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Dec 02. 2023

#1 21년 겨울,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세무사 시험에 합격하면 6개월간 의무적으로 개인세무사사무소, 세무법인, 세무서 중 하나를 골라 수습기간을 이수해야한다.


 21년 12월에 합격한 나는 합격소식을 듣자마자 재빨리 이력서를 작성하고 수십군데에 서류를 넣었다.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면접 연락이 올 때 마다 서울로 올라가는 것도 일이었다(대부분 큰 회사들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전화를 해서 내일 면접을 보러오라는 식이다).


 그래서 서류를 보고 연락이 오면 바로 면접장으로 튀어나갈 수 있게 면접복장을 바리바리 싸들고 혼자 역삼역 근처 모텔에 일주일치 예약을 잡았다.


 그렇게 수십번의 서류합격과 불합격, 약 7~8번의 면접을 거쳐 신논현역 근처의 회사 딱 한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12월 중순부터 출근하라는 말에 부랴부랴 방을 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6개월간 묵을 숙소가 필요했다.


 회사 근처를 위주로 방을 보다보니 6개월 단기렌트 시세는 보증금 70~80에 월세 75~90 수준이었다. 6개월 후에는 이 회사에 남을지 다른회사로 이직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1년이상을 계약하고 싶진 않았다.


전형적인 구축 빨간벽돌 빌라


 그래서 결국 사진 같이 생긴 빌라단기렌트를 택했다. 월세는 75만원에 관리비는 7.5만원 별도였다. 이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시설은 열악했다.


 건축물대장을 떼보니 지은지는 50년이 다되어가는 빨간벽돌 빌라였다. 1층엔 식당이 있어서 그런지 종종 바퀴벌레가 나오기도했다. 다행인건 어렸을 때도 주택에 살아서 각종벌레에 대한 면역이 좀 되어있었다.



집 내부


 낡은 외관과 달리 다행인건 내부는 그럭저럭 살만해 보였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4~5개 정도의 방을 봤는데 이 방이 사이즈가 가장 큰 방이었다.


 나는 자고로 집은 인간답게 살 수 있을만큼 크기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의라 고민없이 제일 큰방을 선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사와 걸어서 15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기 때문에 82.5만원을 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6년간 지방에만 살던 나의 첫 서울살이,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6개월간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전부 처음해보는 일이다보니 재미도 있었다. 내 이름과 법인이름, 세무사라는 직함이 박힌 명함도 나오니 뭔가 뿌듯하기도 했다. 항상 부모님과 같이 살다 홀로나와 독립했다는게 즐거웠다. 나만의 공간이 생긴 것에 대한 즐거움이랄까?

 시즌때는 10시~11시 퇴근도 밥먹듯하고 주말에도 출근했지만 별로 힘들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회사, 이 집에서 6개월을 간신히, 억지로 채우고 바로 다른회사로 이직함과 동시에 이 집을 떠나게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