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넷플릭스에서 영화로만 보았던 개츠비를 책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영화가 책의 내용을 똑같이 옮겨 담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기억이 가물가물 했기 때문에 다시 기억을 더듬으면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책으로 읽으면서 더 내용도 자세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무렵 미국의 상류층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인 닉 캐러웨이도 상당한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작품에도 나오지만 작품에서 상대하는 사람들이 워낙 큰 부자라 주인공이 가난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초반에 주인공의 집안도 부잣집이라는 언급이 있고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을 봤을 때 평범하지는 않다.
어쨌든 주인공이 사촌 동생인 데이지와 데이지의 남편인 톰, 그리고 데이지의 친한 친구였던 조던 베이커와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데이지의 남편 톰과 주인공은 같은 예일 대학교 동창이었다. 톰 역시 부잣집 도련님 신분이고 사업을 벌여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데다 근육질에 마초 같은 남자였다. 조던 베이커는 유명한 여자 골프 선수였는데, 주인공과 연인 사이가 된다.
주인공이 처음 톰과 데이지를 봤을 때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톰이 항상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알만한 사람은 톰이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주인공이 톰을 알게 된 시점에는 윌슨이라는 자동차 정비사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톰의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은 톰에게 약간의 실증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이 살던 부자 동네에서는 과거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개츠비라는 엄청난 부자가 있었다. 개츠비는 매일 밤 큰 파티를 열었지만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개츠비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도 많이 돌아다녔는데 보통 안 좋은 것들이었다. 사람을 죽였다던가 범죄자라던가 하는 이야기들이었는데 주인공은 그런 소문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런 개츠비가 주인공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중년에 배 나온 모습의 개츠비를 상상했던 주인공에게 개츠비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젊고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개츠비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과거를 전부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개츠비가 5년 전 군 장교로 있던 때 데이지와 연인관계였으며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츠비가 부자가 되어 데이지의 집 인근으로 이사를 온 것은 모두 다 데이지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주인공은 개츠비의 부탁으로 데이지와 개츠비의 만남을 주선한다. 데이지와 개츠비는 자연스럽게 다시 사랑에 빠져 버린다. 사실 데이지에게 개츠비는 수많은 연인 중에 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남편과 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을 잊지 못하고 엄청난 거부가 되어 다시 나타나 사랑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주인공과 그의 연인인 조던 베이커와 만남을 계속 주선하며 둘이 만날 구실을 만들고 남편 몰래 사랑을 나눈다.
데이지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 개츠비는 본격적으로 톰에게서 데이지를 뺏어오기로 작정한다. 그래서 톰, 데이지, 닉 캐러웨이(주인공), 조던 베이커와 만남을 주선한 뒤 그곳에서 톰에게 데이지는 5년 전부터 자신 만을 사랑해왔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데이지에게 톰과 자신 사이에서 선택을 내리라고 압박한다.
수세에 몰린 톰은 데이지에게 예전에 서로 사랑을 나눴던 추억팔이를 함과 동시에 개츠비는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개츠비가 어떻게 부를 축적했는지 그때까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던 사실이 이때 밝혀지게 된다. 그 때문에 데이지의 마음 역시 톰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개츠비와 데이지 그리고 톰과의 갈등 때문에 만찬은 엉망이 되어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주인공과 조던 베이커, 그리고 톰이 같은 차를 탔는데, 톰이 개츠비의 차를 운전하고 돌아간다. 또 개츠비와 데이지가 같은 차를 타고 돌아가게 되는데 데이지가 그 차를 운전한다.
심리적으로 심란한 데이지는 다소 과격하게 운전을 하게 된다. 돌아가는 길에는 윌슨의 정비소를 지나게 된다. 윌슨의 아내와 톰은 바람을 피우고 있는 상황이었고, 윌슨 집은 곧 이사를 가기 때문에 윌슨의 아내와 톰이 헤어질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윌슨의 아내는 톰의 차를 보고 톰과 이야기하기 위해 차 앞으로 달려가게 되고, 데이지는 윌슨의 아내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치어 즉사시킨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하는 마음에 주인공을 제외하고 다른 누구에게도 데이지가 운전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운전했다고 말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데이지는 결국 톰의 품으로 돌아가고, 톰은 모든 죄를 개츠비에게 뒤집어 씌운다. 개츠비가 윌슨의 아내와 바람을 피웠으며 아내를 차로 치었다고 모함한 것이다.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한 윌슨은 개츠비를 총으로 암살하고 자신도 자살한다.
개츠비와 가장 친한 사람은 주인공이었으므로 주인공이 장례식을 치러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장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개츠비와 같이 사업을 했던 사람들도, 개츠비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신세를 졌던 사람들도 개츠비가 죽은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연이 끊겼던 아버지만 신문에서 자식이 죽었다는 사실 깨닫고 찾아왔지만 주인공이 개츠비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개츠비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관계가 없었던 상태였다.
주인공은 이런 사건들을 겪고 난 이후에 자신이 살고 있던 미국 동부에 염증을 느끼고 서부로 이사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명대사
내가 미쳐 있었던 건 막 결혼했을 때뿐이야. 하지만 곧 아차, 실수했구나 하고 깨달았지. 그 작자는 결혼식 때 예복을 빌려 입고도 나한테 입도 뻥긋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느 날 그 인간이 집에 없을 때 옷 임자가 옷을 찾으러 온 건야. '아, 그게 댁의 양복이었나요? 전 처음 듣는 얘기거든요. 내가 물었지. 난 양복을 그에게 내주고 난 뒤 드러누워 오후 내내 엉엉 울었어.
세상에는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여자는 남자의 능력을 보고 사랑하고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보고 사랑한다.
이 작품에서는 이것을 신랄하게 까발린다. 윌슨의 아내는 자신을 사랑해주면서 우직하게 일만 하는 남편을 혐오한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대신 아내가 있는 부유한 톰과 사랑에 빠진다.
데이지도 마찬가지다. 부유하고 근육질에 마초 성향의 톰에게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이런 진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개츠비였다.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이런 성향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군 장교였던 개츠비가 어린 데이지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부자인 것처럼 거짓말을 쳤다. 그렇지 않으면 데이지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유일하게 장교 중에서 데이지와 연인이 될 수 있었다. 개츠비는 군 복무를 마친 이후에 알거지 상태에서는 데이지와 사랑이 이뤄질 수 없음을 알았다. 결국 데이지를 완전히 갖기 위해서 엄청난 부를 쌓고 와서 다시 데이지를 찾아왔다. 그리고 데이지는 그런 개츠비에게 마음이 뺏겼다.
그 사람을 잡아넣지는 못해요, 형씨.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니까요.
약간 낭만주의자인 나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 하나 있었다. 감옥은 나쁜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멍청한 사람이 가게 된다. 개츠비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을 감옥에 잡아넣을 수 없다고 주인공에게 말한다. 오늘날의 현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외람된 말이지만 뉴스에 나오는 사이코 패스들은 사실 멍청한 부류라고 하는 어떤 전문가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똑똑한 사이코 패스들은 절대로 잡힐 수 없는 위치에 올라가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서 온갖 범죄를 자행한다고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작품을 읽다 보면 계속해서 의문이 남는다. 톰과 데이지는 서로 사랑하는 건가? 데이지는 톰을 정말 사랑할까?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개츠비가 가장 좋은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개츠비가 안 좋은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 가장 순수한 인물이다.
한 평생 단 한 명의 여자를 얻기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톰이 데이지를 사랑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데이지가 톰을 사랑하는지, 개츠비를 사랑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개츠비는 데이지를 사랑한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온전히 손에 넣고 있다고 생각하던 아내와 정부가 갑자기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톰에게 여자는 그저 한 가지 소유물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개츠비에게 떠나는 데이지를 필사적으로 붙잡는데 그게 사랑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물건을 남에게 절대 빼앗기기 싫어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물론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자신의 것을 뺏기기 싫은 두 가지 감정이 어느 정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을 돈으로 보는 데이지, 아내를 소유물로 보는 톰의 관계를 보면서 뭔가 씁쓸했다. 오늘날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비싼 차, 좋은 집, 미인을 가지고 있는 남자는 성공의 상징이다. 그리고 비싼 차, 좋은 집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 역시 성공의 상징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런 화려한 삶 뒤에서 펼쳐지는 온갖 지저분한 투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함만을 쫓다가 낭만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본다. 겉이 그럴듯하면 무엇하겠나. 속이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 있는데...
화려하고 좋은 집에서 살면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성공이 아니다.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그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