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있는 일, 책 <안녕하세요 한결입니다>
어느 날 공연을 보기 전 시간이 남아 대학로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쏙 마음에 드는 책이 없어서, 책장을 둘러보며 이 책 저 책을 들추고 있었다. 그러다 <안녕하세요 한결입니다>라는 책을 펼쳤는데 몇 페이지만 읽고서 다시 꽂아둘 수 없었다. 책에는 글쓴이가 필리핀 대학교에서 한 소녀를 만난 후, ‘그들은 무엇 때문에 가난할까?’, ‘그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세 가지 질문을 품고 떠난 여정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책을 내놓은 누군가 덕에 한 청년의 여정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암벽화를 사러 종로 산악에 가기 위해 동대문역에 내렸다. 그 근처에 살았던 적도 있고, 가까이에 있는 공연장을 한참 들락거리기도 했는데 역사를 빠져나와 시장 거리를 걸으며 본 풍경은 처음 보는 듯 낯설었다. 그 시간에 지나가진 않아서 정말 처음 봤을 수도 있고, 그동안 내가 살피려고 하지 않아서 지나쳤을 수도 있겠다.
평일 낮의 시장 가는 분주 했다. 사람들은 커다랗게 말려 무더기로 쌓여있는 천을 수레에 옮겨 싣고, 트럭 가득 실린 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 물건을 사는 사람, 나이 든 사람, 나이 들지 않은 사람들은 이곳이 익숙한 듯 각자의 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이곳이 처음인 듯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는 눈에 띄었고, 지도를 보며 빠르게 걷는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렇게 복잡한 삶의 현장을 지나서 목적지에 도착했고, 사이즈에 맞는 신발을 신어보다 20만 원짜리 고급화는 비싸다고 스스로와 합의를 보고는 12만 원짜리 신발을 구매했다.
다시 역으로 돌아가는 길, 왔던 길과 다르게 시장을 가로질러 가는 길을 택했다. 점심 식사가 한창일 때여서 그랬는지 연탄구이집이 줄지어 늘어진 거리 곳곳에선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혼자 또는 여럿이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책의 글쓴이가 품은 가난에 대한 질문과 여정 때문이었을까, 노상의 풍경이 낯설게 다가왔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낮은 탁자에 놓인 그릇으로 식사를 하는 것이, 노포 감성을 즐기는 한때가 아니라, 일상인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날이 풀렸음에도 좁은 시장 골목을 지나려면 뜨거운 불과 자욱한 연기를 견뎌야 했는데, 온종일을 보냈을 사람을 생각하니 일하지 않는 날, 사무실 밖에서야 느끼던 햇볕과 습기가 팔자 좋은 투정 같아 부끄러웠다.
풍요롭게 자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난을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나의 삶은 치열하지 않았구나 생각했다. 치열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가난을 체험하던 박완서 소설 <도둑맞은 가난>의 대학생처럼, 나도 무언가를 도둑질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 타고나니 손에 든 종이가방이 관광객의 면세점 쇼핑백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그러고는 환승역에 내렸는데, 한꺼번에 밀려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흐름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시장에서 본 사람들의 삶에서 나와 기계적인 인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음에 안심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를 붙잡아 글을 썼다.
다시 지하철을 탔고, 내가 사는 곳으로 돌아간다. 오늘의 깨달음과 반성이 한나절의 여행으로 끝나지 않아야 한다. 불붙은 마음이 성냥의 불씨가 되어 어디론가 옮겨 붙어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오답노트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