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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ver Feb 11. 2022

미술관으로 떠난 영화들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

2021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미지에서 온 소식, 자유의 마을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대형 스크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 뒤로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각각 다른 두 편의 극영화가 상영되고 있는데요. 영화는 각각 남측비무장지대DMZ 내 민간인 거주지 대성동 자유마을과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박정민과 진영이 등장하기도 하죠. 


이렇게 미술관에서 영상전시를 관람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과거 회화, 조각, 설치를 관람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미술관이 이제는 영상을 시청하는 공간으로도 인식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미술관과 영화관을 오가는 세 명의 영화감독 겸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살펴봅니다. 




1. 미술계와 영화계가 사랑하는 정윤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석사를 취득한 정윤석 작가는 2009년 금호미술관을 시작으로 꾸준히 미술작업을 해왔었습니다. 2018년 일민미술관에서 전시에서는 <눈썹>이라는 제목으로 마네킹 공장과 섹스돌 공장을 소재로 한 영상, 사진, 설치물 등을 선보였습니다.


전시는 2020년 <오늘의 작가상>에서 선보인 장편 다큐멘터리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정윤석 작가는 중국의 한 섹스돌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현장, 일본에서 인형과 함께 살아가는 인물 센지 나카지마,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을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인물 미치히토 마츠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작가 인터뷰|정윤석|올해의 작가상 2020


정윤석은 영화감독으로서도 큰 성과를 거둔 인물인데요. 지존파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장편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를 통해 제64회 베를린영화제 포럼 부문 최고의 아시아 영화에 수여하는 넷팩상과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살인사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범죄와 사건을 통해 종교, 정치, 문화에 대한 질문을 이어갑니다. 과거 아카이빙 자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영화의 미적 완성도도 굉장히 높은 작품입니다.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예고편


정윤석은 데뷔작 ⟪논픽션 다이어리⟫ 이후 밴드 밤섬해적단을 다룬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로 제5회 들꽃영화상 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서울불바다'는 펑크밴드 밤섬해적단의 노래 제목으로 제8차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북의 차관급 장관이었던 박영수가 남측을 위협하게 위해 던진 협박 중 일부를 차용한 단어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밤섬해적단이라는 밴드를 통해 한국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밤섬해적단의 멤버 권용만과 장성건의 행보를 쫒고 그들의 친구 박정근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다루고도 있습니다. 정윤석은 다큐멘터리는 파격적이고도 전복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가 관객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바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동시대성이란 무엇인가?


영화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예고편


2.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다큐멘터리 ⟪위로공단⟫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는 과거 여공이라고 불렸던 그 시대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을 소환합니다. 감독은 자신의 어머니 또한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였다고 밝힙니다. 여성 노동자 21명의 인터뷰와 한국을 넘어 캄보디아, 베트남의 공장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한국 사회 우리가 저 멀리 애써 감쳐두었던 이야기를 들춰냅니다. 


교과서의 한 줄로만 기록됐던 역사는 우리 사회에 어떤 상흔을 남기었는지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어떠한 현재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치열하게 추적하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다큐멘터리 영화 ⟪위로공단⟫이 비엔날레에서 수상했다는 점입니다. 감독은 회화적인 시퀀스들을 통해 관객들이 영화를 더욱 주체적으로 조망하도록 요구합니다. 


영화 <위로공단> 예고편


감독은 2019년, 극과 인터뷰가 혼합되어 있는 형태의 ⟪우리를 갈라놓는 곳들⟫이라는 장편 영화를 선보이기도 하는데요. 영화는 재연과 인터뷰를 통해 해방과 분단, 4.3 사건을 겪어낸 세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임흥순은 이미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시리즈로 동일한 이름의 전시를 선보인 바가 있습니다. 임흥순 감독은 이렇게 미술전시 이후 영화를 제작 완성하는 단계를 밟기도 합니다. 전시 이후 영화가 완성되는 형태는 다큐 영화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한국의 공공산업 구조와도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큐멘터리는 열악한 공공산업에 기대기보다는 스스로 진화하는 길을 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다큐멘터리 영역의 경우 미술 영역의 자원에 힘입어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교육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다고 평가받기도 하며, 실제로 MMCA의 필름앤비디오에서는 ⟪극장 없는 영화, 영화 없는 극장⟫의 제목으로 기획 상영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영화 <우를 갈라놓는 것들> 예고편


3. 신화로 재탄생된 기록되지 못한 여성들의 이야기


오늘 소개한 다큐멘터리 중 가장 최근 개봉한 다큐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기록되지 못한 기지촌(미군기지 주변의 성매매 집결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라는 경계를 무너트리기에 감히 다큐멘터리라고 규정 내리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아피찻퐁 감독의 ⟪메모리아⟫만큼 난해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화의 제목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주인공 박인순씨가 그린 그림입니다. 공간을 옮겨 다닐 수 없는 나무, 그리고 그 주위를 배회하는 도깨비 그림은 뺏벌이라고 불리는 공간을 떠나지 않는 인물 박인순씨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젊은 시절 기지촌 여성으로 삶을 살아온 인물 박인순씨는 영화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영화배우로 자기 자신을 연기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기록되지 못했거나 땅 속의 이름 없이 사장되었던 뺏벌이라는 지역의 기지촌 여성들,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묻혀버린 이름들의 이야기를 발굴하여 신화로 재탄생시켜냅니다.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예고편


영화감독 김동령과 박경태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이전 ⟪거미의 땅⟫이라는 작품을 통해 세상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거미의 땅⟫은 기지촌과 연관된 세 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주인공 박인순씨 입니다. 두 감독은 2014년 ⟪경기북부 고스팅⟫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통해 ⟪밤의 손님⟫과 ⟪문의 여정⟫이라는 단편을 선보이기도 했죠.


경기북부 고스팅전 | 김동령 감독


2010년 전후로 미술을 기반으로 한 다큐멘터리 작업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산업과도 연관성이 있어보이는데, 앞서 소개한 임흥순 감독의 사례처럼 미술관의 지원을 통해 영화 제작이 가능해졌다는 점. 공공영역의 지원이 필수적인 다큐멘터리가 미술영역의 진화와 맞물린다는 점 때문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의 경우 지원사업에 기대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에서는 매년 두 차례의 독립예술다큐멘터리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업의 규모가 크지 않고, 여타의 지원사업들은 이보다 규모가 더 작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다큐멘터리 비즈니스는 진화하고 있죠. 


⟪오징어 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등 한국 드라마가 전세계 넷플릭스 1위를 차지하며 콘텐츠 한류화에 열광하는 지금,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꿋꿋이 필요한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필요한 이야기가 돈이 되는 것은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유려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꾸준하게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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