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와 사회운동 1화
콘텐츠가 사회운동이 될 수 있을까. 대답은 '그렇다'가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 한다'이다.
이 시리즈는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이라는 아이디어를 통해 콘텐츠 마케팅 관점의 도입이 사회운동에 가져올 중대한 변화를 다룰 것이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이란 사회운동의 전 과정을 콘텐츠 전략에 맞춰 수행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사회운동의 목표를 콘텐츠 기획, 제작, 유통. 분석에 두고 콘텐츠 마케팅의 관점에 기반하여 사회운동 자체를 콘텐츠화한다는 것이다.
먼저 콘텐츠 마케팅에서 시작해보자. 선도적인 콘텐츠 마케팅 컨설팅 기관인 CMI(Content Marketing Institute)의 창립자이자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처음 공식화했던 조 풀리지(Joe Pulizzi)는 콘텐츠 마케팅을 이렇게 정의했다.
Content Marketing is a strategic marketing approach focused on creating and distributing valuable, relevant, and consistent content to attract and retain a clearly defined audience -and, ultimately, to drive profitable customer action.
ㅡ <What is Content Marketing>, CMI 중에서
콘텐츠 마케팅이란 정확히 규정된 오디언스를 모으고 유지하기 위해 가치 있고, 관련 있고, 꾸준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배포하는데 초점을 맞춘 전략적 마케팅 접근법이다. ㅡ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 소비자 행동을 유도한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콘텐츠를 활용해서 마케팅하라는 소리구나 싶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다.
콘텐츠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뽑으라면 콘텐츠, 오디언스, 채널일 것이다. 콘텐츠content란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정보와 경험, 혹은 이를 담은 일종의 저작물이다. 쉽게 말하면 어떤 유용성 있는 내용을 담은 글이나 영상을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이 콘텐츠라는 건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일정한 형태를 가진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매체, 즉 미디어를 통한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된다는 점이다. 콘텐츠 자체의 이런 특징 때문에 콘텐츠 마케팅은 어떤 저작물을 특정한 미디어를 통해 특정한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오디언스와 채널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오디언스audience는 청중, 관객, 시청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매체를 통해 직접 소통하고 있는 사용자end-user를 말한다. 쉽게 독자라고 하면 될 걸 왜 오디언스라고 하냐면 오디언스가 특정한 소비자 혹은 대중 모델이기 때문이다. 오디언스는 여러 채널을 통해 콘텐츠 혹은 상품을 체험하고 구매하며, 콘텐츠가 제작되고 유통되는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 또, 이에 대한 적극적인 선호를 구성하기도 한다. 옛날엔 '팬', 요샌 흔히 '구독자'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콘텐츠 마케팅에선 오디언스 타겟팅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오디언스 타겟팅audience targeting이란 특정 오디언스를 타겟으로 분류, 선정하여 수행되는 일련의 마케팅 행위이다. 특히, 오디언스에 대한 인구 통계, 관심사, 개별 행동 등 데이터에 기반하여 사용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들에게 적합한 독자 여정을 배치하고, 적절한 행동을 유도하여 구독이나 구매 등에 대한 전환가능성을 높이는 걸 의미한다.
오디언스는, 그러니까 모든 오디언스는 '특정한' 오디언스다. 어떤 콘텐츠에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할 그 오디언스 말이다. 오디언스는 콘텐츠가 소비될 기반을 형성하는 사람이고, 콘텐츠를 소비할 잠재성이 있는 사람이며, 콘텐츠에 대해 함께 소통할 사람이다. 그러니 오디언스는 단순히 독자나 관객의 번역어라기보단 일종의 기반적·잠재적·상호적 대중mass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오디언스와 콘텐츠는 채널을 통해 교류하게 된다. 채널channel이란 미디어 채널이라고도 하는데, 오디언스에 접근하기 위해 사용되는 홍보 매개medium, or mode를 말한다. 흔히 신문, 라디오, TV, 인터넷 등을 의미하지만, 요즘은 인터넷에 한정된 채널로 자주 쓰여 홈페이지, SNS, 플랫폼 서비스 등을 말한다고 보면 된다.
채널을 더 정확히 정의하기 위해선 매체의 종류로 바라보는 걸 넘어 일종의 통로로서 볼 필요가 있다. 채널은 특정한 콘텐츠들을 특정한 오디언스들에게 연결해준다. 예를 들면 게임 채널은 게임 콘텐츠를, 먹방 채널은 먹방 콘텐츠를 전달한다. 먹방을 보기 위해 게임 채널에 들어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즉, 채널은 일련의 콘텐츠 세트에 대해서 그 자체로 플랫폼이다. 어떤 콘텐츠를 만드는지, 어떤 오디언스를 모으는지에 따라 어떻게 채널이 구성될지 결정된다.
콘텐츠 마케팅은 오디언스에게 가치 있는 콘텐츠를, 채널을 구성할 만큼 꾸준한 콘텐츠를, 이 두 문제 모두에 연관성 높은 콘텐츠를 요청한다. 콘텐츠 마케팅에서 콘텐츠는 단순한 저작물도, 단순한 홍보물도 아니다. 얻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채널을 통해 고객과 연결되는 통로를 확장하고, 고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이 플랫폼에 참여시킨다. 이를 통해 꾸준히 잠재고객을 발굴하고, 고객이 목적에 부합하는 일정 단계ㅡ구매나 후원 같은ㅡ에 오기까지 그 여정을 유도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이란 콘텐츠 마케팅의 관점을 활용하여 콘텐츠를 통해 대중을 사회운동과 연결시키고, 그 연결 통로를 확장시키며, 그 과정에 대중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이 대중을 여기선 굳이 오디언스라고 부를 건데, 이는 특정한 콘텐츠와 연결될 특정한 대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말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들린다면 그 이유에 대해 짚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사실 콘텐츠는 이미 사회운동의 전 과정에서 활용되고 있다. 흔히 논평, 선언, 발언문, 보도자료, 유인물 같은 텍스트들이나 몇 가지 유효한 기능을 발휘해온 영상, 웹자보 같은 그래픽들은 물론, SNS에 올리는 자잘한 글이나 현장 영상 모두 일종의 콘텐츠이다. 무엇보다 사회운동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고, 여기에 정치적인 힘을 부여하는 메시지 자체가 콘텐츠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이라는 말은 점차 사회운동 그 자체로 여겨져야 할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이 모든 것들을 콘텐츠로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설사 인식하더라도 콘텐츠를 전략적 수준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나름의 심혈을 기울이는 걸 보면 비록 콘텐츠라고 명확히 인식되지 않아도 느껴지는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 영향력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한편 후자의 경우가 더 큰 문제인데, 콘텐츠가 '더 중요한' 사회운동을 보충하기 위한 홍보자료들로만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이라는 말을 굳이 끄집어내어, 이 아이디어가 분명한 균열, 그리고 변화를 만들어야 할 곳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콘텐츠 기반의 사회운동 전략은 콘텐츠를 단순히 사회운동의 보조적 수단으로 여기기보단, 사회운동의 전 과정을 떠받치는 전략적 방법론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하면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콘텐츠를 만드는 게 아니라, 활동이 곧 콘텐츠인 사회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의 오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이를 디지털 시대에 요청된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전략이 피상적이거나 부분적인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책에서 말한 것처럼 메시지가 곧 미디어를 구성한다. 이 변화는 반드시 더 깊고 근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