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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Sep 11. 2023

2. 서점에서 자기소개를 받은 건 처음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손님의 이야기 (1)

서점이 다양한 사람이 오가는 곳인 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마음에 남는 손님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속으로만 오래 간직해 온 장면을 지면을 통해 하나하나 풀어볼까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서점이 오픈한 지 두어 달 되던 때의 이야기.


마감 시간을 향해 가는 늦은 저녁. 찾는 사람 없이 홀로 카운터를 지키던 파트타이머를 찾은 손님이 있었다.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센 60대 중년 여성이었다. 책이나 문구류를 사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니었고, 회사에서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린 '주말 마감 파트타이머 모집 공고'를 보고 직접 찾아온 사람이었다. 


들어서자마자 계산대를 향해 곧장, 물건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온 그. 어리둥절해하는 파트타이머에게 '사람 구하고 있는 것 안다'는 말을 시작으로 자신의 쓸모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아서 그렇지 안 해본 일 없다,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매장이니 노련한 사람도 있어야 할 것 아니냐면서. 이어지는 적극적인 자기소개에 파트타이머는 난색을 표하며 "어머니, 저는 담당자가 아니에요. 담당자 님 오면 전달할게요"라고 연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자기를 꼭 좀 써달라며 간절하게 호소했다고 한다. 필요한 서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내겠다고. 어르고 달래며 거절 의사를 내비치던 파트타이머는 그의 기세에 못 이겨 결국 연락처를 남겨놓고 가라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건네진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에 이름과 연락처를 꾹꾹 눌러쓴 뒤 서점을 나섰다.


휴무일이었던 터라 그 자리에 없었던 나는 이후에야 그 상황을 전해 들었다. 난감한 일을 겪었다며 이야기하는 파트타이머의 말을 들으며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어떤 사람일까. 흰머리가 성성한 사람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절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나를 꼭 좀 써 달라'고 호소하는 일이란 어떤 심정일까. 그는 왜 구직사이트를 통해 이력서를 내지 않고 이곳을 찾아왔을까. 공고를 확인하고, 서점이 위치한 주소지를 확인하고 또 방문을 결심하기까지 한 그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이곳에 임했을까.

아마도 온라인으로 이력서를 제출하면 서류부터 통과하지 못하리란 걸 그는 직감했을 터다. 20대, 30대에 비하면 자신은 나이가 들었으니 쉬이 쓰임 받지 못하는 노동력이라는 걸 스스로 알았을지도. 그래서 직접 찾아가 이렇게라도 면접 기회를 얻어내겠다는 각오가 아니었을까.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심정이란 무엇일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그토록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한 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내가 마주한 사람이 아니니 그저 얄팍한 상상력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생각할 수밖에. 한편으로는 거절을 똑바로 마주하며 그 속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용감함도 배우고 싶었다. 언젠가는 그녀를 서점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서점에서 일하며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옥상에 올라가 보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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