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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람 Aug 02. 2018

구급차 속 세상

출동번호 8. 조기진통 베트남 산모의 엄마 무게  

산부인과에서 출동전화를 받았다.


“산모가 32주+2일 인데 조기 진통을 느껴서 대학병원에 contact(연락)된 상태예요. 어서와주세요”


산부인과 분만실에 도착하여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인수인계를 받았다.

"베트남 산모이고 한국말을 잘 못하세요. 32주 + 2일인데 조기진통으로 조산(조기분만) 할수 있어서 빨리 대학병원으로 이송해주세요."

간호사 선생님이 주신 진료의뢰서를 받고 가족 분만실처럼 생긴 병실에 들어갔다.

20대의 앳된 동남아 여성이 산모로 누워있고 3살은 됐을법한 남자아이가 침대에 함께 누워 엄마에게 잔뜩 투정을 내며 울고 있었다.

첫째인 아이가 낫선 환경에 불안해 하는 것 같았다.

병실 소파에 앉아있는 남편이 우리를 보자 목인사만 하고 울고 있는 아이와 산모는 쳐다보지 않고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산모를 이동침대로 구급차로 모셔 출동을 시작하였고 나는 산모의 혈압과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모니터를 연결하려 하였지만 계속해서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산모의 그 큰 배에 기대누워 우는 아이 때문에 난처하였다.


남편인 보호자는 계속해서 아이에게 짜증과 화가 묻어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 말라고. 엄마 아프다고!”

아내가 아프고 현재 이 상황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이해가 됐으나 3살의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무서운 상황과 화난 목소리의 아빠는 도움이 되기는 커녕 더 불안감이 조성되는 듯 했다.

계속해서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고 때쓰는 아이와 ‘울지마’, ‘조용히 해’ 라는 등의 말을 하며 짜증이 잔뜩 나있는 남편.


산모는 뱃속에 있는 아이와 자신의 건강상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장된 상황에서 남편의 눈치를 보며 어눌한 한국어로 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내가 '괜찮아요' 라고 하자 서글픈 표정으로 나에게 미소짓는 산모를 보자 안타까웠다.

산모가 아이의 등과 엉덩이를 토닥토닥여 주며 작은 목소리로 베트남 언어로 아이에게 말했다.

아마도 '울지마라 괜찮다 아가' 라는 뜻이리라 생각했다.  


나는 구급차안 환자인 산모가 우선순위여야 하나 산모의 긴장된 표정을 보자 이렇게 병원으로 가는 동안 환자가 케어 받지 못하고 가족 모두 힘들것 같아 첫째 아이에게 말했다.

“아가 울지 말구 선생님한테 와볼래?”

쌍커풀이 진하고 큰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나를 쳐다본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엄마한테 자꾸 기대면 엄마가 더 아야해요”

그러자 아이는 엄마와 나를 몇 번 쳐다보더니 울음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남편인 보호자는 그제서야 좀 안심이 됐는지 아이에게 말했다.

“조용히 가면 엄마도 동생도 괜찮다고”

모든 환경이 어색하고 힘들텐데 엄마가 아픈 이상황이 아이에게 무서우리라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병원에 도착하여 환자를 침대에 옮기려 하자 구급차안에서 겨우 진정되었던 아이는 다시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높은 침대의 엄마에게 계속 안기려 했다.

보호자는 접수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였는지 우리가 함께 데려오리라 생각하였는지 병원 로비에 아이를 두고 혼자 병원에 들어갔다.

주중 밤이였던 터라 회사를 다녀온후 힘들었을지도 모를 보호자지만 좀 더 아내와 아이에게 신경써줬으면 하는 생각에 아빠로도 남편으로도 무심한 보호자의 모습에 화가 났다.

조기 진통으로 뱃속 둘째가 위험할지 모르는 상황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산모와 낯선 환경에 불안하여 우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빨리 이송을 완료해야 함에 내가 아이를 번쩍 안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만삭의 배를 이끌고 제법 큰 아이를 혼자 육아했을 산모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힘든 임신과 출산과정 동안 부모가 없는 외국 타지에서 혼자 힘들었을텐데 남편이 도와주지 않는 육아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몸도 약하지만 엄마로써 아내로써 그녀의 어깨가 무겁고 역할이 더 컸을, 내가 알지 못하는 그녀의 짙은 마음의 그림자가 안타까웠다.

     

산부인과 분만실로 들어가는 도중 나에게 안겨있는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에게 가기 위해 발버둥 쳤고 힘에 부쳐 먼저 혼자 앞서나간 보호자에게 말했다.

“아이 좀 들어주시겠어요?”

아빠의 역할을 하지도, 남편의 역할도 하지 않는 무습한 보호자는 나의 화가 섞인 목소리에 쳐다보고는 그제서야 아이를 안았다.    


다분히 결혼이주여성, 다문화 가정에서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부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산부인과 출동을 다니다보면 많은 부부를 만난다. 


아내의 통증에 진심으로 케어를 하며 더 안타까워 우는 남편이 있는가 하면, 조기 유산되어 힘들어하는 산모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아내에게 자신의 언짢은 기분을 드러내는 남편도 있었다.    

나는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그 부부의 평상시 모습과 부모로써의 행해온 역할들을 알수 없다. 하지만 결혼식에서 주례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아플때나 병들었을때 서로 의지하고 건강하게 늙어가는 과정에 함께 하기 위함이 부부가 아니던가. 

특히나 엄마와 아빠가 되는 과정은 단순히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것이 아닌 몸과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도 함께 버티고 가족으로 성장해 가는 힘들지만 대단한 과정이리라.  


부디 소중한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아이와 산모가 축복받고 건강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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