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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짝 Dec 27. 2021

[문화 자국] 딱 한 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

글을 쓸 여유도 없었던 가을학기를 보냈고 아직 완전한 종강을 맞진 못하였지만,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초안을 써둔 지 오래되어 연결이 허술한데, 이 글은 꼭 오늘 안에 쓰고 싶어서 부족한 글임에도 발행해 본다.


* 스포 주의 *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과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주의해 주세요.


작년 여름, 대학로에서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하, '전리농')을 봤다. 왜 보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결말을 모르고 봐야 한대서 열심히 스포일러를 피했다. 결말을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유튜브 - [공연 하이라이트]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비평을 위한 캡처

'전리농'에서 수현이는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다 15년 전 죽은 귀신들인 승우, 지훈, 다인을 보게 된다. 귀신들은 수현이에게 빙의해서 성불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한다. 그렇게 수현이는 종우가 코치로 있는 농구부에 들어간다.

귀신들의 작전에 떠난 속초 전지훈련에서 초코파이와 더블 비얀코를 가지고 매년 여름 바닷가를 찾는 다인의 아빠를 만나기도 한다. 친선경기를 이기고 돌아온 학교에서 '선생님은 농구 왜 하세요?'라는 수현의 물음에 종우는 '덩크슛'이라는 넘버로 답한다.

어릴 때 그런 친구 하나 알지
덩크슛에 미친놈
어디까지 뛸 수 있을까?
고작해야 여기서 저기까지
도전! 매일매일이 도전
그리곤 떨어져
발뒤꿈치만 시큰
어린 날의 허세

--후략--

이후 이어지는 넘버 '전설의 리틀 농구단'으로 종우와 귀신들의 사연이 드러난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었던 넷은 친선경기를 하러 속초 바다에 갔다. 물에 빠진 초등학생을 구하겠다고 승우와 지훈이가 바다에 뛰어들었고, 수영을 못하는 종우에게 호루라기를 건네고 다인이까지 들어간 바다에선 아무도 나오지 못했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살고 있는 종우에게 친구들은 '농구 한 판이면 땡!'이라며 종우와 마지막 농구 한 판을 마치고 성불한다.

유튜브 - [공연 하이라이트]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비평을 위한 캡처
처음엔 괜찮았어
너희가 곁에 없는 게
조금 이상해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혼자서 애써 다독였지

--중략--

끝도 없는 터널을 걷고 또 걸었어
살았는지도 모른 채
농구공을 놓지 못했어
저 밖에 너희가 있을까 봐
이것마저 잃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내 안에 죄책감이 사라질까 봐
사실은 말이야
나 혼자 이 어둠을 나갈 수 없을까 봐


다인의 아버지를 볼 때까진 느끼던 감정은 슬픔이었는데, 아무 예고도 없이 종우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땐 가슴이 아파왔다. 귀신들과 농구 한 판으로 15년 동안 아파했던 종우가 괜찮아지는 게 이상했다. 나는 아직 괜찮아질 준비가 안 됐는데 공연을 보고 나면 나도 종우처럼 괜찮아질 것 같아서, 공연장을 다시 찾지 못했다.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이하, '하바마')의 주인공 조강화(이규형 분)는 5년 전 사랑하는 아내 차유리(김태희 분)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농담도 하고 재혼도 하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것을 피하고 수술하다 유리의 마지막을 볼 수 없었다는 죄책감에 수술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힌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만하게도 그런 강화를 부러워했다. 나는 (드라마를 볼 당시에는) 1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아니 그 직후에도 하루하루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았는데, 나도 괜찮지 않고 싶었다. 나에게 주어진 죄책감은 겨우 '너무 많은 부탁을 한 것', '더 잘해주지 못한 것' 뿐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가 떠난 여행지를 피하는 것밖에 없었다.

유튜브 - '하이바이, 마마!' 16화 , 비평을 위한 캡처

네가 떠나고 3번의 해가 흘렀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참 싫었는데, 흐려지는 기억은 붙잡을 수 없었다. 네 생일인 여름을 지내고 네가 떠난 오늘을 맞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게 속상했다.

며칠 전에 '하바마'를 다시 봤는데, 이번엔 유리의 마음도 보였다. 죽은 후 귀신이었던 유리는 인간의 삶을 살 수 있는 마지막 49일을 얻는다. 유리는 강화에게 이제는 자신을 떠올리면서 슬퍼하지 말고 웃어달라고 말한다. '떠난 사람을 잘 보내주는 것도 그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미동댁의 말처럼, 나도 너를 잘 보내고 있는 걸까.


이제 나도 '전리농'의 종우처럼 너와 마지막 농구 한 판을 할 준비가 된 걸까. 사실은 오늘을 잊을뻔해서, 이제 너를 붙잡지 않게 된 걸까 걱정했는데. 글을 이어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은 걸 보니 다행인가 싶어.

나는 더 할 수 있으니까 마음에 계속 남아있어 줘. 언제든 네가 보고 싶어도 괜찮으니까 떠나지 말아 줘.


네가 좋아했다던 노래의 가사로 글을 마친다.


We'll carry on,
We'll carry on
And though you're dead and gone believe me
Your memory will carry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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