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스 Mar 03. 2024

법학과를 나올 결심

방탕하고 슬기로운(?) 대학생활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큰 사고 없이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편의 아이였다. 고등학생 때의 나는, 사회적 위치나 경제적으로도 학생이 공부 외에는 크게 다르게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고 생각했어서, 대학을 가면 내가 마음대로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나는 대학교 입학장을 받자마자, 전단지를 돌려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부모님 집에서 독립을 하진 못했어도, 용돈을 받지 않는 작은 경제적인 자유를 얻어서, 부모님이 기대하는 것과는 무관한 대학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일 학년 때, 나는 법전을 외워야 하는 학과의 공부에 크게 매력을 못 느꼈다. 다시 고등학교 때로 돌아가서 모든 걸 그냥 달달 외워야 한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더 에너지를 쏟았다. 여러 사람을 만나서 노는 게 좋아,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술을 마시고 귀가하기도 했고, 연극부에 들어가서 방학 때마다 연극 준비 한다고 집에는 맨날 늦게 들어가며, 연극을 하기도 했다. 


연극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대본에 나온 대로, 서로가 약속한 연기가 아닌 실수가 생겼을 때도 무대 위에서 얼마든지 관객은 눈치를 못 채게 만회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 나는 첫 장면에서 종이컵에 든 뜨거운 커피를 상대 배우로부터 받는 연기를 했었다(실제로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종이컵이다). 한 번은 무대 위에서 그 종이컵을 받지 못하고 떨어뜨렸지만, 상대방과 나의 애드리브로 잘 넘어갔다. 무대 위의 경험은 나에게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내가 어렸을 때부터 관심 있던 미술을 시도해 봐도 괜찮을 거라는 용기를 주었다. 객관식 정답만이 있을 거 같은 삶에서 다양한 주관식 답변들이 가능 한 삶의 용기를 얻었다.


한편으로는 이제는 정확하게 말이 기억은 안 나지만, 언젠가 한 연극부의 나이 지긋한 선배가 말했다. 나처럼 본인이 원하는 것이 아닌 학과를 가서 방황을 할까 봐, 본인의 자식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놔두신다고 하셨다. 지금도 대강 그러한 말을 어떤 선배가 말했는지 기억하는 걸 보면, 그 말씀이 그때의 내가 방황을 끝내고 내가 원하는 걸 시도해 볼 결심에 중요한 의미가 되었던 말이 되었나 보다. 


그리하여 나는 이 학년 때 회화과 수업들을 수강하게 되었고, 성적이 타과생이 전공 수업을 들은 것 치고는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워낙 일 학년 때 법학과 수업을 들을 때 공부를 안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는 법학과에서 나올 결심을 하여, 전과를 도전해 보게 되었다.



이 시절에 나는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났고, 부모님은 고등학교 때처럼 나를 통제하실 수 없으셔서, 나는 부모님과 많이 다투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교 일이 학년 때가 나의 진정한 사춘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내가 부모님 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한다고 불만이셨다. 불효자식인 나는 그때의 시간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좌우충돌했지만, 내가 나의 모든 일과 경험을 나 스스로 결정하고 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안 좋았을 때, 나 자신 외에는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나를 더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화과의 법대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