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 make a brigadier general in five minutes, but it is not easy to replace one hundred horses.’ - Abraham Lincoln
장군으로 진급한 1979년 6월 1일, 콜린 파월은 동료로부터 위와 같은 문구가 담긴 액자를 선물 받았다. 액자 뒤에는 ‘십 년 뒤에 열어 보라’는 메모와 함께 밀봉된 봉투가 있었다. 10년 후인 1989년 봉투를 연 파월은 이런 글을 보았다. ‘언젠가 당신은 육군참모총장이 될 겁니다’ 당시 파월은 육군참모총장보다 서열이 높은 합참의장이었다.
파월은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동두천에 있는 주한 미군 부대에서 대대장으로 복무했다. 그가 이임할 때 부하들은 ‘미래에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될 때 열어 보십시오’라는 메모가 적힌 편지를 건넸다. 합참의장이 된 파월이 편지를 열었을 때 다음 글을 보았다. ‘대대장님은 언젠가 육군참모총장이 될 겁니다’
자메이카 이민자의 아들인 파월은 ROTC 소위로 임관했다. 그런 그가 미군 역사상 최연소(1989년 당시 52세) 합참의장이 되었다. 미군의 장성 진급 시스템이 얼마나 공정한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령이 될 땐 한 계단 오르는(step up) 느낌이라면, 장군으로 진급할 땐 껑충 뛰어오르는 것(leap up) 같았다.’ 장군 진급의 감격을 콜린 파월은 그의 자서전 '나의 미국 여정(My American Journey)'에서 이렇게 밝혔다.
12. 3 비상계엄 선포로 장성들이 국회에 연일 불려 다니고 있다.
자신은 어찌어찌하여 몰랐다는 변명부터, 검찰에서 한 진술은 입 맞추기 용이었다는 실토, 눈물을 연신 닦으며 흐느끼는 모습,국회의원의 날 선 지적에 억울한 감정이 불쑥불쑥 드러나는 얼굴, 휴식시간에 국회 방송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걸 모른 채 군화를 벗고 발을 주물럭거리며 휴대전화 게임에 몰두해 ‘게임군’이란 비아냥을 들은 장군까지.
범법자로 몰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들을 삥 둘러쌌고, 뒤늦은 후회와 억울함, 강 건너 불구경의 초월적 무심함이 뒤를 이었다. 적어도 손자병법이 그리는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의 이상(理想)과는 거리가 멀다.
12월 12일 오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직무 정지되어 고창준 제2작전사령관이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가 되었다. 이로써 지금까지 직무 정지가 된 장성은 7명(아래 참조), 이들의 계급장에 달린 별의 개수는 17개에 달하게되었다.
비사관학교에다가 연줄까지 없는 장교들은 능력이 있어도 영관급(주로 소령)으로 군복을 벗는 일이 허다했다.'출신'은 능력에 앞서는 골품(骨品)이었고, 애초 골품이 다르면 하위 리그를 전전해야 했다. 특정 출신으로 이루어진 그들만의 리그는 물론, 하위 리그에서도 이른바 백(빽)으로 대변되는 연줄은 사닥다리 같은 거였다.
책임질 일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면서, 진급하기에 좋은 보직과 교육 기회는 특정 출신이 죄다 챙겨갔다. 다 챙겨가면 너무 표가 나서인지 까치밥처럼 남겨 놓은 부스러기 몇 조각을 두고 하위 리그 장교들은 경쟁했다. 요컨대 약삭빠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게 두 리그 모두를 지배하는 문화였다. 특정 출신으로 도배된 이번 계엄 사태 관련 장성들을 보며 세월이 흘러도 변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란호가 출항하자 약삭빠르게 가담하고, 파선하자 뛰어내리기에 바빴다.’ 이번 내란 혐의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역사에 기록될 장군들의 모습이다.
장군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우리에게아스라이 먼 별 같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