는 라떼 한 잔. 

맛은 괜찮았지만 솔직히 세비야에서 마신 우토피아 커피를 이길 순 없었다. 이걸 마시니까 한 번 더 마시고 오지 못한 우토피아 커피가 생각난다. 

(좌) 칼파 제품에 사용된 바르셀로나 도시개혁을 위한 보도블록 (우) 가우디가 설계한 그라시아 보도블록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시내 산책에 나섰다. 사실은 엄마가 하도 동생 선물을 사가야 한다고 말해서 사러 가는 길이다. 인사도 안 나누고 왔을 정도로 싸웠는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엄마 딸 가방은 엄마가 사는 거라고 확답을 받은 후 나선 길이다. 


바르셀로나 도시를 다니다 보면 보도블록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가우디가 직접 설계한 보도블록을 만날 수도 있고, 도시 개혁을 위한 디자인으로 시의회와 디자인 회사가 협업한 그래픽 패턴의 보도블록도 만날 수 있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log.naver.com/designpress2016/223147776209


한국과 별반 다를 게 없이 껌 자국이 남은 지저분한 보도블록은 가슴 아프지만, 계속 바닥을 쳐다보며 찾는 것도 재미있다. 엄마와 동생 선물을 사러 간 곳은 'Calpa칼파'라는 가죽 브랜드로 바르셀로나 도시개혁에 따른 도시 디자인과 보도블록 패턴을 제품에 녹인 디자인들이다. 내가 산 지갑은 저 위의 보도블록 패턴이 귀엽게 들어가 있고, 가방은 바르셀로나 도시 구역이 패턴처럼 들어가 있다. 


거의 우리가 첫 손님이라 천천히 구경했다. 원하는 제품을 말하면 다 꺼내서 보여주고 여러 제품들을 추천해 준다. 우리가 이것저것 많이 살 것처럼 보였는지 너무 많은 제품들을 꺼내 줘서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하.


사실 나는 살 생각이 없었는데 가장 들떠서 가방과 지갑까지 다 사버렸다. 내가 쉽게 고르는 것에 비해 엄마나 동생 보는 눈이 까다로운 편이라 웬만한 쇼핑으로는 원하는 걸 찾기 힘들다. 당연히 이곳에서도 딱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보였는데 어쨌든 한국 가기 전에 마지막이라서 내가 사는 것과 비슷한 가방과 지갑 세트로 같이 샀다. 마음에 드는 게 없으면 그냥 공항 면세점에서 사라니까 꼭 스페인에서 사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칼파 주인만 신났다. 

가방을 사들고 진짜 마지막으로 가보지 못했던 바르셀로나 대성당에 갔다. 입장은 하지 않고 앞에 앉아서 쉬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성당들을 보고 왔던 터라 감흥은 크지 않지만 바르셀로나 대성당은 화려한 고딕양식이 잘 살아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웠다.

내 이상한 로망 중에 하나가 공항에서 햄버거 먹는 거였는데 드디어 해봤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있는 버거킹에서 주문해서 먹었는데 뭘 시켰는진 몰라도 엄청 커서 다 먹지도 못했다. 맙소사 지금 보니 패티가 두 장이나 들어 있네.


항공사는 똑같은 곳이었는데 갈 때보다 올 때가 훨씬 더 수월했다. 유료 좌석 앞 구간 중 뒷 좌석 없는 맨 뒷자리에 예약했었는데 이 자리가 꿀이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처음 먹은 음식은 역시 해물 순두부와 육개장이었다. 얼큰한 게 당겨서 시켰는데 너무 맛있게 먹었다. 역시 익숙한 맛이 무서운 거군.


이렇게 해서 짧으면 짧고 길면 길었던 스페인 여행이 끝났다. 엄마는 여행 내내 "내가 언제 다시 오겠니. 이제 마지막이야."를 입에 달고 다녔는데 솔직히 나 역시 어느 정도 공감했던 말이라 더 슬펐다. 


나도 저질 체력이라 금방 방전되는 데 이번에 엄마랑 다니면서 느낀 건 울 엄마가 많이 늙었구나.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 예전만 못한 엄마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닦달하고 조급하게 굴었던 게 못내 미안하고 후회가 된다. 


내 유일한 최고의 여행 메이트인데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함께 해주길 바라면서 Gracias, mam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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