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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Aug 12. 2023

글로 쓰는 브이로그_8월 12일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지 않은 자, 언제까지이고 종이다"

요새 유튜브 알고리즘이 브이로그를 추천해준다. 최근에 인생 정점의 몸무게를 찍는 바람에 감량이 필요해서 다이어트 관련 영상들을 봤더니 추천해 주는 영상들 같다. 날씬하고 예쁜 여자들이 부지런하게 새벽 운동을 가고, 끼니를 잘 챙겨 먹는 모습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진 못하고, 드문드문 건너뛰면서 봤지만, 촘촘하게 일궈낸 일상의 루틴에서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도 브이로그를 찍으면 좀더 부지런하게 살 수 있을까. 전에 한번 브이로그를 찍어본적이 있긴 한데 영상 편집이 너무 서툴러서 하나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힘들었다. 그렇다면...브이로그라는 걸 글로 써볼까. 사설이 길었는데, 이게 이 시리즈를 시작하려는 이유다. 하루를 부지런하게 살고 싶다는 것. 오늘 잘 살고 일어나서 내일은 짐승이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 방금 읽은 책에서 발견한 괴테의 말처럼 "자기 자신에게 명령하지 않은 자, 언제까지이고 종이다." 인생의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서.


아침 기상은 7시. 최근의 주요 관심사는 몸무게 감량이므로 일어나자마자 운동을 가기로 한다. 9시에 마사지 예약이 있기 때문에 런닝머신을 30분만 타고 후딱 집에 오기로 했다. 늘 생각만 했던 아침 운동이란 걸 실천했다는 게 뿌듯했다. 걸으면서 팟캐스트를 들으려고 최근 좋아하게 된 작가가 하는 방송을 틀었는데, 처음부터 듣는 건 왠지 인사만 하고 지루할 것 같아서, 플레이 구간을 중간 아무데나 놓고 틀었는데, 그녀가 화가 난 목소리로 현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그녀의 책을 좋아했던 건 온화하고, 다정하고, 열린 마음의 사람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인데, 이렇게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란 것에 놀랐던 것이다. 물론 팟캐스트까지 들을 정도면 정말 팬심이 강한 사람이라 이것 또한 작가의 다른 개성으로 여기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배신감 드는 걸 어째. 아마 책 속 자아가 철저하게 잘 편집됐거나 내가 완전히 오독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작가가 꼭 정치적인 색을 드러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꼭 그래야만 할까. 난 공인이라면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지 말자는 주의고, 이런 면에서 이경규가 유튜브의 슈카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이경규는 말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으면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그래서 롱런하는 걸까), 슈카는 방송에서 좌불안석이란 말이 나오면 우불안석도 한번 더 얘기하는 사람이다. 사적인 자리에선 말할 수 있겠지만 굳이 공식적인 방송에서 입장을 드러내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해야 하는 걸까. 최근 방송들을 보면 너무 말이 세다. 편을 갈르고 헐뜯는다. 이런 방송은 자극적이고 통괘하니까 인기가 많다. 하지만 난 요새 이런 방송들이 피곤하다. 오히려 재미는 덜해도 사람을 배려하고 편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좋다.


그래서 어제 들었던 김창욱의 강의를 이어들었다. 김창욱은 인간관계와 자아찾기에 대한 강연을 하는 사람인데, 처음보면 말을 너무 재밌게 해서 홀리는데, 거기에 더해 인간적인 감동까지 있다. 하하하 웃다가 띵언이 나와 뭉클해지는 식이다. 계속 듣다보니 강연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강연 전반부에 깔아놓은 밑밥을 막판에 다 회수하는 짜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구성을 생각하고 강연하는 걸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하는 걸까.(나도 언젠가 강연을 해보고 싶어서 이 능력 배우고 싶다) 본능이라면, 진짜 천재. 오늘 말 중에서 인상 깊었던 건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란 건 사실 없고, 어쩌면 들킨 사람과 안 틀킨 사람이 있을 뿐이다" 였다. 크윽. 진짜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삶에 대한 통찰력이 남다르다. 성선설과 성악설이 둘다 주장된 걸 보면 인간에게는 선악이 모두 존재한다는 뜻.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그 사람의 악한 점이 내 눈에는 보였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들킨 사람이다. 설령 내가 안 들켰다 믿어도 상대방에게 이미 들켰을 수도 있다. 결국 선악은 상대방 관점에 따라 해석될 수 있다. 우리가 절대적인 선악이라 믿는 것도 집단, 문화사회환경의 관점일 수 있다.  


문득 내 옆에 있는 남편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는 내가 평생을 알아가야 할 탐구 대상이 된다. 어젯밤에도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을 알면 알수록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까 호기심이 들었다. 어린시절 썼던 티티파스라는 크레파스 이야기가 나왔고, 난 이미 그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한번 들었기 때문에, 홍매색을 좋아했지만 왠지 남자가 그런 색을 좋아한다는 게 부끄러워 마음껏 쓸 수 없었던 어린 시절 남편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이야기는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티티파스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로 많이 써서 금방 짧아진 색이 흰색, 검정색, 노란색이라는 말을 들었다. 앞에 두 색은 넘어갈 수 있었는데, 노란색은 왜? 그랬더니 밑그림을 그리는 색이었다고 한다. 이런 디테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그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야지.


오전에는 일만보를 걷고, 점심 저녁을 모두 현미밥과 반찬으로 건강하게 먹었다. 이 정도 다이어터 생활이면 괜찮을 거 같은데. 마사지를 받은 후에 노곤함을 이기지 못해 오후엔 낮잠을 한나절 잤다. 저녁에는 <꿈처럼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를 읽었다. 작가의 언어가 제목처럼 참 맑고 순수하다. 앞에 인용한 괴테의 말도 이 책에서 따왔다. 나름 부지런히 적당히 느긋하게 하루를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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