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수학 과외로 모은 돈으로 나는 대학교 근처에서 늦은 입시미술을 시작했다. 저녁에 주먹밥을 먹으면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다니는 입시미술 학원에 가서 전과를 준비했다. 시험은 석고상을 수채화로 그리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는 여러 석고상들을 그렸다. 기억으로는 비너스, 아그리파, 줄리앙, 호머를 연습했다. 답답하면 학원 옥상에서 노을을 많이 보던 시절이었다.
곱실거리는 턱수염 때문에 호머가 제일 그리기 어려웠는데, 하필이면 시험에서 호머가 나왔다. 세 시간이었나, 나는 최선을 다해서 수채화를 그렸고, 면접도 봤다. 교수님이 왜 이제야 미대를 가고 싶으냐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나는 부모님의 반대로 공부를 한 나의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했고, 교수님은 장녀이면 그럴 수 있지 하셨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실패였다. 아무래도 입시 미술을 몇 년씩 준비한 게 아니라서 내가 수채화로 그린 호머가 교수님들이 원하는 수준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내가 수강했던 대학교의 회화과 수업에서는 유화를 주로 사용했었다. 처음 색을 잘못 칠해도 겹겹이 색을 쌓아 완전 다른 다양한 효과를 줄 수 있는 유화와는 달리, 수채화는 처음 색을 잘못 내면, 만회가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수채화는 나에게 한 번에 잘해야 하는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것 같아 궁합이 잘 안 맞았다.
그때의 나는 내가 참 운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수채화로 석고 상을 그리는 전과 시험은 그 해가 마지막 년이고, 그 후로는 포트폴리오만 전과 시험을 본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역시 되는 게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술을 진탕 마신 기억이 있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서 죽을 각오를 하고 노력해야지, 또는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노력을 하면 될 줄 알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노력의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았다. 고등학교 때의 대학입시도, 느즈막에 시도해본 미대 입시도.
다시 전과 시험을 보려면 일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나는 도피성 어학연수를 생각했다. 일 년 어학연수를 하고, 다시 그동안 회화과에서 그린 그림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회화과 전과 시험을 보고 싶었다. 그게 안되면, 그때 가서 회화과는 부전공을 할 생각이었다. 당시 나는 회화과를 나와서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걸 생각했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당시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실패를 했었어도, 내가 스스로 원하는 걸 얻고 싶어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처음 해봤던 것에 의미를 더 두라고 말해주고 싶다. 실패의 다음이 더 중요하다고,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후에 생각지도 못한 다채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좌절하지만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해, 나는 전과 시험을 일월인가 이월에 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삼월 중순에 나는 어학연수가 아닌 다른 계획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고,
그 후 어쩌다 보니 이 대학은 졸업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