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다소 생소한 교단도 우리 이웃으로 이 땅에서 예배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초기 공의회를 통해 갈라진 교단에 대해 보다 생생한 느낌으로 알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 이제 공의회 이야기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에서 기독교를 공인(정확하게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대해 관용을 선포)했다. 이후 그는 325년 최초의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를 열었는데 이때부터 4차까지 공의회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여기서 공의회는 보편 공의회·세계 공의회(Ecumenical council)를 말한다.
1. 325년 니케아 공의회
성자의 신성(神性)을 확인하고, 이에 어긋나는 아리우스파를 단죄했다.
* 380년 데살로니카 칙령으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2.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했다.
3. 431년 에베소 공의회
테오토코스(Θεοτόκος) 즉 마리아의 신성(神性) 출산(마리아는 하느님을 출산했다) 교리를 확립했다.
이에 어긋나는 크리스토토코스(Χριστοτόκος) 즉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출산했다’라고 주장한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했다.
* 테오토코스를 강조하는 가톨릭, 정교회의 사용례에 따라 부분적으로 ‘하느님’으로 기재했다.
4. 451년 칼케돈 공의회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고 조화를 이룬다는‘양성론(Dyophysitism)' 교리를 확정했다(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었다고 보는 '단성론(Monophysitism)'을 단죄).
이를 반대하고 신성과 인성이 단 하나의 성질로 융합되어 있다고 보는 '합성론(Miaphysitism)'을 취하는 오리엔트 정교회가 비(非) 칼케돈파 기독교(Non-Chalcedonian Christianity)로서 갈라졌다.
20세기 들어서는 합성론과 양성론이 표현만 다를 뿐, 실질적으로 같은 내용이라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 이후에도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가 모두 인정하는 보편 공의회는 7차까지 이어진다.
5명의 총대주교좌 기준으로, 로마 교회와 동방의 교회들(콘스탄티노플, 안디옥,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은 갈등을 거듭하다가 1054년 동서 대분열(The Great Schism)로 서방교회(가톨릭 교회)와 동방교회(동방 정교회)는 갈라졌다.
* 가톨릭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를, 동방 정교회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는 안드레아(안드레)의 후계자를 자처한다. 묘하게도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지간이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1978년 이후 해마다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바울) 사도 대축일에 대표단이 이스탄불과 로마를 상호 방문하며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 것으로 촉발된 종교개혁(The Reformation)으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Protestantism)로 갈라졌다.
요컨대 431년 에베소 공의회로 네스토리우스교가, 451년 칼케돈 공의회로 오리엔트 정교회(Oriental Orthodox Church)가, 1054년 동서 대분열로 가톨릭 교회와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가, 1517년 종교개혁으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가 갈라졌다.
* 아리우스파(Arianism)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으므로, 필자의 관점에서는 적어도 기독교로 보긴 어렵다. 하지만 내 이해를 뛰어넘어, 아리우스파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를 의지하여 구원에 이르렀기를 바란다.
다음에는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원인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구글 등에 비교적 상세히 소개되어 있으므로, 필자가 느낀 주관적인 인상 위주로 정리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