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eVIEW] 프롤로그
주기적으로 유심히 유튜브 알고리즘을 살펴보는 편이다. 최근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혹은 구글이 내게 무엇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는지 확인하려고.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알고리즘 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건 '인터뷰 콘텐츠'다.
유명 연예인부터 낯선 일반인까지, 각 썸네일 속에 담긴 이들을 스캐닝하며 생각한다. '나...인터뷰 보는 거에 진심이구나. 근데 왜? 식상한 내 얘기보단 신선한 남 얘기가 재밌어서?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솔직히 재미도 정보도 기대 이하였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닌데... 그럼에도 계속 찾아보게 되는 이유는 뭐지? 이 모든 생각의 타래를 관통하는 참인 명제는 하나,
나는 타인이 궁금하다. 본능적으로.
말 그대로다. 타인의 심연에서 벌어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보는 건 뭐랄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좇게 될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유희처럼 느껴진다. 순수하게 보면, 타인이란 미지의 섬에 가닿고 싶은 열망이라 할 수 있을 테고, 끈적하게 보면, 타인을 향한 모종의 변태적인 관음증쯤 된다고 할 수 있으려나.
이유야 어떻든, 분명한 건 인터뷰 콘텐츠는 합법적으로(?) 남의 깊은 속내를 염탐할 수 있는 최적의 매개체라는 점이다. 인터뷰를 보면 직접 대면하는 수고 없이도, 군더더기를 거둬낸 편집된 정보로 한 사람을 효과적으로 접할 수 있다. 비록 있는 그대로 한 대상을 오롯이 마주하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그런 덕분에 오히려 더 또렷이 그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집요한 관찰 결과로써 인터뷰 콘텐츠는 온라인 플랫폼의 확장과 함께 성장한 대표적인 콘텐츠군 중 하나다. 특히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기반 플랫폼을 통해, 인터뷰 참여자들의 목소리, 표정, 몸짓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게 되며, 인터뷰 콘텐츠의 파급력은 대폭 확대됐다. 덕분에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멀티미디어 채널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다양한 포맷의 인터뷰 콘텐츠가 쏟아지게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수요 없는 공급은 없는 만큼, 인터뷰 콘텐츠의 증가는 어떤 사회적 니즈를 수반하는 걸까.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겠으나, 여러 종류의 인터뷰를 즐겨보는 이들 위주로 범위를 좁혀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모두가 나처럼 타인을 향한 본능적 호기심에 이끌려 인터뷰를 찾아본다고 일반화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각자만의 피상적인 이유들을 거둬내고 보면, 그 근본에는 인간을 더 알고자 하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본능이 자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타인이 궁금하다'는 건, 곧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난 어느 순간부터 인터뷰 콘텐츠 속 '인터뷰어(interviewer)'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들은 콘텐츠를 완성하고 유통하는 일련의 과정 안에서 그 누구보다 '연결'에 집중하는 존재기 때문이다. 인터뷰어는 섭외된 인터뷰이(interviewee)와 인터뷰 현장에서의 연결은 물론, 완성된 콘텐츠를 소비할 향유자들과, 콘텐츠 제작에 관여한 여러 이해관계자들과의 연결까지도 복합적으로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따라서 인터뷰어는 발화량이 가장 많은 인터뷰이만큼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할지언정, 콘텐츠의 최종 결과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아무리 인터뷰이가 언변이 좋은 사람이더라도, 인터뷰어가 충분히 인터뷰이에 대해 깊이 스터디한 뒤 준비한 질문, 우연적인 상황에 대한 대처 등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좋은 인터뷰 콘텐츠가 완성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게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의 유명세나 존재감과는 별개로, 항상 인터뷰의 방향키를 좌우하는 선장이 되곤 한다.
인터뷰어 역할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 채, 인터뷰 콘텐츠를 보기 시작하자, 인터뷰가 벌어지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한층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바꿔 말해, 인터뷰이의 이야기 위주로 듣는 것이라 여겼던 인터뷰가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의식하자, 말과 말 사이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인터뷰어의 참신한 질문이 인터뷰이로부터 특별한 답변을 이끌어내고, 그 답변에 대한 인터뷰어의 생생한 리액션과 코멘트가 인터뷰이의 이야기에 단단한 마침표를 찍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어쩌면 인터뷰는 또 하나의 각본 없는 드라마일지 모르겠다고.
당연하게도, 이런 상호작용의 묘가 빛을 발하며 좋은 콘텐츠를 완성하게 되는 결과가 늘 일어나는 건 아니다. 관대하게 보면, 모든 인터뷰에서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이 맞물리는 순간이 적어도 한 두 번쯤은 벌어진다고 가정할 때, 어떠한 콘텐츠도 그 나름의 가치는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퀄리티 판독의 잣대를 보다 엄격하게 놓고 본다면, 좋은 인터뷰란 한 두 번의 그럴듯한 티키타카만으로 성립될 순 없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심연에 자리한 관념과 독창적인 시각을 끄집어내겠다는 인터뷰어의 선명한 목표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거창하고 비장하지만, 사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은 대단히 캐주얼하고 가벼울 수도 있다. 하지만 형식이 어떻든 간에, 그 바탕에 상대를 깊이 탐구하겠단 의지와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애정이 있다면, 이로부터 자연스레 스며 나오는 이야기의 힘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닿기 마련이다.
'인터리뷰(INTEReVIEW)'는 자연스럽고도 깊은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담아낸 인터뷰는 물론, 안타깝게 실패한 인터뷰들 역시 리뷰해보고자 한다. 보통의 인터뷰 리뷰들이 인터뷰이가 던진 뾰족한 인사이트의 내용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 이 시리즈의 중심에는 인터뷰어의 질문이 자리할 예정이다. 이로써 어떤 대목에서 무슨 질문이 나왔으며, 그에 따라 어떤 반응과 태도가 나타났는지 등을 고려해, 인터뷰 전반의 맥락을 입체적으로 분석해볼 것이다.
본 시리즈는 인터뷰(INTERVIEW) 사이에 숨은 'e'안에 담긴 여러 의미를 담아내보려 한다. 인터뷰어란 렌즈를 통해, 무심코 지나친 인터뷰 특유의 에지(edge)를 짚고, 미처 설명하기 어려웠던 인터뷰의 정서(emotion)와 정수(essence)를 풀어 보는 데 주목한다. 더불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케미 속에서 섬광처럼 등장하는 발화자들의 안광(eyelight)을 포착함으로써, 각 인터뷰가 어떤 순간 빛나고,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지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추신
왜 하필이면 난 인터뷰에 주목하게 됐을까. 돌이켜보니, '대 AI 시대'가 열린 오늘날, 인터뷰보다 더 인간적인 방향성을 띤 콘텐츠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나누는 대화를 넘어, 서로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을 안고 소통을 하는 일련의 인터뷰 과정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 아닐는지. 인터뷰를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고 지탱할 수 있는 경험적 토대이자,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하나의 태도로 바라본다면, 뜻밖에 새로운 풍경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