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일 년짜리 디자인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제 곧 대학교 삼 학년이 되는데, 같이 놀던 다른 친구들은 이제 슬슬 전공에 전념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일 학년 때는 놀았고, 이 학년 때는 두세 과목만 더 들으면 부전공 학위를 받을 만큼 회화과 수업들을 수강했었다. 다시 수능을 보고 입시 미술을 준비해서 대학교 일 학년으로 다시 입학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법학과에 충실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교 3학년이라는 다가오는 시간의 압박보다는, 마음에 와닿지 않는 공부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원하는 것이 있음에도 그것을 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길을 갔던 것에 대한 뼈저린 후회가 더 컸다. 중학교 때 미술로 전공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겨우 삼사 년 후였을 뿐인데, 대학에 가고 나서 전공을 바꾸려다 망하니 더 막막했다. 나에게는 속도보다는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중요했다.
나는 잠시 쉬고 싶었다 (법학과 수업을 듣기 싫었다). 그리하여, 부모님께 내가 전과를 준비했고 실패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그동안 술을 안 먹고 무언가를 성실하게 한 나의 변화에 대해 감명을 받으셨지만 그게 전과 인 줄은 모르셨다. 여하튼, 그 당시 부모님은 늘 행동을 먼저 하고 통보를 하는 내가 골칫거리셨다.
지금 기억으로는 어학연수라는 계획이 백 프로 나한테서 나왔는지, 아니면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다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나중에 취업을 하려면 어학점수가 중요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휴학을 할 바에는 미래를 위해 어학 점수라도 만들자는 생각이 부모님과 나 사이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캐나다, 또는 미국의 어학연수를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나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은 유학원과 늘 연계가 되어있는 거처럼 느꼈다. 한 유학원에서, 뉴질랜드에 프린팅 디자인을 배우는 일 년짜리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영어 수업도 들으면서 프린팅 디자인을 배우면, 그 뒤로 뉴질랜드에서 일 년 동안 잡서치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잡서치의 비자가 일 년이었는지, 일 년 반이었는지는 이제 가물가물 하다). 그리하여 나는 갑자기 뉴질랜드로 어학연수 겸 프린팅 디자인을 배우러 떠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뉴질랜드에서 들은 그 일 년의 프로그램은 정말 그 당시의 취업 이민에 맞추어진 과정이었다. 후에 내가 학사와 석사를 할 때의 수업의 깊이와 질을 생각해 봤을 때,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3/4년의 대학 학사 과정에 비해면 그 수업의 깊이는 그렇게 깊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어학 와 미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고민했더라면, 가지 않고, 어학연수에 포커스에 맞춘 곳을 갔을 수도 있다.
전과에 실패한 건 일월이었나 이월이나, 여하튼 연 초였다. 어학연수를 알아보다가 뉴질랜드의 잡 서치 프로그램을 결정해서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비행기에 탄 것은 3월 중순이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은 진행이 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다시는 그렇게 빠른 결정으로 움직이지 못할 거 같다. 그때의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무식해서 용감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겨우 조금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방인으로써의 삶에 고달픔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내가 뉴질랜드에 있었을 때는 프린팅 디자인을 배우고 나면, 거기서 나는 취업을 하고 싶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세명의 중국인 학생들을 제외하고 다 한국인이었고, 다들 이민이 목적인 분들이시다 보니 영향을 받은 면도 있었다. 수업은 포토샵, 일러스트레이션, 인디자인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포스터, 책 표지, 로고, 잡지도 만들었었다.
일 년 프로그램 수료 후에, 나는 뉴질랜드에서 일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 나는 다른 나라에서 대학 진학준비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