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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Aug 21. 2022

읍내에 삽니다, 1

아무튼, 제주

상도동에서 장 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마켓 컬리 만원 쿠폰이 날아온 날에 냉동식품과 소시지 같은 간단하게 에어 프라이기로 돌릴 수 있는 제품을 클릭해서 주문하면 다음날 아침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박스를 풀어 정리하고 출근하면 끝! 간간히 주말 나들이로 동네 G마트에 걸어가 탐나는 식재료들을 사서 들고 올라오는 건 주말의 마실 중 하나였다. 냉장고가 비어 가면 인터넷 쇼핑으로 슉슉 담아 채우는 일상, 장 보는 게 힘들다는 말에 갸우뚱하던 나날이었다.


제주의 장보기는 쉽지 않다. 조천 읍내에 살아 조천에 유일해 보이는 하나로마트까지 거리가  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그나마 위안. 인터넷으로  시키려고 해도 마켓 컬리가 없는 이곳에서 어떤 방법이 가장 유용할지, 하나씩 손품 팔아 찾아봐야 한다는 수고로움에 질려 그냥 자주 마트에 가야겠다 결심했다. 가끔 주로 시키던 쇼핑몰에서 닭가슴살이나 콜라 등을 시켜보기도 하지만 제주까지 오는데 주로 이틀, 혹은 삼일이 걸려 오고 나면  녹고 말아 콜라 같은 상온 기성 상품은 괜찮지만 냉동식품은 시키는데 부담이 된다. 배송비도 두배로 들어 어떨 때는 제품값보다 배송비가 비싸, 하나  것을  개씩 사다 보니 냉장고는 마비상태. 저번 주에   냉장고에 자리가 없어 베란다에 쌓아뒀던 식품들 사이로 벌레가 생겨 기겁하며 한참의 소독시간을 보낸  다시 한번 결심했다. , 이제 식품은 인터넷으로  살래.


제주로 오니 손품과 발품을 자주 팔아야 한다. 서울엔 무엇이던 손에 닿았고, 인터넷으로도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곳을 손쉽게 추천해준다. 피드만 조금 올려봐도 이번 주말에 갈 곳은 금방 찾을 수 있었고,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모두 고민 없이 시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주는 다르다. 제주에서 찾는 노하우가 아직 없는 초보 제주도민에게는 손품도 그저 광고의 바닷속을 헤매는 것이어서 몇 번의 검색을 하다 결국엔 하나씩 찾아가 보곤 한다. 서울에선 편하게 클릭으로 찾던 손품에 더해 검색해본 곳을 찾아가 경험하고 기록하는 발품까지로 넘어간 것이다. 장보기뿐만 아니라 동네 주변 카페, 동네 주변 맛집을 찾을 때도 아직은 내공이 없어 결국 인터넷으로 찾아본 가게들을 하나씩 찾아가 경험해보고, 그 인상에 따라 이후에 찾아올지를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나름 재밌다. 얼마 전엔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를 찾아 나섰다가, 버스 정류장이 동문시장 앞에 서 우연히 시장 구경을 하게 되었다. 싱싱한 제주산 고등어, 나름 귀여운 관광객용 황금향, 전라도 집이라고 붙어 있어 신뢰도가 높아지는 반찬가게에서의 갓김치 등등 시장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들로 장바구니를 채워가고, 다시 매장을 찾으러 가던 중 시장엔 있을법하지 않은 멋진 가게를 만나게 되었다. 바로 자키 커피. 무려 요즘 수도권에서 핫한 에스프레 소바!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나폴리식 에스프레소를 홀짝여봤다. 원두는 부산에서 핫하다는 WERK 베르크 원두. 이 동네, 힙하네. 조금 돌아가 작은 독립서점을 찾아가다 옆에 발견한 클래식 문구사. 들어가 보니 기록을 할 때 사랑하는 미도리와 로이텀과 몰스킨 등 서울에서도 찾아가야 살 수 있었던 문구류가 쌓여 있는, 매장 디자인도 이름 그대로 클래식한 느낌 가득한 아름다운 공간. 이 동네, 다시 와야겠네.


몇 번의 이런 경험이 쌓이니 이제 가고 싶은 곳을 찾을 때 네이버 지도로 검색을 한 뒤, 그 지역 해시태그로 추가 장소를 찾아보고, 그날 열려 있다면 버스 시간이 맞을 경우에 찾아가 보곤 한다. 서울에서 떠오르면 바로 가보던 삶과는 전혀 다르고, 또 새로운 도전을 하기 쉽지 않아지기도 했다. 그래도 한번 외출을 하게 되면 그 동네 주변을 발품을 팔아가며 둘러보고, 우연히 발견한 곳을 지도에 별표 치고, 찾아 들어가 체험해보고, 그 경험이 좋았을 경우엔 다음에 찾아올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그렇게 좋은 곳 주변엔 반드시 좋은 곳이 한두 군데 더 숨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발견한 마을의 구역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나만의 작은 오아시스가 된다. 이렇게 발견한 동문시장 오아시스와 옆동네 함덕 오아시스. 이번 주말엔 좀 더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번거롭고 뭔가를 하려고 하면 기회도 맞아야 하고 기회가 맞고 나면 마음도 먹어야 하고 마음을 먹고 나면 실행도 해야 하는, 그런 제주에 산다. 그래도 나는 이 수고로움이 조금은 좋다. 남들이 모르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혹은 아는 사람만 알건 작은 오아시스들을 발견할 때마다 보물지도에 발견 표시로 동그라미를 치는 기분이다. 이런 오아시스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새 어엿한 도민이 되어 ‘풋, 관광객이란? 난 나만의 오아시스나 찾아가야겠어.’라고 폼좀 내볼 수 있는 삶이 되려나? 그렇지 않더라도 풋풋한 냄새가 나는 지금이 좋다. 그렇게 이번 주말도 오아시스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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