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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Dec 14. 2023

순진하게 앞으로도 잘 벌꺼라 믿었어요

현금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지금까지의 소비생활을 돌아보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군인이었고 나는 대학생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는 있었지만 용돈도 받고 있던, 아직은 사회에 발을 들이기 전이었던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 군대를 가서, 곧 직장인이 될 남자친구. 연애를 시작했을 땐 남편이 회사를 다시 다니기 시작해 돈을 벌기 시작했고 그렇게 우리의 소비생활은 시작되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좋아하고 사는 것도 좋아하던 둘은 점점 씀씀이가 커졌고, 결혼하기 직전까지 돈을 열심히 모으기도 했지만 열심히 쓰기도 했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던 나와 달리 신용카드를 잘 활용하던 남자친구는 종종 할부로 물건을 사곤 했고, 그렇게 쌓인 카드값을 갚는 것으로 월급 정리를 시작하곤 했다.

결혼 뒤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첫 전셋집의 원금을 갚는 것은 열심히 해서 돌려받는 보증금은 조금씩 늘어났지만, 소비는 크게 줄지 않았다. 다행히 둘 다 열심히 일을 할 때라 삶에 타격이 갈 정도로 쓰지는 않았지만 돈이 크게 불어나지도 않았다. 나름 재테크에 관심이 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보증금을 제외하고는 큰돈을 손에 쥐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리고 그것에 큰 문제를 느끼지도 않았다. 어딘가 펑크가 나면, 그때쯤 월급이 들어와 펑크를 매울 수 있었고 월급으로 메꿀 수 없는 펑크는 신기하게 어딘가에서 돈이 생기곤 해서 막곤 했다. 그 당시엔 인센티브도 종종 크게 들어오곤 했고, 연말정산 등 쏠쏠하게 들어오는 수입들이 있었다. 지금 소비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단 이렇게 막을 수 있는 삶에 감사하며 살았다.


세월이 흘러, 여러 기회를 붙잡아 우리는 서울을 탈출해 제주에 살게 되었다. 

순탄할 거라 생각했던 타향살이는 순진했던 서울사람의 착각이었고, 정착하기 어려운 보금자리와 직장에 이리저리 휘말리며 당연하다고 여겼던 월급과 집, 삶의 여유 등을 천천히 하나씩 잃어갔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돈들도 조금씩 어딘가로 증발했다. 

직장에 자리를 잡지 못했기에 인센티브나 연말정산 등 예상치 못했던 수익도 줄어들었고, 그렇기에 펑크가 나면 모아뒀던 돈을 털기 시작했다. 꽤나 많이 모았던 예금과 적금은 중간중간 1/4, 1/3씩 깨졌고 모아둔 돈들이 줄어들면서 불안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만난 마음에 드는 집을 매매하고 난 뒤, 이제 다시 허리띠를 조여야겠다 생각했을 때 남편이 실직을 하는 위기가 왔고,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혼자 벌어서 남편과 두 강아지를 먹여 살려야 하는 삶이 시작되자 숨이 턱턱 막혔다.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직종도 바뀌고 월급도 줄어들었던 차라 둘이 벌어도 가끔 힘들었는데, 외벌이라니. 

조금씩 줄어들던 모아둔 돈들과 비상금은 손 위의 모래처럼 사라져 갔다. 남편이 쭉 회사를 다닐 거라는 가정하게 긁었던 신용카드 할부는 매월 돌아와 월급을 퍼갔고, 집의 원금과 이자도 큰 부분을 가져갔다. 남은 돈으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씀씀이가 커져있던 둘은 이 적은 돈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한동안 바라보지도 않았던 재테크 책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 때 조금 쓰다 만 가계부 앱을 다시 깔고 그동안의 지출을 정리해 봤다. 눈앞을 손으로 가리고 못 본 척했던 소비생활을 투명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계의 재정에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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