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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19. 2024

이 몸이 도량이고 법당이고 수행처다

집에서 법문을 듣다가

퇴원하던 날 아이 친구 메를레 엄마가 선물한 튤립 화분.


일요일 아침이었다. 퇴원한 지 사흘. 매일 아침 침대에서 남편에게 아침을 받아먹고 있었다. 간밤엔 잠을 못 잤다. 통증과 함께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느라고. 통증이 오면 일단 침대에서 내려오는 게 힘들다. 어찌어찌 화장실까지는 갔는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통증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변기가 낮은 것도 문제였다. 할 수 없이 변기에 앉은 채로 통증이 가라앉거나 물러가기를 기다릴 수밖에. 화장실에 오기 직전 먹은 모르핀 약이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그렇게 진땀을 흘리며 화장실을 다녀온 게 새벽 4시에서 5시였다. 침대로 돌아오자 진이 빠지고 맥도 빠졌다.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다. 어쩌다가 그 시간에 제주에 사는 도반 생각났을. 20여 년 전 상해에서 만났을 때 내게 <법*스님의 목탁소리>를 소개하던 도반이었다. 요즘도 그분의 법문을 듣고 있는지 궁금했다. 왜냐하면 유튜브에서 가끔 그분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우리 언니 역시 매친구 Y와 함께 그 스님의 법문을 들으러 마포 BBS 불교방송 법당에 다닌다는 것을 을 때의 신기함이란.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도반이 말했다. 방구석 1열에서 매주 서울법당, 해운대법당, 상주법당의 법문을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고. 혹시 생각이 있다면 같이 들어보는 건 어떠냐고. 20여 년 전 그랬듯이 공기처럼 가볍게 물어서 나 역시 긴 생각 없이 그러마 했다.


시작은 다. 제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도반이 해질 무렵 표선 비치의 찰랑이는 잔물결 함께 보내주었을 때. 다음에 오면 바닷가 맨발 걷기는 물론 물속에서 만나는 복어도 귀엽다며 스노클링까지 즐기게 해 주겠노라고 약속했을 때. 도반의 얘기를 듣자마자 꼭 한번 가야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도반이 내게 추천한 건 영성 강좌였다. 바로 언니에게 부탁해서 강의 신청을 했다. 언니도 기뻐했다.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 상주법당의 법문을 보내주었고, 소식을 들은 친구 Y도 일요일 아침부터 따끈따끈한 해운대법당 법문을 보내주었다. 마치 무슨 법칙이 있어 내가 예,라고 말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모든 것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다음은? 아이 방에 가서 2층 침대의 아랫칸에 누웠다. 창문을 바라보는 자세로 2월 오전의 게으른 햇살을 맘껏 누렸다. 폰을 배 위에 올리고 법문을 들었다. 핸드폰 거치대로는 내 배만큼 폭신폭신한 라이언을 용했다. 한 가지도 모자라거나 부족하지 않았다. 충만했다. 어딘가 불편하게 꽉 찬 충만 아니 우리가 귀가 닳게 들었던 그런 텅 빈 충만. 드디어 그런 기분을 느꼈다. 이럴 땐 커밍 아웃을 해야 맛이지! 서울의 J언니와 부산의 샘과 Y언니와 친구 M에게도 톡을 날렸다. 


"다시 마음공부를 시작하려고 해요! 스승을 잃고 헤매던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 발을 떼려고 한다고요."


모두 한마음으로 축복해 주었다.


아이가 생일날에 자기 자신을 위해 산 꽃다발. 저런 게  신기하다. 자기 자신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마음이라니.


그날은 시어머니 카타리나와 시누이 바바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퇴원 후 첫 만남이었다. 다 함께 한국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어머니와는 병원에서 한 달 못 봤다고 어색하지는 않았다. 미리 생일을 축하받았고, 언니가 온다고 기뻐해 주셨다. 그런데 식당은 함께 못 갔다. 오전에 통증이 또 있었고, 혹시라도 식당에서 통증이 오면 큰일이다 싶어서 나는 동참을 포기했다. 대신 돌아오는 길에 맛있다고 소문과 칭찬이 자자한 순두부찌개 포장을 부탁했다. 그곳은 뮌헨에서 새로 오픈한 그릴 레스토랑 한쌈이었다. 머니도 바바라도 대만족이었다. 돌솥비빔밥, 불고기, 해물파전, 잡채, 떡볶이, 군만두 중 어머니를 사로잡은 건 바싹한 해물파전었다고 (이건 담인데, 카타리나 어머니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우리 언니의 비행기표를 힐데가드 어머니가 지불하셨다는 건 남편도 말하지 않은 모양이다).


늦은 점심을 기다리며 혼자 집에서 법문을 듣는다. 나른한 햇살처럼 법문을 설하시는 스님의 목소리가 귀에 착착 감겼다. 졸리지는 않았다. 20년 전 스승과 도반들과 상해에서 불법의 바다를 항해할 때처럼 기대하지도 않던 즐거움이 밀려왔다. 스님이 말씀하신다. 세상에 '적' 없다고. 그게 사랑이고 자비라고. 나 저런 말에 감동받을 때가 있었지, 혼잣말도 해 가면서. 스님은 계속 말씀하신다. 분별없이 받아주는 것, 감당해 주겠다고 마음을 여는 것, 이런 마음이 중요하다고. 도를 이룬 사람은 화도 안 날까요? 큰스님들은 화를 안 내실까요? 귀를 쫑긋 세운다. 나 역시 화를 잘 내서 저런 거 배워야 하는데. 그런데 그런 게 아니란다.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고. 화가 안 나면 오히려 큰 일이란다. 우리는 돌멩이가 아니니까. AI가 아니니까. 다만 화에 끌려가지 않을 뿐. 혼자 웃는다. 이런 게 공부하는 거움이.


통증이란 내 몸의 화일까 짜증일까 번뇌일까 망상까 착각일까. 나란 없다는데 통증은 또 어디에. 모든 존재가 나라면 통증도 ''겠네? 혼자서 스님 법문 들으며 이리저리 궁리하는 재미도 컸다. 작도 중간도 결론 이 몸이 량이고 법당이고 수행처니 잘해보라는 말씀. 법문을 다 듣고는 언니와 친구 Y와 도반에게 자랑질도 잊지 않았다. 나, 해운대법당 법문 다 들었어! 법문을 다 듣자 햇살도 창에서 비켜났다. 시계는 오후 3시에 가까워오고, 식당에 갔던 가족들도 돌아왔다. 뜨끈하고 적당히 얼큰한 순두부찌개와 함께. 역시 법문의 완성은 맛있는 순두부 한 그릇이었네!


음식 사진은 아이에게 부탁했다.
점심 메뉴. 아이의 이층 침대 아래칸에서 햇살을 받으며 법문을 들었다. 폭신폭신한 라이언을 핸드폰 거치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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