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스 Mar 11. 2024

어학연수를 알아보다가

갑자기 일 년짜리 디자인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제 곧 대학교 삼 학년이 되는데, 같이 놀던 다른 친구들은 이제 슬슬 전공에 전념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일 학년 때는 놀았고, 이 학년 때는 두세 과목만 더 들으면 부전공 학위를 받을 만큼 회화과 수업들을 수강했었다. 다시 수능을 보고 입시 미술을 준비해서 대학교 일 학년으로 다시 입학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법학과에 충실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교 3학년이라는 다가오는 시간의 압박보다는, 마음에 와닿지 않는 공부를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원하는 것이 있음에도 그것을 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길을 갔던 것에 대한 뼈저린 후회가 더 컸다. 중학교 때 미술로 전공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뒤 겨우 삼사 년 후였을 뿐인데, 대학에 가고 나서 전공을 바꾸려다 망하니 더 막막했다. 나에게는 속도보다는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중요했다.


나는 잠시 쉬고 싶었다 (법학과 수업을 듣기 싫었다). 그리하여, 부모님께 내가 전과를 준비했고 실패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그동안 술을 안 먹고 무언가를 성실하게 한 나의 변화에 대해 감명을 받으셨지만 그게 전과 인 줄은 모르셨다. 여하튼, 그 당시 부모님은 늘 행동을 먼저 하고 통보를 하는 내가 골칫거리셨다. 


지금 기억으로는 어학연수라는 계획이 백 프로 나한테서 나왔는지, 아니면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다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나중에 취업을 하려면 어학점수가 중요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휴학을 할 바에는 미래를 위해 어학 점수라도 만들자는 생각이 부모님과 나 사이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캐나다, 또는 미국의 어학연수를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나는 어학연수 프로그램은 유학원과 늘 연계가 되어있는 거처럼 느꼈다. 한 유학원에서, 뉴질랜드에 프린팅 디자인을 배우는 일 년짜리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영어 수업도 들으면서 프린팅 디자인을 배우면, 그 뒤로 뉴질랜드에서 일 년 동안 잡서치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잡서치의 비자가 일 년이었는지, 일 년 반이었는지는 이제 가물가물 하다). 그리하여 나는 갑자기 뉴질랜드로 어학연수 겸 프린팅 디자인을 배우러 떠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뉴질랜드에서 들은 그 일 년의 프로그램은 정말 그 당시의 취업 이민에 맞추어진 과정이었다. 후에 내가 학사와 석사를 할 때의 수업의 깊이와 질을 생각해 봤을 때,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3/4년의 대학 학사 과정에 비해면 그 수업의 깊이는 그렇게 깊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어학 와 미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고민했더라면, 가지 않고, 어학연수에 포커스에 맞춘 곳을 갔을 수도 있다. 



전과에 실패한 건 일월이었나 이월이나, 여하튼 연 초였다. 어학연수를 알아보다가 뉴질랜드의 잡 서치 프로그램을 결정해서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비행기에 탄 것은 3월 중순이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일은 진행이 되었다. 지금의 나라면 다시는 그렇게 빠른 결정으로 움직이지 못할 거 같다. 그때의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어서 무식해서 용감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겨우 조금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방인으로써의 삶에 고달픔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내가 뉴질랜드에 있었을 때는 프린팅 디자인을 배우고 나면, 거기서 나는 취업을 하고 싶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세명의 중국인 학생들을 제외하고 다 한국인이었고, 다들 이민이 목적인 분들이시다 보니 영향을 받은 면도 있었다. 수업은 포토샵, 일러스트레이션, 인디자인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포스터, 책 표지, 로고, 잡지도 만들었었다. 


일 년 프로그램 수료 후에, 나는 뉴질랜드에서 일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 나는 다른 나라에서 대학 진학준비를 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늦깎이 미대 입시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