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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pr 24. 2023

주말일기 0422-0423

1시간 걸어 동네서점 방문/450쪽 짜리 나의 눈부신 친구 완독

주말일기 0422~23

토요일 오빠랑 규가츠를 먹고 긴 산책을 했다. 남편은 요새 점심을 먹고 1시간씩 걷고 있다. 허리가 안 좋아 많이 못 걸었는데 최근에 배에 힘을 주고 팔자다리로 걷는 습관을 고치고 일자로 걸으려고 노력하면서 걷기 능력이 많이 좋아졌다. 내친김에 공릉역에 있는 동네 서점에 가보기로 했다. 내가 전부터 가고 싶었던 집이였다. 동네 서점이란  얼마나 정겹고 즐거운 공간인가. 나 같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특히나!


그곳은 여러 독서 모임도 하고 나름 잘 버티고 있는 서점인 거 같아 기특하기까지 했다. 서점에서 운명같이 라니 시리즈 책을 만났다. 책 소개엔 작고 약하지만 소중한 존재들의 이야기라고 나왔다. 소중한 나의 개, 라니의 이름이 이렇게 누군가에게도 같은 의미라니. 결국 1,2권을 들고 와버렸다. 빅터 프랭클린의 죽음의 수용소도 사왔다. 전자책으로 봤을 때 내용이 눈에 잘 안 들어왔는데 종이책으로 보니까 책장이 잘 넘어가는 것 같아서. 서점 주인이 라니시리즈 1권의 저자가 다음달에 책방 모임에 온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짓기 놀이를 한다고 한다. 재밌겠는데. 가볼까.


책방에 있는 시집의 제목들이 참 좋았다. 거침없이 내성적으로, 젖은 풍경은 잘 말리기. 이런 단어의 조합을 만나면 설렌다. 나는 이런 거에 늘 감탄하고 빠져든다. 일요일에 트래블러라는 여행 예능의 첫 내래이션을 듣고도 충격을 받았더랬지. 누가 예능에다 시를 쓰래. 일반적인 예능 프로그램 작가가 아닐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참여해서 내래이션을 써주는 건가 싶어 찾아보니 역시나 책 쓰고 글 쓰는 사람이었다. 결혼 대신 여행을 택했다는 그녀의 책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토요일은 이번 독서모임 책인 나의 눈부신 친구 읽기를 끝마쳤다. 450쪽짜리의 방대한 분량이었다. 등장인물도 너무 많이 나와서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이제야 누가 누구 집안 아이들이고 형제자매 관계를 파악하고 됐다. 릴라와 레누. 두 여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다룬 게 내가 읽은 1권이고, 이들의 이야기가 계속 펼쳐져 4권까지 있다. 박경리의 토지보다는 짧은 거 같으니 이 대서사시를 계속 읽어봐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1권에서 작가의 놀라운 절단 신공에 2권을 안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 책에서 릴라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천재이고, 그런 아이들이 전형적으로 그렇든 고집이 세고 독단적이고 못됐다. 웬즈데이도 그렇고, 서희도 그렇고, 어쩌면 이런 강력한 여자 캐릭터는 매력적인 서사인걸까.


책을 다 읽고 이런 여자 캐릭터가 하나 더 생각내서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장강명의 ‘표백’. 최근 10대 자살사건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이 책의 여주인공 세연은 자살을 하나의 순교로 보면서 자살을 통해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에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라고 기억한다. 표백에 거부하자는 것인데, 더 이상 발전도 성장도 멈춘 안정된 사회인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청년들은 그저 정답을 빨리 찾고 그걸 세뇌시켜야 하는 상태를 표백됐다고 말한다. 자살을 옹호하는 논리가 담겨 있어 지금 보면 딱 청소년 금서다. 19금을 붙여야 할 거 같은데. 아무튼 세연은 먼저 자살을 하고 준비해놓은 여러 계획들을 통해 그녀의 추종자들도 몇 년후에 죽게 된다. 여기선 자살을 할 때는 절대 비관적인 상태에서 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으로 화려한 성공을 목전에 두고 죽어야 한다. 그래야 순교의 의미가 빛난다.


2/3까지 읽었는데 암울하고 슬퍼졌다. 청년들의 연이은 죽음과 자살의 논리 때문이 아니다. 이 책에서 죽음은 오히려 전쟁이자 혁명처럼 느껴졌고 죽음의 논리는 혁명의 논리가 묘하게 유사했다. 이 하얀 세계의 흠집을 내는 전쟁. 세연은 그 전쟁을 이끄는 장수였고, 나머지 친구들은 전사였다. 오히려 나를 슬프게 한 건 남자주인공이 7급 공무원에 합격하기 전 겪는 비참한 과정이었다. 3년에 걸쳐 준비하는 과정. 극도의 가난을 겪고 폐인이 되어 가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동거하는 추를 증오하고 실패한 탕자가 돼 집으로 돌아가고 거의 빈사로 죽을 지경에 어렵게 합격을 했는데 막상 들어가니 공무원 조직은 자기 생각처럼 6시 땡하면 퇴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그래서 퇴근 후에 기타를 칠 수도 없고 일은 많고 월급은 적다. 에잇! 이 세계에 몸담은 자로서 남자주인공이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 너무 서글펐다. 내가 조직에 완전히 순응해 글을 쓸 수 없게 될까봐 한없이 두려워졌다. 마음의 무게추가 몸까지 지배할 걸까. 괜히 늘어지는 몸으로 나는 또 다음주 5일을 버티려면 영양제를 꼭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써내린 일기입니다.  퇴고를 하지 않아 읽기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줬다면 제 마음을 나눠가져간  사람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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