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프로토타입
학교에서 일 년의 기초 과목 이수가 끝나고, 자신이 원하는 수업들을 학점 맞춰서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타이포그래피나 일러스트에 관심이 있었지만, 일러스트 수업은 늘 경쟁이 높았다. 또한 나는 교수님의 애제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졸업 전까지도 일러스트 수업은 듣지 못하고, 책을 만들어 보는 다른 수업 하나로 만족했다. 타이포그래피는 내가 모국어가 한국어이다 보니, 아무래도 한글을 심미학적으로 다루는 것에 있어 한계를 느꼈다. 프린팅 디자인은 인쇄해서 눈으로 보는 것과, 컴퓨터 모니터로 달라지는 세세한 부분이 많아서, 나와 잘 맞지 않았다.
그 쯤, 학교에서 난민들과 같이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을 통해, 새로운 공간 디자인을 생각하는 수업이 있었다. 나는 수업 전 까지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수업을 신청한 나의 동기는 다른데 있었다. 그 당시 독일에서는 많이 오는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여론을 통해, 무작정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기보다는, 내가 직접 그런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만나서, 난민이라는 주제에 대한 나의 주관을 만들고 싶었다. 그 수업 후에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에 빠져들게 되었고, 사용자경험(UX) 디자인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만 집중해서 배울 수 있는 디 스쿨 (D-school)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 대상의 일주일 무료 프로그램이 있어서 들었다가 마음에 들어서, 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되었고, 일 년 동안 기초와 심화 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이 시간들은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하여, 즐겁게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 이상을 넘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배웠던 시간이 되었다. 나에게는, 어쩌면 어렸을 때 배웠어야 했지만, 대학 수능 입시에 가려져서 배우지 못했던 부분들을 튀는 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같이 프로그램을 들었던 애들과 나는 항상, 그 프로그램에서 이수할 때의 시간이, 호그와트에 해리포터가 있는 듯한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디자인 싱킹을 비즈니스 실무에 적용하는 것은 마법보다는 현실을 생각해야 하는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 싱킹 부분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모든 사람은 다 자기만의 장점이 있다 (Everyone has own super power)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은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문제점을 함께 탐구해서 해결책을 찾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성이 중요하고, 그런 문화 안에서, 내가 독일 대학에서 느꼈던 소수자로써의 소외감은 덜 해졌다. 그 프로그램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 배척하기보다는 궁금해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그런 문화가 참 좋았다.
또한, 팀을 만들 때,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만의 장점이 있고, 그 장점들이 모여 좋은 팀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장단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팀에서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서로 도와준다.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배우려고 하는 그 문화가 좋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렸을 때 뭐든 남들 하는 공부를 다 잘해야 했던, 그 압박에서 조금은 벗어나, 나의 강점을 더 살린, 성장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2. Why? 왜라고 탐구하고 질문하기
Design thinking에서는 왜라는 것을 탐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통해서, 더 깊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람들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늘 한국에서 말대답하고, 왜라고 잘 물어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나 부모님한테 혼나다가, 마음껏 왜라고 물어보고, 좋은 질문들을 생각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3. 빨리 실패해서, 빨리 배우기 (fail fast, learn fast)
디자인 싱킹에서는, 주요 핵심 문제점을 찾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생각하며, 해결책이 올바른가를 가늠할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여기서, 해결책이나 프로토타입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점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빨리, 실패해서, 놓친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하는 것이 비용과 시간을 줄임에 있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0년 내내 한국에서 나를 옮아매던, 완벽주의와 정답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여러 시도를 조금 더 마음 편하게 그리고 가볍게 하게 해 주었다. 더 나아가 세상에 완벽한 디자인이나 프로덕트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세상의 맞춰, 디자인, 서비스, 프로덕트는 변화하는 것이며, 늘 꾸준한 리서치와 발견, 그리고 개선의 꾸준함은, 에자일로 이어져지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것은 재미있어야 하고, 고통스럽지 않아야 한다.
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디자인 싱킹을 모든 이에게 추천하지는 않는다. 디자인 싱킹 코치를 한 적도 있었는데, 가르치다 보면, 성향에 따라서, 이 분야의 공부와 일이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만났었다. 내가 나 일수 있게 해주는, 나와 잘 맞는 분야를 찾아서, 계속 파고들다 보면, 재미난 경험들이 쌓여, 나중에 좋은 기회들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