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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18. 2024

집에 오자 꿈이 살아나네

통증은 여전하지만

남편이 생일 선물로 준 쿠션과 소금등. 내가 퇴원하기 전에 가구 배치도 새로 해서 침대에 누워서 맞은편의 와불님을 뵐 수 있다!


나와 아이와 남편의 생일을 일렬로 세우 난 음력으로 1월 중순(양력 2월 중순). 아이 양력으로 2월 중순. 남편은 양력으로 3월 초(그것도 삼일절!). 아이와 남편은 헷갈릴 일이 없다. 아이의 생일 2주 후가 남편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다. 음력으로 생일을 하니 해마다 날짜가 달라진다. 그래서 가끔 재미있는 일도 생긴다. 몇 년 전에는 남편과 쌍둥이인 우리 언니와 내셋이 같은 날 생일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정말 드물긴 하다. 그래서 해마다 내 생일 날짜를 체크하는 일 내게 소소한 기쁨이자 즐거움을 선사다.


올해는 이랬다. 셋이 같은 요일인데 아이 생일이 첫 번째, 그다음 주가 . 그리고 남편이 셋째 주. 문제는 남편이 나 퇴원한다고 너무 흥분을 했는지 셋 중 가장 빠른 아이 생일을 내 생일로 착각했다는 것(이럴 수가! 자타공인 딸바보 파파였는데..). 나는 생일이 오기도 전에 이른 생일 선물로 알록달록 열 가지 색 쿠션과 소금 전등을 받았다. 딸 생일을 잊어버린 것도 나랑 생일을 착각한 것제가 아니었다. 선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잊어버린 아이 선물은 남편이 아이 생일 전날 저녁 영화 보러 간 나가더니 책과 인형을 사 왔다. 책 사이에 책갈피처럼 쩍슬쩍 금도 끼워서. 레겐스부르크에 계시는 힐더가드 할머니가 파파 계좌로 이체하생일 용이었다. 조하지만 동서양 불문 가장 좋은 선물 캐시. 연로하신 부모님뿐만 아니라 사춘기 애들도.


아이의 생일은 나 대신 친구 율리아나 가족이 깜짝 준비함.


아이의 생일은 그렇게 조촐하게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점심 무렵 아이의 절친 율리아나 할머니 리아나 엄마 이사벨라율리아나가 같이 왔다. 선물과 홈 메이드 생일 케이크를 들고서. 아이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케이크는 설탕을 조금만 넣어서 나도 한 조각 맛보았다. 생크림 빼고. 맛있었다! 둘이 꽁냥꽁냥하더니 금세 밖으로 내빼고, 할머니도 차만 한 잔 하시고 가시고, 이사벨라랑 둘이서  시간 넘게 수다를 떨다가 내 눈이 가물가물 잠길 즈음에야 긴 작별 인사를 또 하고 이사벨라가 떠났다. 이사벨라에게 참고할만한 건강한 레시피들었다. 음식 스승들은 이렇게 평범한 모습으로 내 곁에 오래 계셨던 거였다. 내가 몰랐을 뿐..


퇴원하던 당일날 아이의 또 다른 절친들 한나 엄마와 메를레 엄마도 만났다. 퇴원이 오전인 줄 알고 오후 세 시에 집 앞 이태리 카페 레스토랑 소피아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처방전 때문에 퇴원이 미뤄져서 오후 4시 반에야 만났다. 두 사람은 내가 피곤하면 다음에 만나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1시간 정도 앉아 차를 마시고 배가 고파서 바게트 위에 방울토마토와 허브 오레가노를 올린 브루스케타를 먹었다. 한나 엄마 카타리나가 내게 차와 브루스케타를 사주었고, 메를레 엄마 마리는 예쁜 튤립 화분을 선물로 들고 왔다.


나는 이제 독일 엄마들을 만나는데 두려움이 없다. 예전에는? 있었다. 두려움이라기보다 부담감 같은 거라고 해야겠다. 독일어로 수다를 떨어야 한다는 피로감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부담감과 피로감이 없어졌다. 처음에는 아이의 친구 엄마로 만났지만 지금은 내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의 초등학교 친구 두 명과 김나지움 친구 두 명. 이렇게 아이의 친구 엄마들이 내 친구들이 되어간다.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 둘은 내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산책이든 장보기도 같이 가주겠다고 제안했다. 장보기는 남편이 해주니 남편이 출장 가는 날 부탁하, 내가 산책을 나갈 수 있게 되면 산책 같이 가 달라고 부탁하 좋겠다. 혼자 나갔다가 통증이 온다든지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퇴원하고 이틀 동안 남편이 준비해 준 아침 식사와 퇴원하는 날 아이 친구 엄마들과 카페에서 차 마심!


집에 오자마자 내 침대 위로 쓰러져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나 저녁이었다. 남편이 사 둔 소금 전등은 나의 밤을 밝혀주었고, 세계문학 책들 사이에 수줍게 놓인 한글학교에서 문학수업을 마치고 받은 엽서는 또 얼마나 소중한 꿈과 추억을 소환하던지. 그랬다, 내게도 꿈이 있었. 강을 되찾아 뮌헨의 한글학교에서 문학수업을 계속하겠다는 꿈. 그리고 다시 새로운 꿈도 꾸다. 아직 밝히기엔 살짝 부끄러운 . 꿈이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 꿈이 이루어질지 어떨지는 생각하지 않고 일단 꾸기부터 는 꿈. 꿈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과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꿈처럼 달콤하게 느껴지는. 런 꿈들이 나를 살게 하고 통증을 이겨내고 일어서게 만들 라고 굳게 믿는다.


에 와도 통증은 여전하다. 틀 밤을 통증 때문에 오래 깨어 있었고, 오늘로써 사흘째다. 그래도 통증과 조금씩 친해지고 있다는 느낌은 받고 있다. 약은 병원에서 먹던 것과 조금 차이는 있지만 하루 다섯 번 정도 먹고 있다. 진통제 먹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통증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지 그 간격을 황금 비율로 조정하려고 궁리 중이다. 그사이 조카가 진한 닭육수를 한 통 보냈고, 옛 직장동료 J가 독일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귀한 콩나물과 두부와 조선 무를 주고 갔다. 한국에서 언니는 한살림에서 장을 보고 있다. 소중한 식자재들을 들고 오며 어떻게 하면 내게 맛있는 걸 해줄 수 있을까 비행기 타고 내릴 때까지 고민하겠지. 한국의 그리운 샘과 가족들과 친구들과 지인들은 매일 내게 축복과 기도를 보내주고 계시다. 일어나야지. 이런 에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으랴. 대답은 빨리 건강해지는 것이다. 봄도 오데 통증이 좀 줄면 산책이라도 나가려 한다.


자다가 깨면 나의 새벽을 함께해주는 소금등과 내가 잊고 있었던 문학 수업이라는 꿈을 일깨워준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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