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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변호사 Aug 30. 2024

#3. 원시 기독교(원시교회)를 찾아서

‘오리엔트 정교회’ 국가의 황제, 한국에 오다.

「셀라시에」 황제 만세!


1968년 5월 17일자 중앙일보는 민주공화국에 어울리지 않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해당 기사는 하일레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의 다음 날 방한 소식을 다루었다. 황제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 참전국의 일원으로 혈맹 관계를 강조한 기사는 다음 말로 끝난다.

'우리 모두 황제 폐하의 만세를 부르자'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환영대회, 1968-05-18' * 본 저작물은 서울기록원 https://archives.seoul.go.kr에서 다운받아 사용함.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 설교를 들은 강뉴 부대 파병 황제


셀라시에 황제는 아프리카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방한 2일차인 5월 19일은 일요일이었다. 이날 황제 일행은 박충훈 부총리와 한경직 목사의 안내로 영락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당시 한경직 목사는 ‘빌립과 이티오피아 내시’( 8:26~40)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국어 표기법이 당시는 '이티오피아', 지금은 '에티오피아'로 변경되었다.


‘황제 일행은 약 1시간 계속된 이날 예배에서 경건한 표정으로 기도하고 찬송했다. 예배가 끝난 다음 황제는 성화를 선물 받고 『아름다운 나라에서 따뜻한 교도들과 함께 예배를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성화를 영원한 선물로 길이 간직하겠다』고 답례했다.’ 황제 일행의 영락교회 예배 모습을 중앙일보는 이렇게 전했다.


셀라시에 황제는 자신의 근위대를 중심으로 칵뉴(강뉴) 대대 (Kagnew Battalion)를 편성하여 한국전쟁에 파병했다. 그가 직접 하사한 이름인 ‘칵뉴’는 에티오피아어(암하라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한다’, 또는 ‘격파하라’는 뜻이다. 자원하여 최전선에서 싸운 칵뉴 부대는 253전 253승이라는 경이적인 전적을 올렸다. 그 과정에서 121명이 전사했지만, 포로로 잡힌 인원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용맹했다. 후일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영웅이 된 아베베도 1년간 대대장 경호병으로 참전했다.


황제 최후의 날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쿠데타로 황제는 폐위되었고, 그다음 해인 1975년 8월 27일 궁전에 유폐된 셀라시에는 사망했다. 공식 사인은 수술 후유증이었나 살해된 것으로 보였다. 셀라시에의 유해는 세월이 한참 지난 1992년 궁전 부지의 화장실 근처 콘크리트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2000년 11월 5일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황실 예법에 따라 장례식을 거행하고 아디스아바바 성 삼위일체 대성당에 안치했다. 하일레 셀라시에는 암하라어로 ‘삼위일체의 힘’이란 뜻인데 황제는 죽어서 제 자리를 찾은 것일까?

 

황제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중앙일보 기사를 보자. ‘그는 작년 9월 군사 「쿠데타」로 황제 최후의 날을 맞았으며, 이제 또다시 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날을 맞았다. 그가 권좌에서 밀려나던 날, 연도에 늘어선 주민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 도둑아! 도둑아!』하고 주먹질을 했다는 외신이 있었다. 이런 광경은 그의 통치가 어떤 것이었나를 짐작하게 한다.’


6년이란 시간은 '우리 모두 황제 폐하의 만세를 부르자'는 외침을 이렇게 바꾸었다. 공산 군부의 집권과 함께 에티오피아는 내전에 휩싸였고, 오랜 혼란 끝에 1995년 에티오피아 연방 민주공화국이 출범한다.

  

황제를 미화하고 싶진 않다. 제정 시대의 사치와 그로 인한 민초들의 핍절, 하지만 그 이후에도 내전과 연이은 흉년 등으로 상황은 악화되어 에티오피아는 한 때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아프리카를 돕자는 취지에서 1985년 나온 노래인 〈We Are the World〉(작사·작곡 마이클 잭슨, 라이오넬 리치)는 1984년 에티오피아 대기근이 시발점이었다(가사는 뉴에이지 성격이 짙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는 오리엔트 정교회가 뭔지 몰랐지만, 이 교파(정확히는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를 국교로 하는 에티오피아는 우리에게 혈맹의 도움을 주었다. 굳이 커피와 마라톤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아프리카에서 에티오피아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가 있을까?


그런 나라의 국교였던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The Ethiopian Orthodox Tewahedo Church)의 모습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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