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읽기부터 영어와는 다른
Das Leben ist zu kurz, um Deutsch zu lernen.
독일어를 배우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내가 독일어를 배울 때 배운 참 좋아하는 문장이다. 지금 찾아보니 오스카 와일드라는 아일랜드 시인이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 독일인에게도 이 말을 해주면 공감하면서 웃을 정도로 독일어는 문법의 규칙이 너무 많다.
독일어는 목적어와 동사에 따라서 많은 규칙들이 달라진다, 그에 따라 다른 전치사와 명사를 쓴다 (*Accusative, Dative, Genitive, Nominative.) 나는 독일어를 한국에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말한 설명이 정확히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명확한 독일어를 구사하는 것을 일치감치 포기했다. 나는 독일어든 영어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독일어 문법을 잘 지켜서 말한다면, 나는 한 마디도 못할 것이다. 나는 언어는 상대방과 나의 의사소통이 목적이고, 그 목적을 이루면 일단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내가 원어민의 입장에서, 외국인 한국어 구사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80% 정도만 한국어를 잘하는 친구엿는데, 문법 실수가 보이긴 했지만, 같이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좀 더 과거로 돌아가서, 독일에 와서 대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주 5일 독일어 학원을 다녔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A1부터 시작해서 C1까지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레벨은 A1, A2, B1 이런식으로 C2까지 있다. C2는 원어민에 근접한 수준이다). 처음에 A1 반은 갔는데, 많이 당황했다. 나는 독일어로 알파벳도 어떻게 읽을지 모르는데, 다들 알파벳은 다 알고, 간단한 문장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차근차근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원 숙제는 겨우 하는 수준이었지만, 나는 입으로 떠드는 것을 참 좋아했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처음에는 영어로만 말하다가 나중에는 영어 독일어를 섞어 말하기 시작했고, 후에는 독일어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나의 독일어 실력은 문법이 제일 약했다.
나는 독일어를 독일어로 배웠고, 모르는 독일어는 영어로 대입하며 배웠다. 그래서 독일어와 영어는 외국어라는 한 카테고리에 묶여, 뒤죽박죽 머릿속에 섞여있다. 술을 마셨을 때, 무의식적으로 영어와 독일어를 섞어 쓰거나 둘 중 어떤 언어를 쓰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일화가 있다. 한 번은 폴란드에 놀러 갔는데, 실수로 술을 주문할 때마다 계속 첫마디로 독일어를 썼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이 독립기념일이었다. 독일로부터 독립한 폴란드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마 한국의 삼일절에 어느 외국인이 일본어를 쓰면서 술을 주문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아무런 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에 감사한다.
대학교 입학 때 처음 본 독일어 시험에서 나는 DSH B2를 간신히 맞았다 (DSH는 독일대학에서 자체적으로 평가하는 대학입학을 위한 어학시험이다). 쓰기와 문법 부분이 제일 낮은 점수를 받았던 걸로 기억난다. 한 학기 뒤에, 학교에서 원하는 C1 레벨을 받지 못하면 나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학기 초반에 급하게 구했던 집은 해가 없는 겨울에 너무 어두워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아마 나중에 발견하게 된 그 당시 건강상의 문제가 겹쳐서 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신청한 독일어 시험을 자느라 놓쳐버렸다. 자다가 중요한 시험을 놓치다니, 지금 다시 그때를 떠올려도 아찔할 정도로, 나에게는 제일 스트레스가 큰 시기였다. 학교 적응하랴, 독일어 공부하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해 내야 되는데,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있었던 것 같다. 입시라는 관문을 겨우 통과했지만, 독일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제일 두려웠다. 이십 대 중반, 한국에서 나의 또래는 슬슬 취업준비를 할 때였다. 나는 은근히 주변 소식을 들으면 더 마음이 조급해지곤 했다. 내 나이를 스스로 따지지 않기로 하고 베를린에 왔지만, 내가 선택한 도전에서 내가 원하는 성과를 내고 싶었다.
다른 독일어 시험(TestDaF)에서 결과는 내가 기대한 바가 나오지 않았다. 독일어 쓰기가 문제였는데, 학원에서 여러 학생들의 쓰기를 봐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기한 내에 칠 수 있는 마지막 독일어 시험을 앞두고, 나는 삼 개월 단기간 과외를 받았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독일어 원어민 선생님과의 과외는 효과가 있었다. 다행히 DSH C1를 받았고,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었다. 그 후에도 과외를 꾸준히 하고 싶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과 학교 과제들 때문에 더 과외를 받지는 못했다.
독일어 시험을 통과했어도, 소위 귀가 뚫리는데 시간이 한 이 년쯤 더 걸렸다. 귀가 뚫리는 데는, 매주 일요일마다 독일어로 독일 경찰 범죄 드라마를 독일어 자막과 같이 본 게 도움이 되었다. 독일은 지방마다 사투리가 있는데, 이 드라마를 통해 다양한 억양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억양의 독일어는 알아듣기에는 넘사벽이다.) 또한 독일어 외에는 다른 의사소통이 되자 않던 학교의 분위기, 새로운 독일어 표현을 알려주고, 나의 독일어를 고쳐주는 걸 좋아하던 파트너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나의 독일어 문법 실력에, 나의 파트너는 이제 내 독일어를 고쳐주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나의 독일어를 고쳐달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므로, 나는 그가 포기해서 아주 기뻤다. 관계의 동등함을 더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게으른 자의 욕심이라는 것을 알지만, 시험의 압박에서 벗어난 지금은 외국어를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배우고 싶다. 계속 쓰는 표현만 쓰게 되어서, 이제는 책이라도 필사해야 되려나 생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