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 일이다. 교회 청년부 담당 목사님은 이티오피아(우리나라는 특이하게 에티오피아라고 부르는데 필자도 표준어를 존중하여 에티오피아라고 하겠다)에 수년간 선교를 다녀오셨다.
한 번은 수련회에서 목사님이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구약성경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보러 이스라엘에 온 스바의 여왕은 솔로몬과 동침하여 아이를 가졌다(솔로몬과 동침한 내용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데 에티오피아인들은 그렇게 믿는다).
* 학자에 따라 달리 보는 이도 있지만, 적어도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스바와 에티오피아를 동일시한다.
고향으로 돌아간 스바의 여왕은 '메넬리크'라는 아들을 낳았다. 메넬리크는 장성하여 아버지 솔로몬을 찾아갔고, 아들로 인정받은 메넬리크는 스바로 돌아가면서 하나님의 언약궤(Ark of Covenant)를 가져왔다. 메넬리크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고, 스스로 유대인이라고 믿는 에티오피아 황족들은 대대로 유대교 신앙을 지켰다.
메넬리크가 가져간 언약궤를 20세기 들어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 하나가 '인디애나 존스'라고, 목사님은 재미를 위해 픽션도 곁들여 말했다. 여기까지가 목사님이 말해준 내용이다.
목사님이 해준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20년간(이렇게 말하니까 인생을 갈아 넣은 느낌인데 그렇지는 않고, '긴 시간 틈틈이'로 이해하면 되겠다) 에티오피아의 유대인과 정교회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솔로몬이 BC 1000년경 사람이니,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은 약 1000년간 유대교 신앙을 지켰다. 에티오피아인들은 그 뿌리가 솔로몬이라고 믿으니, 다윗의 자손으로서 스스로를 '유다지파'라고 생각한다. 1975년 공산 쿠데타로 무너지기 전까지 에티오피아 제국(帝國) 국기에 새겨진 사자도 '유다의 사자'이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위 관리 내시('내시 장관'이라 부르겠다)는 유대인 정체성을 가지고(이 부분에 관한 논란이 있지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귀국하는 길에 빌립을 만난다.
이방인에 대한 전도는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기 전 본 환상 이후임을 생각해 보자. 사도행전 8장에서 빌립과 베드로,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전도했고, 직후에 빌립은 에티오피아 내시 장관에게 세례를 준다. 만일 사마리아와 에티오피아 사람들을 순수(?) 이방인으로 보았다면 사도들과 빌립은 애초 이들에게 자유롭게 전도할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세례를 받은 에티오피아 내시 장관은 에티오피아 교회의 선구자가 된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사8:39)
위 성경 구절을 보면 내시 장관의 입장(그의 시선과 감정이 기록되었다)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나온다. 그런데 사도행전이 서신서임을 감안할 때 이러한 기술 방식은 시간이 흐른 후 내시 장관(아니면 내시 장관의 얘기를 들은 다른 에티오피아 기독교인)이 빌립(또는 사도행전 저자인 누가(Luke)와 가까운 이)을 다시 만났음을 방증한다. 요컨대 에티오피아 내시 장관의 믿음은 빌립을 다시 만나서 간증할 만큼 지속성이 있었다.
내시 장관의 믿음이 씨앗이 되어 에티오피아에 기독교가 자라났다(일부는 유대교 신앙을 고수한다). 마침내 AD 339년 에티오피아는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하여, 아르메니아와 조지아에 이어 세 번째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숨이 가쁘다. 애초 필자가 의도했던 바는 이러하다.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개신교, 그것도 장로교로 대변되는 몇몇 교단 일색이다. 하지만 넓은 눈을 가지고 보면, 각 나라별로 많은 교파, 교단(denomination)이 있다. 미국을 보더라도 성도수로 볼 때 개신교 중 장로교는 10위 정도 되고, 성도수 상위권은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소수 교단인 침례교, 성공회, 루터교가 점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한국 개신교가 기독교를 대변할 수는 없다. 이단 논쟁으로 빠질까 염려스럽지만, 한국 개신교(어쩌면 그런 교단에 속한 스스로의 모습)에 실망한 필자는 원시 기독교(primitive Christianity), 원시교회, 사도적 교회(Apostolic Church)가 어떤 모습이었을까 찾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위에서 화두로 꺼낸 목사님의 얘기가 생각났고, 이렇게 시작된 교단 탐방(직접 가봤다는 얘기는 아니다)은 오리엔트 정교회(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 이집트 콥트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동방 정교회(그리스 정교회, 한국 정교회)에 이르게 되었다.
앞으로 하게 될 교단 이야기가 단순한 지적 유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교단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속한 교단(어쩌면 어떤 형태로 정형화된 내 믿음)의 부족한 모습을 발견하고, 다른 교단의 본받을 부분은 본받아 모두가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