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삼둥이가 클락에서 입국 후 우리집에 내려와서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막내 지원이가 그려준 외할머니와 애벌레 그림이다.
만들기와 그리기를 매우 좋아하는 제 언니 지우를 닮아서 둘째 현우와 막내 지원이도 만들기와 그리기를 좋아한다. 상자, 플라스틱 통, 화장지 심지 등이 삼둥이의 만들기 소재가 되어서 무엇이든 3개씩 똑같이 준비를 해주어야 하고 무엇이든 빈 통이 나오기가 바쁘게 채가는 바람에 따로 분리수거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만들어서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남겨두고 가는 것들을 내가 선별해서 처리를 해야 한다. 우리집으로 내려오면서부터는 솔가지, 솔방울, 나뭇잎 등이 만들기 소재로 더해져서 작품의 내용이 풍부해졌다.
지인의 주문으로 공방에서 아로니아 분말 병입 작업 후 선물상자 1개에 2개씩 병을 넣어주는 작업을 우리 아이들과 거실에서 함께 했다. 몇 시간에 걸쳐서 아이들은 상자를 조립하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조립한 상자에 병을 넣어서 마지막 대형상자에 채워주는 작업까지 모두 마친 뒤 거실 정리를 하는데 첫째 지우가 남은 상자들을 가리키며
"할머니, 우리 이 상자 하나씩 주면 안돼요?"하고 묻는다.
"지우야, 당연하지, 우리 강아지들이 필요하다는데 안될 일이 없지."
"지우가 가져가서 동생들도 하나씩 나누어 줘."라고 하자 신이 났다.
그 작은 것 하나에도 얼마나 기뻐하는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감이 배가 된다.
남편이 서둘러 택배 상자들을 우체국으로 발송하러 나간 사이 딸과 나는 거실 정리를 하고 있는데 삼둥이들은 상자에 그림을 그리느라 꼼짝않고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얼마쯤 지났을까? 삼둥이들이 모두 제 나름의 멋진 선물상자들을 완성해서 보여준다. 막내 지원이는
"할머니, 이것은 할머니 그림이고 이것은 애벌레가 기어가는 그림이예요."하는데 5살 어린 아이의 생각에서 어떻게 이런 그림들이 나왔을까 신기하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돋보기를 쓰고 컴퓨터 작업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많이 보아서인지 안경을 쓴 그림을 그렸다. 하긴 올 초 백내장 수술을 하기 전까지 40년 가까이 안경을 썼으니 안경을 쓴 할머니로 각인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멋진 할머니 그림 뿐만 아니라 안경을 쓴 애벌레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이다.
"지원아, 이 애벌레는 어떻게 알았어?"하고 묻자
"외할아버지가 애벌레를 보여주셨는데 땅위를 기어가고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애벌레를 보여주셨다고 해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텐데 잊지 않고 애벌레의 형태가 나타나도록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기특해서
"지원아, 우리 지원이가 외할머니와 애벌레를 너무나 잘 그려 주었네."라며 꼭 껴안아주었다. 그리고
"고마워. 할머니 선물이야?" 하고 묻자 활짝 웃으며
"네, 할머니 선물이예요."하고 서둘러 나가는가 싶더니 다시 뒤돌아와서
"할머니, 버리면 안돼요?"하고 당부하고 나간다.
시간이 지나서야 사진을 찍으려니 빛바랜 그림이 되어서 아쉽다. 받자마자 선명한 색상으로 찍어둘 것을..
첫째 지우부터 시작해서 현우까지 틈만 나면 그려준 그림과 할머니 사랑한다며 써 준 편지들이 파일과 스케치북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제는 막내 지원이 것까지 더해져서 두터워지게 생겼다. 부러울 것 아무것도 없는 세상 가장 행복한 할머니로 만들어 준 우리 삼둥이들이 고맙다.
자가격리를 마치고 올라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이삿짐 정리를 하면서 보니까 지우가 클락 들어가기 전에 외할머니한테 쓴 편지와 돈 11,000원이 들어있는 봉투가 여기서 나오네. 외할머니, 3년 뒤에 봐요. 하고 써 있는 것을 보니까 못 드리고 갔나봐."라는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첫사랑 우리 지우의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고백 편지를 그동안 수없이 받았는데 그것도 모자라 할머니 용돈까지 넣어서 편지를 준비했었다니 말만 들어도 뿌듯하고 넘치는 고마움이다. 우리 삼둥이들의 외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