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난 제주 여행 - 1일 차
지난 6월, 1학기를 마치자마자 15일부터 21일까지 혼자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기억을 정리하기를 미루고 미루다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여운이 사라져 없어지기 전에 글을 써 본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혼자서 하는 여행을 꿈꿨다. 1학년 여름방학엔 연구실에서 틈틈이 내일로 일정을 짜고, 겨울방학엔 그동안 모은 돈으로 싱가포르 여행을 준비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모두 취소했다.
그러다 코로나와 함께 2학년을 보냈다. 쉬지 않고 달리다 3학년이 된 지난 학기에, 어디로든 떠나야겠다 싶었다. 벌려놓은 일 탓에 몇 번이고 제주행 비행기의 예매와 취소를 반복하다가 결국 학기를 마치고서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종강 다음 주 화요일 아침, 여행에서 입겠다고 산 옷들을 넣은 배낭 하나를 메고, 256GB의 아이폰 12 pro를 한 손에 든 채로 집을 나섰다.
평소에도 혼자서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공항에 혼자 간 건 처음이었다. 설렘만 가득할 줄 알았는데, 어색해서인지 아주 약간의 두려움이 생긴 게 신기했다. 그토록 바라던 여행이었는데도 말이다. 공항 내에 파는 어묵으로 끼니를 때우고 일행들 사이에서 조금은 외롭게 탑승시간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비행기가 이륙하자 두려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찬 여행이 시작되었다.
mbti의 극 J인 나는 쉬러 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빽빽한 일정을 계획했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미리 예약한 것들 빼곤 거의 모든 일정이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패키지여행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은 원래의 일정은 아래와 같았다.
15시 제주 공항 도착 -> 청귤 소바 먹기 -> 체크인을 하고 -> 도두동 무지개 해안도로와 이호테우 해변 구경 -> 동문 재래시장 즐기기 -> 방으로 돌아오기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숙소에 가는 중에도 계속 비가 왔다. 생각보다 피곤했는지 침대에 누웠다 눈을 떠보니 저녁이었다. 무지개 해안도로가 너무 궁금했지만 가는 길이 멀었고 날씨도 좋지 않아서 재래시장을 좀 더 제대로 즐기기로 했다. 지나가는 토끼는 다 잡으며 살아왔던 내가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다. 앞으로의 여행에 비하면 이 정도 포기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지난 여행들에서 하루를 사흘처럼 보내온 나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재래시장에서의 계획도 무너뜨려 보았다. '꼭 먹어야 할 것' 리스트를 보지 않고 발길이 닿는 대로 구경하며 저녁 겸 야식을 마련했다. 맛집이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 찾아가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다. 그러나 나는 보장된 맛 대신 내가 직접 알아보기를 선택했다. 그 결과로 맛있는 전복 버터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와의 여행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나의 첫 혼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