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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r 09. 2024

어느새 퇴원

휠체어와 함께

퇴원하는 날 언니가 차려준 불고기 상추쌈과 미역국. 꿀맛이었다!


드디어 퇴원이다. 간만에 날씨도 화창다. 그런데 마음 무거웠다. 휠체어를 타고 원에 왔다가 다시 휠체어를 타고 퇴원하기 때문이다. 열흘 전 입원 날엔 방광염이 심했다. 통증 방광염 또 거기다 방광이 신경을 눌러서 오는 통증이 뒤죽박죽 섞였던 것 같다. 오자마자 소변줄을 달고 칠 동안 항생제를 맞고서야 방광염은 잡혔다. 그래도 당분간 소변줄은 달고 있기로 했다. 지금은 혼자 일어서서 걷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입원 기간 중 엉덩이 마비가 심해지고 그 여파인지 오른쪽 다리 잘 움직이지 않았다. 화요일 입원하고 토요일에 일어나 앉았는데 양쪽 다리에 힘이 많이 빠져있었다. 혼자  걷기를 시도하다 다에 힘이 빠져 무릎이 접힌 적도  번 있다. 앞이 캄캄했다. 의사 샘과 우리가 가장 우려하던 이었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혼자서 걷기를 연습하려 했는데 잘 안 되어서 제자리 걷기만 했다. 마음속으로 병원에서 언제 퇴원하라고 할  걱정이었다. 그런 상태로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갈 수 없었다. 지난 주말 얘기다. 

 

드디어 월요일. 담당이신 닥터 후펠 Dr. Hupel 샘이 왔다. 선량하신 분. 암센터의 닥터 마리오 글루 Dr. Marioglou 샘처럼. 저, 퇴원해야 하나요? 가장 궁금한 것부터 여쭤봤다. 샘이 말했다. 언젠가는 가셔야죠. 언제까지 저희 병원에 계실 수 없다는  아시죠? 물론 안다. 그럼 언제? 언제 퇴하고 싶으세요? 아.. 다행이었다. 내게 선택권을 주셔서. 왜냐하면 남편이 지난 일요일 저녁 출장을 가 이번주 금요일이 되어야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남편도 없이 집에 언니랑 둘이 있다가 돌발 상황이라도 생기면 어쩌란 말인가. 자신이 없었다. 이번주 금요일까지는 무조건 병원에 있고 싶었다. 과연 가능할까? 그렇게 오랫동안? 가능했다! 후펠 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 주셨다. Gott sei Dank! (고트 자이 당크.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총 열흘 동안 입원을 했는데 통증과 마비가 심해지고 근손실까지 겹서 걷기에 어려움이 생겼다. 또입원 기간 동안에는 통증으로 잠을 못 잤다. 미미한 통증 있잖나. 신경을 건드려 잠들래야 잠들 수 없는. 약을 달라기엔 뭐 하지만 약을 안 먹기도 애매한. 내 상태를 지켜보던 언니는 체류 기간을 4월 첫째 주까지 연장했다. 독일의 부활절 방학까지. 의사 샘은 모르핀 약 용액을 높여주었다. 나는 샘께 부탁해서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같이 복용해 보기로 했다. 수면제 만으로는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경안정제를 먹고서야 마침내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때의 안도감이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사람이 매일 잠을 못 자면 어떻게 되겠나(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잠을 자게 된 건 퇴원하기 이틀 전부터다).


두 다리로 서고 걷지 못한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매일 이른 아침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난 뒤 침대에 일어나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내려다았다. 무지 다리에 이 들어가지 않았다. 날에 물리치료사에게 배운 동작들도 할 수가 없었다. 래도 포기는 안 된다. 불면이 길어질 때는 앉거나 보조기를 잡고 서서도 꾸벅꾸벅 졸 때가 있었다. 그래도 다리를 움직여야 했다. 집에 와서는 아직 서지 못했다. 아마도 나의 최대 미션이 될 거 같다. 서서 걷기. 휠체어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걷기. 집에 오니 언니가 당장 불고기를 해주었다.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고. 맛있게 먹었지만 요즘 들어 먹는 양이 줄었다. 과식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건 좋은 식습관 같다. 아직까지 입맛을 잃지 않았고, 항암 중 부작용인 구토도 아직 없다. 


오랫동안 다리 부종 마사지를 못 받았는데 다음 주부터 내 부종 마사지사인 프라우 호르카가 방문을 해주겠다고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내가 다니던 물리치료센터에서는 방문 치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프라우 호르카의 금요일 마지막 고객이었는데 그녀가 우리 집에서 바로 퇴근한다는 조건으로 일이 성사되었던 것 같다. 방문 물리치료사는 바바라가 알아보는 중이다. 매일 오전 1시간씩 요양 보호사도 다녀간다. 삶이 뭔가 예전과 많이 바뀐 느낌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다음 주엔 다시 항암. 공포의 빨간약으로 불리는 항암을 잘 견디고 있다. 이 약은 머리카락이 안 빠진다고 의사 샘께 들은 대로 아직까지 짧게 민 머리는 빠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언니 말로는 그사이 자랐다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절망할 정도는 아니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 내 두 다리로 걸을 때까지!


병원에서 먹은 과일들(위). 집에 와서 먹은 채소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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