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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밤 Nov 03. 2024

먹는 밥, 먹고 싶은 밥

밥을 놓쳐버린 지 오래다. 그런 나를 따끔하게 혼내는 책이 나에게로 왔다.

우리가 먹는 밥은 땅, 물, 불(태양), 바람(공기)이 이루어낸 생명의 결정체입니다. 그 생명의 은덕으로 우리가 살아갑니다. 그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모른다면 얼마나 염치없는 짓이 되겠습니까. 마땅히 ‘공양’이어야 합니다. 밥상 위의 간장 한 종지조차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세상의 은혜를 입는 일입니다. 마땅히 ‘공양’입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다른 목숨으로 내 목숨을 이어가는 일입니다. 그 목숨에 대한 공경의 마음 없이 먹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공양’이어야 합니다.
-<공양>, 수경 스님


밥은 언젠가부터 하루 루틴에서 가장 먼저 생략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하루 시간을 계획할 때 밥 먹을 시간을 따로 만드는 걸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노는 것이 죄악시되어 노는 시간을 인정하는 것이 죄책감을 동반하는 것처럼, 밥 먹는 것 또한 비슷한 느낌이 되어가고 있다. 실제 내가 그렇게 밥을 대하고 싶은가와는 별개다.


어느 새부터 ‘간단 요리’, ‘밀프랩’ 등 밥을 위해 충분히 시간과 공을 덜 들이고 ‘해결’하는 방법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젠 그것조차 번거롭게 느껴져 배달을 시키고 그걸 두고두고 먹는 게 문화가 되어간다. 혼자 사는 가구들이 많아지면서부터, 또 보호자가 임금노동을 하며 육아까지 해야 하는 가정이 많아지면서 밥은 대놓고 처치곤란한, 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 문젯거리‘가 되어 버린 것 같다.


하루 8시간, 출퇴근 시간까지 하면 그 이상인 임금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 정신을 다잡고 몸을 일으켜 밥을 하기보다 대충 때우고 더 오래 쉬는 선택지가 좋아 보인다. 게다가 나는 학교에서 채식 선택권이 없어 급식을 먹지 않고, 점심을 건너뛰어 허기진 상태로 퇴근한다. 그러면 허기를 잠재우기 위해 뭔가를 사 먹고 들어가거나 집에 있는 이것저것에 손이 먼저 간다. 밥이 부실하다고 남들이 뭐라 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도 안다. 하지만 시간도 에너지도 고갈된 상태에서 도대체 어떻게 정신을 다잡고 기운을 내서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어떻게 전날 도시락을 미리 싸두라는 건지 모르겠다. 임금노동과 살림노동이 양자택일처럼 느껴진다. 말이 무력하게 다른 쪽 귀로 줄줄 빠져나간다.


하지만 주말에 일정이 없을 땐 숨을 고르며 한 번씩 요리를 시작한다. 천천히.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어떻게 조합해 볼까? 열매와 잎을 만지작거리고 그 색과 형태에 놀라워하고 굳이 들고 햇빛 아래로 가져가 빛깔에 경탄한다. 그렇게 밥을 짓고서는 왠지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 먹고 싶어 진다. 아파트라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지만 그나마 가장 낮은 방바닥에 앉는다. 창밖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곰곰이 집중해서 먹는다. 그럼 그 먹는 행위가 명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숨을 느리게 쉴 수 있게 된다. 아, 밥은 원래 ‘살림’이었지! 그 동안 ‘문제‘였던 밥은 다시 그 본질인 ‘살림’으로 돌아온다.


도예 수업을 한창 들었을 때 갈색 밭 모양의 식판을 만들고 그걸 땅그릇이라고 불렀다. 그 식판에 올라가는 것들이 어디에서 살아왔고, 누구의 힘의 작용이 있었는지를 기억하고 생각하며 먹고자 하는 욕구였다. 기리고 관계를 재인식하면서 먹고자 하는 욕구였는데…….

땅그릇.

지금 나의 밥은 어떤가.


아침으로 꽈배기, 점심으로는 라면에 (그나마) 청경채를 넣어 먹고서 <공양>을 읽었다. 그런데 나는 나아질 약속을 할 수 있는가? 임금노동과 활동에 지친 몸을 데리고 정성을 다해 세상과 연결되는 밥을 짓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가?


못 하겠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먹고 싶은 밥은 그런 거다. 천천히 밥을 지어먹는 삶을 살고 싶다. 나를 먹이는 세상과 충분히 연결되고 감사하고 애도하는 밥을 먹고 싶다. 딱 그거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삶은 정말로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이 뒤집혀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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