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02 ~ 09.04. 다섯 달의 휴학 생활을 마치며
지난해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이번 해를 시작했다. 내일 개강을 앞두고 있는 지금 서울에서 보낸 지난 3월 2일부터 만 5개월 동안의 휴학 생활을 기록해 보았다. 지난 1년을 정리하기엔 부족하지만 그 시간들이 나에게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많은 경험을 주었기에 짧게나마 매듭짓고 다음 학기를 시작하려 한다.
나보다 더 많은 것, 또는 다른 삶을 경험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가 그들의 어깨 위에 올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너무나도 닮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성장하고 있는지 느껴졌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이것저것 찔러보는 나였는데, 그들은 목표를 세우고 체계적으로 계획했다. 그래서 나도 마일스톤을 정하고 내 시간을 관리하기를 시도했다. 어쩌면 ‘멋짐’에 중독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성향이 바뀌기도 했다. 쉽게 말하자면, mbti가 INFJ에서 ENTJ로 바뀌었다. 내가 ‘서울’에서 ‘스타트업 씬’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새로운 것에 반응하고 빠르게 성장하려고 하다 보니 낯선 상황을 즐기고 경험과 논리에 가치를 두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같은 단어와 문장이어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화에 설명이 필요하다는 게 처음엔 불편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와 상대가 알고 있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다른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우리가 생각을 나누고 모았을 때, 나도 전혀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글로 남기기 부끄럽지만 창업에 성공해서 멋지게 자퇴하는 게 막연한 꿈이었다. 이번 학기에 복학하여 졸업을 하게 되었기에 이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는데, 엄연히 말하면 당장 창업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전에는 대학 생활에서 어떤 특별한 성과를 만들고 싶었다. 그중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게 창업이었고 졸업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생길 정도라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각자 멋진 삶을 살고 있는 선배들을 보면서 나도 고학년이 되면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조급함,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이것저것 나름 열심히 하면서 학교생활을 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도 4학년이 되어있었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되어있지 못한 채(라고 느끼며) 학부를 졸업해 버릴 것만 같아 명확한 이유가 없어 미루던 휴학을 결정했다.
학교에 있을 때는 1년 후의 모습을 그리는 게 어려웠다. 당장 다음 학기에 어떤 수업을 들을지 어떤 활동들을 할지 막연했다. 돌아오는 방학에 뭐 할지조차도 연구 참여, 인턴, 여행 너무나도 많은 선택지에 어느 하나 결정하기 어려웠다. 단적으로, 그해 겨울에 할 동아리 공연에 참여할지 여부를 1학기 종강할 때에도 결정할 수 없었다. 어쩌면 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을지도 모르겠다. 포항이 아닌 서울에서 학생이 아닌 한 명의 성인으로 마주친 사회에서 1년 혹은 몇 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선후배의 학생들이었지만 휴학하고 만난 사람들은 모두 동료였다.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많은 어른들을 만나면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실력을 쌓고 성장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보내더라도 늦은 것이 아니라는 걸 마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나도 ‘무언가가 되어있을 나’는 조금 미루고 숙성의 시간을 보내보고 싶어졌다. 그 시간을 거친 후의 나를 그려보았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잘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이 나의 speciality가 될 수 있게 성장해보려고 한다. 앞으로 보낼 성장의 시간들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에서 ‘확고히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 일단 그 일에 몰입해서 진짜 열심히 해보라’는 말을 읽었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연극과 프로그래밍이라고 답해왔다. 하나는 공대에서 돌연변이 같은 대답이고 하나는 사회에서 변태 같은 대답일지 모른다. 좋아한다고 말은 해왔지만 정말 직업으로 삼아도 될 정도인지를 확신할 순 없었다.
먼저, 어느 순간부터 연극이 미친 듯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하던 공부는 따로 있었기에 온전히 마음을 쏟진 못했다. 휴학하고 원 없이 연극에 미칠 수 있었다. 수요일마다 비영리단체의 연극수업에 나가고, 지난봄엔 매주 포항과 서울을 오가며 동아리 공연을 준비했다. 이번 학기의 동아리 공연도 준비하는 걸 보면 가벼운 마음은 아닌 것 같지만 사람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연기하는 순간이 즐거운, 딱 이만큼이었다.
또 하나의 대답이었던 프로그래밍은 감사하게도 좋아하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진 이것저것 만들어보기도 하고 공부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대학에 와서 몰입해 봤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은 없었다. 프론트엔드를 몇 개월 개발해보기도 하고, 딥러닝 모델을 실행해보기도 했지만 내가 이걸 강점이라고 말할 만큼의 실력은 아니었다. 게다가 팀을 짜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대부분 팀장을 맡아왔고 어느 순간 개발보단 조직 운영과 기획에 힘을 쏟고 있었기에 내가 정말 프로그래밍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휴학하고 머신러닝 엔지니어 인턴으로 일할 수 있었다. 입사 초기에는 업무에 완전히 빠져있어 기존 프로젝트를 같이하던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만큼의 몰입이 영원하진 않았지만 다른 일들과 달리 프로그래밍은 그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힘들기만 하지는 않다. 3개월간의 회사 생활은 내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구나 확신하게 해 줬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에는 작가가 사유한 여행의 이유들이 담겨있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 다섯 달도 나에게는 여행이었다. 익숙해서 편안하지만 남은 흔적들이 아프기도 한 학교를 떠나 낯선 곳을 탐험했다. 지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보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느끼고 즐겼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다시 돌아가기 싫기도 했던 학교이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인 휴학 생활로부터의 기억과 배움이 있기에 조금은 아쉽기도 한 마지막 학기를 더욱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