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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Apr 24. 2020

대치동 아파트와 미국, 유럽

강남은 왜 강남이고 선진국은 왜 선진국인가

나는 한국에 산 30년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정확히 말하면 비 강남권 서울에서 살았다. 이사를 몇 번 다녔지만 사실상 느낌은 거의 비슷했다 - 서울 안에서 집값은 비교적 낮은 편이고, 학군이 딱히 좋지 않으며 유명인 누군가가 산다더라 하는 소식이 거의 들리지 않는 지역이었다고 하면 될 것 같다. 부모님이 집안 사정에 맞춰 여러 가지를 고려한 후 고른 이 동네에 나는 딱히 불만이 없었다. 살던 아파트는 적당히 비교적 신축이어서 시설도 좋고, 조경도 괜찮았으며 동네에 마트와 식당 다양하게 있고, 지하철과 가까워서 교통도 나쁘지 않았다. 이 외에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강남권에 사는 친구들의 집값이 같은 평수라면 우리 집의 2배, 3배 또는 그 이상의 가격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딱히 왜 그런지 알 수도 없었고 와 닿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친구의 대치동 집에 우연히 방문하게 됐다. 집값 비싸고 학구열 높기로 소문난 이곳에 개인적으로 처음 가 보게 되는 것이어서 대체 어떻게 생긴 곳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당시 대치동의 대표적인 아파트였던 친구의 집에 가 보고는 좀 놀랐다. 외관이 정말 너무너무 낡은, 80년대 TV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아파트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재건축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런 남루한 아파트가 우리 동네의 최신식 아파트보다 두 세배 비싸다니… 대학생이던 나는 그 이유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취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동네를 우리 동네보다 좋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경험에서 알 수 있었다. 예컨대 누군가 ‘나 대치동 (또는 비슷한 수준의 강남 동네) 살아’라고 했을 때와 ‘나 xxx 살아'라고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이야기했을 때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내가 아무리 우리 동네가 살기 좋다고 이야기해도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그 인식의 두터움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교통의 요지인 데다, 편의 시설도 잘 되어 있으며 산책로도 잘 되어 있는 등의 장점은 그 두터운 인식과, 그로 인한 집값의 차이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좀 더 나이를 먹고 나서 사회생활 경험도 쌓이고, 인생 선배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의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동네와 강남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어떤 요소로 인해 형성되고 유지되는지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요소는 명백히 교육, 학군이다. 사회와 경제활동의 중심인 30-50대가 주로 부동산을 거래하게 되는데 이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바로 자식들의 교육이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학군에 속한 학교를 다닌다고 내 자식의 성적이 올라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강남 8 학군 학교/학원에서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고 그쪽의 정보력과 학구열이 좋다고 하면 누구나 자기 자식을 그곳으로 보내고 싶어 한다 (여담이지만, 우리 모친께서도 내가 공부를 못 하면 강남 8 학군으로 바로 이사 가려했는데, 공부를 딱히 못 하지 않아 지금 동네에 남는 바람에 강남 집값 대상승의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다고 한탄하셨다. 공부를 못하지 않아 불효자가 된 느낌이다).


두 번째 요소는 강남권이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경제/사회/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 다니면서 알게 된 것 중의 하나가 꼭 공부 잘하는 친구들만 강남 출신이 많은 것이 아니라 공부와 딱히 관련이 없는 연예인들까지도 강남 출신이 많다는 것이었다. 교육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분야의 실력자들이 더 높은 비율로 강남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높은 집값을 감수하면서 자식 성적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 올 수 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재력도 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주류에 편입되고자 하며 신분 상승 또는 유지의 욕구/의지가 더 강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강남으로 모이다 보니 그런 추세와 인식이 더욱 강화되고, 거기에 인맥과 정보가 지역 안에서 교류되기 시작하면서 비교우위가 구조적으로 고착되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한국은 서울 중심으로, 서울은 강남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요약하면 강남과 우리 동네의 인식/집값 차이는 많은 사람들이 강남이 가진 이러한 무형의 가치 (학군 및 교육의 중심, 그리고 제도와 역사와 인식이 함께 영향을 주며 형성된 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이라는 가치)를 내가 대학생 시절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 (신축 건물, 생활의 편의성, 대중교통 연결의 편리함) 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사실 조금 생각해 보면 명백하다.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낡은 건물이야 재건축할 때까지 집 내부를 잘 꾸미면서 버티면 되고, 대중교통은 자가용 타고 다니면 되고, 생활의 편의성은 돈을 조금 쓰면 모두 해결된다. 하지만 학군과 교육, 경제/사회/문화 중심지라는 가치는 강남 또는 그 정도 동네에 집이 있고 거기 살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결국은 좀 더 희소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따라서 사람들의 인식과 집값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구조와 인식은 한번 형성되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미국에 몇 년 살다 보니, 그리고 지구촌의 축소판 같은 직장에 다니다 보니 비슷한 논리가 국제사회에서도 적용된다고 느낀다. 오늘날의 세계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느 국가가 강대국인지, 어느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선진 시민 취급을 받는지를 물어보면 세계 어디든 대답은 대동소이하다. 미국과 유럽이다. 그런데 해외를 많이 돌아다녀 본 사람이면 느끼겠지만 미국과 유럽에는 이게 과연 선진국인가 라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모습이 많다. 공공 인프라가 특히 그러한데, 곳곳에 쥐가 뛰놀고 트랙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낡은 뉴욕 지하철이나 지린내가 진동하는 파리의 지하철 같은 모습을 보면 정이 뚝 떨어질뿐더러 여기가 과연 선진국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외관뿐 아니라 대중교통의 신뢰성과 편리함 자체도 많이 떨어진다.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느려 터지고 비효율적인 공공 서비스, 그보다는 조금 낫지만 여전히 비효율적이고 딱히 친절하지 않은 민간 서비스를 경험하고 나면 속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현금이 거의 필요 없는 한국이나 모바일 결제의 선두주자 격인 중국 같은 곳에 살다가 아직도 식당이나 심지어 마트에서 현금을 꼬깃꼬깃 꺼내서 계산하는 미국 유럽 사람들을 보면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적응력도 뒤쳐진 것 같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을 보면 의료체계나 시민의식도 영 글쎄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아무리 이제는 우리가 선진국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도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우월성에 대한 인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확실히 교육, 그리고 지식 교류 시스템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은 대부분 미국, 유럽 대학들이다. 그곳의 학생들이 자질이 더 훌륭하고 더욱 명석해서가 아니다. 세계의 학계와 지식 교류 시스템이 대부분 영어, 유럽어로 되어 있고 미국과 유럽의 대학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석학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 대학의 교수들이다. 세상의 트렌드를 이끄는 각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학계와 연구기관 출신이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다. 한국에서 주요 대학 교수가 되거나 학계를 선도하는 지식인들 중에 미국 또는 유럽에서 유학 또는 연수를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분야와 전공에 따라 있기는 있어도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다. 학부는 국내 대학을 나와도 박사는 외국 유수의 대학에서 받아야 웬만한 곳에서 교수 자리를 받을 수 있는 것이 학계의 당연한 현실이다. 세상의 중요한 지식들이 생성되는 곳이 미국과 유럽이고 세상의 유능한 인재들이 인생 어느 시점에는 꼭 미국과 유럽으로 향해야 한다면 미국과 유럽이 선진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당연하다.


두 번째 요소는 19세기, 20세기 역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이 세계 경제/사회/문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고 그러한 구조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정치적 의제와 토론, 결정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인들이 대부분 영어, 가끔 불어를 하면서 주도한다. 그렇게 의견이 형성되고 나면 일본이나 중국 같은 나라들이 영어로 한 마디씩 하며 거드는 정도이다. 경제/사회/문화도 미국과 유럽 중심이다. 대표적인 국제금융기구인 IMF와 World Bank는 각각 유럽인과 미국인이 수장을 맡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고 그 규칙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성별의 장벽, 그리고 인종의 장벽이 이보다 먼저 깨졌다). 세계를 주름잡는 투자은행, PE펀드, 헤지펀드는 물론 기술기업들도 대부분 미국 그리고 일부 유럽 국가 소재이다. 세계의 고급 레스토랑은 대부분 프렌치 또는 이탈리안이며 유수의 셰프들은 대부분 프렌치 트레이닝을 받는다. 패션의 중심은 뉴욕, 파리, 밀라노이다. 최고의 차는 독일차 그리고 이탈리아의 수제 스포츠카들이다. 세계 최고의 영화 공장은 할리우드이고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드라마 공장은 미국 스튜디오들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는 영국, 스페인, 독일 리그이고 최고의 야구, 농구 리그는 미국 리그이다. 이렇다 보니 전 세계 각 분야의 실력자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모이게 되고, 그런 추세와 인식이 더욱 강화된다. 이 과정에서 인맥과 정보가 미국과 유럽 무대에서 교류되면서 비교우위가 구조적으로 고착되게 되고 결국 세계는 여전히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미국/유럽과 한국 및 기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인식 차이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유럽이 가진 이러한 무형의 가치 (연구/지식의 중심, 그리고 제도와 역사와 인식이 함께 영향을 주며 형성된 경제/사회/문화의 중심이라는 가치)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우월한 공공 인프라, 효율적인 공공/민간 서비스, 최신 기술에 대한 수용력 등) 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사회적 구조와 인식은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한국식 치킨과 비빔밥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을 받고 K-pop과 K-drama가 인기를 끌어도 한국이 선전하고 있는 영역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 하위문화(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문화와는 다른 독자적 정체성의 문화라는 점에서)에 가깝고 한국어라는 마이너리티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확산성을 가진다. 그래도 문화 쪽은 사실 훌륭한 편이다. 연구/지식/경제/사회 영역을 보면 한국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종속적이고 자생력도 낮다. 예전에 대학에서는 외국 원서를 아주 많이 참조한 국내 교수님들의 책을 가지고 수업을 했고, 이제는 그냥 외국 교수 원서의 번역본을 가지고 수업한다. 경제와 사회에서 등장하는 신 개념/이론은 모두 미국이나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것을 번역해서 쓰고 있다. 누가 먼저, 얼마나 빨리 가져다 쓰느냐의 문제만 있을 뿐 우리가 신개념/이론을 창조하여 세계에 전파하는 경우는 잘 없다.


따라서, 한국이 코로나 사태에 대처를 잘했다고 해서 - 민주적이고 투명한 정치체제, 효율적이고 발전된 의료체계, 높은 시민의식을 세계에 드러내 보였다고 해서 - 한국이 세계무대에서 당장 선진국 취급을 받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변화는 항상 조금씩 일어나고 있고 한국의 위상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이 스스로가 아닌 세계인들에게 진정한 선진국으로 인식되려면 그 이전에 학술, 연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한국인/한국 기관들이 종종 나오고, 한국인들이 국제 경제, 비즈니스, 상위 문화에서 주도적으로 의제를 이끌고 토론을 주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원래 꼴찌에서 10등 언저리까지 올라가는 것보다 10등 언저리에서 최상위권으로 가는 것이 더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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