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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Sep 27. 2023

기후대재앙

(1) 포스트-(       )

사람들은 그 사건을 ‘기후 대재앙’이라고 불렀다. 적절한 이름이었다. 그것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남은 것은 많지 않았다. 인류는 금세 1/100 토막이 났으며, 산 사람 중에서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지 않은 자는 없었다. 가족과 친구와 애인을 잃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와 슬픔 속을 유유히 헤엄쳐 다녔다.


또 하나의 커지는 감정을 말하자면 분노였다. 그들이 아는 사람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가족과 친구를 잃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자신들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유명인답게 그 소문은 남아있는 말과 기계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리더들은 모두가 모든 것을 잃은 가운데에서도 의자나 돌리며 기후 대재앙을 다시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해서 표심을 얻을지나 궁리하고 있었다.


럭셔리 비밀 지하굴에서 쾌적하게 살아남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한강다리를 건너간 후 끊어버리는 행태와 유사해도 너무 유사했다. 사람들은 이를 질겅질겅, 곱씹으며 지구가 바람과 땅과 물을 동원했듯 공포와 슬픔을 총동원해 분노를 키워갔다. 너만 살면, 좋더냐?


“정부는 제대로 된 기후 대책을 내놓아라!”

“정부와 기억은 그린워싱을 멈춰라!”

놀랍게도 인류가 100분의 1토막이 나기 바로 전날 저녁까지 고래고래 외친 목소리들이 있었다. 하지만 더 놀랄 ‘노’자인 사실은 외침을 들은 이는 엄마의 양수처럼 포근한 방 안에 안겨 있었기에 환경을 가지고 왜 그렇게 난리부르스인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모두가 자신처럼 사는 줄 알았다.


‘또 환경 환경 하는구만. 텀블러랑 에코백 만들어 줄게. 이번에 뭐, 기업들하고 해 갖고 환경 마라톤 캠페인. 그런 것도 열지. 완전 굿 아이디어!’

강산도 변하는 백 년의 세월 동안 피부로 느끼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는 리더들은 줏대 있게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질겅, 질겅. 질겅, 질겅,

질겅, 질겅, 질겅, 질겅!



인간의 공감 능력은 한정적이다. 등 따숩고 배부른 상태에서 아프거나 집과 음식이 없는 상태를 이해할 수는 없다. 공감한다는 착각일 뿐이다. 기후위기 문제도 누구는 아직 와닿지 않았고, 누구는 손끝에만 닿았고, 누구는 온 몸이 흠빡 젖어 두려움에 가슴이 뛴다.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인데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만드는 사람 중 '급한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최일선의, 피해 당사자의 위태로움 속 목소리를 정치화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넘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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