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며 빛나는 사람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인간 예재영입니다. 청소년 과학잡지 <과학소년>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고요. 과학 좋아합니다.
고등학생 때 문과생이었는데 공대를 가고 과학 기자가 됐어요. 어릴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나요?
어릴 때는 그냥 어린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정도의 호기심 수준이었어요.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이제 먹물이 돼야겠다’, ‘나는 공부를 해서 사무직을 해야겠다’ 해서 문과에 진학했고요. 그런데 막상 대학을 가려니 조금 수능을 망치기도 했고 가고 싶은 학과가 별로 없었어요. 부산대 사회학과와 한양대 에리카 산업경영공학과 이렇게 두 군데 중 고민을 하다가 사회학과를 나오면 치킨집을 하게 될 것 같고, 공대를 가면 뭐라도 하겠지 해서 공대를 갔죠.
그런데 공대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네요?
1학년 때는 맨날 학교 빠지고 놀러 다니다가 ‘그래도 대학생이 됐는데 하고 싶은 걸 찾아보자’해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책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했죠. 자비로 독립 출판 프로젝트도 진행했어요. 해보니 책을 만드는 과정이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학교 공부와는 멀어지고 졸업만 해서 출판사에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공대를 갔다면 기사 자격증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된다는 말에 산업안전기사라는 자격증을 땄어요. 그때 마침 에듀윌이라고 자격증 수험서 만드는 출판사에서 산업안전기사 자격증 수험서를 만들 사람을 뽑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서 인턴부터 시작했죠.
에듀윌은 주 4일 근무로 유명했잖아요. 그런 복지를 포기하고 이직을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수험서를 만들어본 사람들은 경험할 텐데 처음에는 재밌어요. 왜냐하면 완전히 새로운 책을 만드는 거니까요. 근데 첫 개발이 끝나고 나면 그 뒤로는 법 바뀐 거 없는지, 오류 없는지 체크하면서 매년 똑같은 내용을 개정만 해요. 저는 계속 새로운 걸 만들고 싶었기에 이 개정 작업이 재미없었어요. 그래서 이제 이런 거 말고 출판사에서도 내가 만드는 거에 많이 기여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면서 이직을 준비하던 찰나에 <과학소년>이라는 잡지를 만드는 편집자를 뽑는다는 채용 공고를 봤죠. 알고 보니 편집자가 아닌 기자를 뽑는 거였지만요.
새로운 걸 계속 만들고 싶다는 게 참 멋져요. 그럼 과학 기자로서 회사에서의 일과는 어떻게 되세요?
제가 9 to 6로 일을 해요. 아침에 출근을 하면 10분 정도는 메일을 확인하며 급한 것 먼저 쫙 읽어요. 그다음에 커피를 뽑아와서 덜 중요한 메일과 뉴스레터를 읽고요. 뉴스레터를 좋아 헤서 열 개나 구독하고 있어요. 그거 다 읽고 영화사나 일반 회사, 과학계에서 온 보도자료 중 관심 가는 제목이 있으면 보고요. 여기까지 하면 9시 30분쯤 돼요. 이렇게 30분 정도만 루틴하게 돌아가는 거고 나머지는 오전이든 오후든 필요할 때 원고 쓰고, 자료 조사하고, 취재하거나 촬영하거나 해서 매일매일 달라요.
과학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하면 막연하게 느껴져요. 기사의 새로운 소재는 어디서 많이 찾아보는지 궁금해요.
소재는 미디어를 되게 많이 봐요. 특히 어린이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고 계절성이랑 시의성도 많이 체크를 해요. 예를 들면 작년에 탕후루가 어린이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았어요. 그래서 탕후루를 통해서 과학적으로 쓸 수 있는 기사 내용이 뭐가 있을까 찾아봤거든요. 이렇게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나 유행이나 그런 시의성을 타는 주제를 과학과 연결해서 계속 생각해 보죠.
매달 기사를 썼으니 꽤 많은 양이 누적되었을 텐데요. 쓰신 기사 중 특별히 좋아하거나 잘 썼다고 생각한 기사가 있나요?
작년 9월에 ‘기후변화로 변해버린 우리나라 생태계’라는 주제로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때 되게 조사를 많이 했어요. 전국의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인터뷰나 기사 같은 것도 찾아봤고요. 실제로 그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보고 사진도 받아봤죠. 그때가 시의성도 적절했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사여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이 기사를 읽는 주 독자층이 어린이예요. 성인 독자와는 좀 다를 것 같은데 어떻게 소통하세요?
잡지 맨 뒷면에 편집 후기를 다섯 줄 정도 매달 쓰거든요. 어린이들이 그걸 엄청 열심히 읽어요. 편집 후기에다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쓰는 거예요. 이번 달에 저에게 있었던 이슈나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던 것을 쓰죠. 이건 저의 일방적인 소통이고 독자 카페가 있어요. 가끔 질문하거나 말을 걸면 대답해 주고 하면서 온라인으로 주로 소통해요. 1년에 한 번 정도는 몇 명만 뽑아서 오프라인 미팅도 하고요. 어떻게 알았는지 가끔 카톡이나 DM으로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네요.
이렇게 어린이들과 꾸준히 소통도 하는 과정에서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 하나만 들려주세요.
작년에 태백시에서 진행하는 ‘과학소년과 함께하는 안전 캠프’에 갔다 왔어요. 캠프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취재하면서 200~300명 정도 되는 어린이 독자도 만났는데 재밌었어요. 어린이 중에 팬이라고 얘기하면서 기자들을 엄청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래서 초등학생들과 만남을 가질 땐 저희끼리 팬미팅을 한다고 말하거든요. 좀 신기해요. 그냥 <과학소년>의 글을 쓰고 있는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슨 연예인이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대해주는 게 좀 특별하고 재밌는 경험인데 캠프에서도 그거를 느낄 수 있었죠. 가서 사인을 100장을 넘게 했어요.
사인 100장이라니! 정말 기분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월간 잡지를 만들다 보니 매달 마감을 하시잖아요. 그건 힘들지 않으세요?
저는 매월 마감을 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같다고 항상 얘기하거든요. 장점은 매달 새로운 걸 할 수 있다. 단점도 매달 새로운 걸 해야만 한다. 마감에 대해서는 지치는 게 없어요. 제가 매달 하는 기사를 쓰고 잡지를 만드는 메인 업무의 양은 똑같거든요. 그것 이외에 회사에서 따로 해야 되는 프로젝트나 일이 생겼을 때 업무가 가중이 되기 때문에 그럴 때는 조금 지칠 때가 있어요. 그러나 날짜가 정해져 있는 것을 장점으로 생각해 저는 월 마감은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마감 날짜가 부담일 것 같은데, 다른 관점이네요. 그렇다면 과학 기자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과학소년> 기자라고 하면 과학계 누구를 만나도 되게 호의적으로 잘해줘요. 이게 큰 매력이에요. 과학계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린이 과학 교육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과학 잡지가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알다 보니 섭외나 인터뷰를 잘해주려고 노력하세요. 그리고 초등 잡지 기자로서 어린이들의 아이돌이 돼 볼 수 있다는 그런 장점이 있고요. 계속 자료 조사를 하고 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되다 보니 일을 하면 할수록 상식과 지식이 넓어지는 느낌 드는 것도 좋네요.
‘과커몰리’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에요. 이건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과학드림이라는 분이 <과학소년> 기자 출신인데요. 회사에서 유튜브를 하다가 전업 유튜브를 하셔서 지금 100만 유튜버가 되셨어요. 그분이 <과학소년> 아이템 중 버려진 것들이 아까워서 그걸로 하나둘씩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취재 가서 본 것들과 버려진 아이템들이 많으니, 이것들로 간단하게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대신 저는 어린이 대상으로 최대한 쉽게 과학을 설명하는 숏폼 영상을 만들기로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꽤 재미가 있어서 꾸준히 하게 됐어요.
이것도 과학 콘텐츠네요. 과학 유튜브 채널 운영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저는 잡지 기자로서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이용하는 거에 있어서 공정 이용의 룰을 지키려고 노력을 하기 때문에 진짜 저작권이 깨끗한 그런 자료와 출처가 정확한 자료만 쓰려고 노력을 해요. 그리고 저는 글 쓰는 일을 하니까 대본에 신경을 많이 써요. 쇼츠의 특성상 집중력 있게 빠르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문장을 짧고 명확하게 쓰는 게 팁이에요. 그리고 해외 학술지 사이트나 외국 과학잡지 사이트를 보면서 한국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밌어 보이는 콘텐츠를 빠르게 가져오는 게 이슈를 끌기 좋겠죠.
저는 직장만 갔다 와도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하겠던데 어떻게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잘하시나요?
대본을 회사에서 쓰면 돼요. 쉬는 시간이나 남는 시간에 미리 써놓는 거예요. 그러면 퇴근 후에 녹음과 편집만 하면 되거든요. 자료 조사와 대본 쓰는 게 제일 오래 걸리는데 그걸 회사에서 남는 시간에 해버리면 균형 있게 할 수 있어요. 집에서는 쉬면서 최소한의 일만 하고 회사에 있는 자투리 시간을 잘 이용해 보세요.
글이든 영상이든 직접 만든 콘텐츠에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순간도 있었을 텐데 그럴 땐 어떻게 극복하세요?
너무 간단하면서도 전형적인 답변인데 무시하면 되거든요. 잡지 같은 경우는 독자들이 초등학생이고 대부분 호의적이다 보니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일이 거의 없어요. 반면 유튜브는 악플이라도 달리는 게 좋은 거예요. 댓글이 많이 달려야지 노출이 많이 되거든요. 저에 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거라 괜찮아요. 그 사람의 생각이 잘못됐거나 욕먹을 일이면 다른 사람들이 대신 와서 일침을 가해주더라고요. 그래서 무시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고 ‘댓글이 달리는 게 어디냐’라는 마인드로 가면 건강에 좋은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기 일을 굉장히 사랑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을 즐겁게 하는 비결 같은 게 있을까요?
제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든 간에 그 일 안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일을 하게 됐을 때 그 속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식당 알바든 편의점 알바든 그 안에서 일했을 때 내가 어떤 보람이 있을까라고 생각을 해요. 이전에는 제가 만든 수험서를 보고 합격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꼈고, 지금은 제가 쓴 기사를 재미있게 잘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껴요. 그래서 만약에 갑자기 누가 시켜서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보람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무기력하고, 하기 싫은 순간이 있지 않으세요? 그럴 땐 어떻게 하시나요?
기사가 너무 안 써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안 씁니다. 마감이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그럴 때는 다른 일을 조금 하면서 머리도 식히고 하는데, 제가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거나 싫어졌을 때는… 어떡하죠? 딱히 그런 걸 크게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긍정적이고 내면이 단단하고 느낌을 받아요. 비결이나 루틴이 있나요?
긍정적인 것은 욕심을 조금 버리면 되는 것 같아요. 이 일로 엄청난 큰 성과를 이뤄야겠다. 엄청나게 큰돈을 벌어야겠다. 내가 여기서 뭔가 해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그냥 주어진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에 집중해요. 현재 상황에서 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더라도 그걸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편이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이 있기에 마음이 안정적이라서 그것도 큰 것 같아요. 저는 이제 아내가 있고 강아지가 있고 가족이 있어서 긍정적으로 되는 부분들이 확실히 있는 것 같네요.
'주도적'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어요. 과학 기자로서 혹은 인간 예재영으로서의 목표가 따로 있으신가요?
기회가 있다면 유튜브 채널이든 TV든 방송에 출연해 보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불러만 준다면요. 회사 유튜브 채널에는 몇 번 나갔지만 타 유튜브 채널에는 섭외가 들어온 적은 있는데 아직 촬영은 한 적이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런 데 한번 나가보고 싶네요. 이건 단기적인 목표고 장기적인 목표는 가족끼리 행복하게 사는 거요. 지금 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냥 일을 지금 하고 있으니까 좋아하는 거지 저는 이제 가족과 제 삶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가치가 엄청 커요. 그래서 일이 만약 그것에 방해가 된다면 저는 일을 안 할 거예요. 지금은 안 그러니까 즐겁게 일하는 거죠.
그럼,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려요.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어린이 과학 잡지가 <어린이 과학동아>, <과학소년> 이렇게 두 개밖에 안 남았거든요. 초등학생이 줄다 보니 돈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현재 어린이 과학 잡지 기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열 명도 안 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입사하고 한 1년쯤 됐을 때 독자 친구들과 약속한 게 있거든요. 어린이 과학 잡지가 언젠가는 없어질 텐데 우리나라에 어린이를 위한 과학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더라도 저는 어린이를 위한 과학 글을 계속 쓰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잡지가 없어지든 제가 여기를 떠나든 또 다른 일을 하게 되든 간에 어린이를 위한 과학 글쓰기는 계속할 거예요. 유튜브 채널도 그중의 하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