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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Dec 20. 2023

돈 세는 소리에 홀려서 현금생활 시작하다

하루 예산 5,000원으로 시작해본 현금생활

하루종일 틈만 나면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줄일 곳들을 찾던 시기, 트위터에 재테크 이야기를 올리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였던 연수님이 어느 날 ‘현금생활’이라는 세계를 알려줬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무 재밌다며 추천하고 같이 하자는 말을 듣고 퇴근길에 유튜브에 ‘현금생활’을 쳐봤다. 예쁜 바인더에 현금을 꽂았다 뺐다 하며, 현란한 asmr이 오감을 자극했다. 처음엔 이걸 왜 하나, 하며 10분쯤 보다 보니 어느새 홀려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재테크를 하는데 돈을 쓰긴 싫어서 고민했는데, 연수님이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봉투속지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기존의 속지 위아래를 테이프로 붙이면 간단하게 봉투가 된다는 말에 솔깃했다. 왕년에 왕성한 다꾸러로 활동했기에 집에 귀여운 바인더가 몇 있었다. 퇴근 버스에서 내려 현금 10만 원을 뽑아왔다.


그렇게 나의 현금생활이 시작되었다.


한 달의 예산은 있어도, 한주의 예산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번달의 지출을 훑어보며 대략 한주에 얼마를 사용하나 기록했다. 장보기는 주 5만 원 정도를 쓰고 있었고, 하루에 종종 커피를 사 먹곤 했다. 요일별 예산과 장보기 예산을 같이 만들면 될 것 같아, 봉투 8개를 만들었다. 커피값 5,000원을 하루 예산으로 배분하고 장보기 예산 5만 원을 만들어 총 85,000원에 15,000원 비상금을 설정했다. 한주를 10만 원으로 산다니,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적기도 한 느낌이었다.


I 100% 인간으로 카운터에서 주문하는 것도 가끔 어려움을 느꼈던 내가 현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이용해 매일 무지출을 만들자 결심했다. 월, 화, 수가 지날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 돈을 아끼고, 사무실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아침 일찍 카페에 가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출근했는데, 그 시간을 회사 1층 휴게실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회사 커피가 맛없진 않았어서 휴게실에서 누군가 말을 걸지만 않는다면 평온한 아침의 시작이었다.


장보기는 예산을 줄이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던 부분이었지만, 5만 원을 딱 맞추긴 어려웠다. 하루의 예산을 남겨놨다가 장보기에 투입되기도 했다. 나의 피 같은 용돈이 장 보는데 나가니 속이 쓰렸다. 다시 품목당 가격을 더하기 시작했다. 비상금도 활용해서 최대한 5-6만 원 안에서 장을 보려고 했다. 장을 보면 잔돈이 꼭 생겼는데, 이 잔돈을 모으다 보니 저금통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모은 돈은 ‘목적저축 바인더’에 저축하기 시작했다. 다음 달에 내가 사고 싶었던 것 위주로 목적을 정해봤다. ‘위시리스트’, ‘경조사’,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구름바다(강아지)’, ‘여행’ 등등 좋아하는 것만 가득 만들었다. 밤이 되면 지갑 바인더를 열어 오천 원을 꺼내 어떤 곳에 넣을지 고민했다. 어두운 저녁 복층에서 저축하는 시간은 도파민이 없었던 요즘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줬다. 지출하지 않고 돈을 남겨 저축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매일 밤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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