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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 Apr 26. 2017

나는 다섯 여자와 살고 있다.

낯선 이와 가족이 되는 방법.

 “우리 비행기는 호찌민, 호찌민 떤선녓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텁텁하고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싸 안는다.

아. 결국 베트남이구나. 여기가 이제 내 삶의 터전이구나. 

 

내 나이 스물아홉. 새로운 꿈을 찾아 해외취업에 도전한 것이 불과 한 달 여전.

우연히 찾아온 좋은 기회를 잡기 위해 뚜렷한 준비 기간도 없이 부랴부랴 베트남 행 비행기에 오른 게 바로 어제였다.

 

 “xin chao.” 신짜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이에게 인사를 건네는 나도, 듣는 그들도 어색하게 웃었다. 

아직은 이 모든 일들이 얼떨떨했다. 그저 잠시 여행길에 오른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호텔 생활은 참 안락했다.

아침이면 베트남 쌀 국수 pho, 베이컨 치즈 오믈렛, 각종 열대 과일 등이 매일같이 신선하게 차려져 있었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면 회사 출근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깔끔하게 정돈된 나만의 공간과 폭신한 침대, 그리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있었다.


‘333’이라는 베트남 맥주와 길거리에서 사 온 다양한 음식으로 ‘혼맥’을 즐기며 오후 시간을 즐기고 있노라면 빳빳하게 다려진 옷들이 좋은 향기를 내며 방으로 배달되어 왔다. 나는 이렇게 조금은 긴 여행을 호화스럽게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짧은 해외취업 준비기간과 대부분의 업무가 영어로 이뤄지는 환경에서 일을 하다 보니 베트남어에 익숙해질 시간이 없었고 현지 친구들과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던 나는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이 나라가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나의 집이라는 느낌도, 친숙한 느낌도 없었다. 그저 조금 편한, 조금 부유한 그런 생활이었을 뿐. 

그렇게 부유하지만 외롭게, 풍족하지만 마음 한편이 아련하게 3개월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핸드폰이나 가방을 훔치는 바이크 스틸러들을 만나 길거리에서 혼자 펑펑 울기도 했고 길거리 음식을 잘못 먹어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는 등 준비 없이 떠난 해외생활의 고충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때 느꼈다. 


'누군가가 필요하다.'

 

외로운 나의 삶에, 풍족하지만 마음 한편이 늘 쓸쓸했던 나의 생활에 이를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답은 ‘식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어울릴 ‘집’이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은 나 혼자 느낀 것이 아니었다.

아니면 그전부터 우리 모두 느끼고 있었지만 그 해답을 조금씩 다른 시간표로 찾았을 뿐.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다섯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다섯은 지금까지 했던 일들도 너무나 달랐다.

승무원으로 일했었던 친구, 방송작가로 일했던 친구, 모델로 일했던 친구….

살아온 방식, 생각하는 가치관 모두 다른 우리였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행복한 감정과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과 공간이 그립다.’라는 것. 

 

그 공통점 하나를 가지고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호화롭고 편안했던 호텔 생활을 뿌리쳤다. 

우리는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찾기로 했다. 말 한마디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그것도 아직 공산주의의 문화가 팽배한 베트남에서 우리만의 집을 갖기로 도전한 것이다. 

안락하고 편한 삶보다는 따뜻한 온정을 느끼고 함께 살 부대끼며 살고 싶어서. 

단지 그 이유 하나였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먼저 한국과 베트남의 부동산 시스템 자체가 너무나 어색했다.

내가 살고자 하는 지역의 부동산에 가면 근처의 매물들을 모두 보여주는 한국 시스템에 익숙했던 우리는 

집주인이 특정한 중개인에게 집을 맡겨한 중개인이 여기저기 흩어진 지역의 집들을 보여주는

 베트남 방식에 당황을 했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어떤 중개인에게 물어보면 빈집이 없다고 말했지만 다른 중개인은 빈 집이 많다고 했다. 

 

어렵게 어렵게 2주간 여기저기 도움을 구하고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우리가 살 집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호주에 딸이 살고 있다는 베트남 노부부의 집이었다. 의사소통의 힘든 부분은 호주 딸과 통화를 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온 우리 다섯은 1년 간조 금 더 힘들겠지만 타지에서 서로 의지하기 위해, 

새로운 식구를 만들기 위한 큰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넓은 방 시원한 에어컨이 풀 가동되는 호텔은 아닐지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조금 작더라도, 내가 스스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아닌 함께 어울리고 살고 싶었다.

 

함께 베트남의 대형마트인 ‘BIG C’에 가서 장을 봤다. 취사가 되지 않았던 호텔 생활을 하던 우리는 이제는 건강식으로 맛있는 밥을 먹자며 한국 쌀과 각종 야채, 그리고 생필품들을 샀다. 라이스 쿠커, 쓰레기통, 청소기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 

 

살림과는 거리가 멀었던 20대 다섯 여자들의 삶. 역시나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았다.

잡곡밥을 먹으려 했으나 외국에서 구입한 라이스 쿠커에는 취사와 보온 기능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늘 설익은 밥이 됐다. 한국과 조금은 다른 베트남식 빨래통에 빨래를 하는 것도 어색했다. 가장 특이한 점은 세탁기 기능 중에 베트남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 버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토바이가 많은 나라인지라 쨍쨍한 햇볕에 옷을 말리는 대신 늘 건조기를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옷에서는 늘 퀴퀴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생활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다.

설익는 밥을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기 위해 밤새 쌀을 물에 불려두고 밥을 조금씩 하며, 한번 취사 기능이 끝나면 다시 한번 취사를 눌러 조금이라도 보들보들한 쌀밥으로 만들었다. 아, 뚜껑 위에는 늘 무거운 책을 올려두어야 했다. 

한창 멋에 관심이 많은 우리 다섯은 빨래 양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옷을 어느 정도 넣으면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는 세탁기 덕분에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로 우리 집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친구는 세탁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루 종일 빨래가 돌아가고 있었다. 

 

여자 다섯이 만들어내는 바닥의 머리카락 양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게 사람이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나도 다른 너와 내가 만나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니 모두가 서로 이해하자고 자주 이야기했다.

 

가족이 뭐 특별한 것일까.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그들을 중심으로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가족이라면 우리는 피는 섞지 않았지만 생각을 나누고 있고 서로의 아픔과 외로움을 함께하고 있기에 우리는 가족인 것이다. 또한 같은 집에서 함께 끼니를 함께하기에 우리는 한 식구인 것이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 가치관이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결혼보다는 아직 나의 생활이 먼저인 평범하고 꿈 많은 20대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내린 선택과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다섯 여자들을 볼 때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며 늘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이러한 불편함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미래도 꿈꾸고 있다.

 

조금 편한 삶, 부유한 삶과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사람답게 아웅다웅 사는 삶.

그 두 가치관을 선택하라면, 나는 오늘도 후자이다.

 

혼맥, 혼밥과 같은 요즘의 트렌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이 중요하다는 거다.

나도 자기만의 시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을 한다. 하지만 그 혼자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리고 지내던 시간들 때문이 아닐까.

 

삶의 방식이 조금은 다르더라도,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너와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과 공간. 그 공간이 나를 조금 더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나눌 수 있기에..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마음만은 풍요로워 지기에.

 

넓은 호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없겠지만 하루의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집, 어떤 환경이냐가 아닌 어떤 식으로 누구와 함께하느냐니까.

 

23, 26, 27, 그리고 29살의 여자 둘.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다섯.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39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동남아에서

아웅다웅 살고 있다. 방 번호 706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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