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평선 Oct 11. 2021

목욕탕 도시락

엄마가 그리운 날

  어르신의 등은 유난히 새하얗습니다. 뜨끈한 물줄기가 등으로 쏟아지면 어르신은 어느새 어린아이가 됩니다. 알알이 부서지는 수돗물을 눈으로 즐기고, 손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맞이합니다.  욕실 가득 차오르는 얀 수증기와 방울방울 거품 놀이 또한 어르신의 차가운 마음을 녹나 봅니다. 목욕하기 싫다시던 어르신은 매일 목욕 시간을 기다립니다.

 

 어르신의 등을 닦아드리고 머리를 감겨드릴 때 유 친정 엄마가 그립습니다. 정엄마는 목욕을 무척 좋아하지요. 요양원에 들어가신 후 얼굴 보기도 힘든 요즘. 언제 다시 엄마의 등을 닦아드릴 수 있을까요?

  

 어릴 때 엄마와 목욕탕 가는 날은 마냥 신이 났습니다.. 목욕 가는 날.  엄마는 바구니 가득 무언가를 챙기십니다.  고슬고슬한 밥에 참기름 붓고, 깨소금으로 간을 하여 한 주먹 뚝 떼어 동글동글하게 뭉쳐 놓습니다. 목욕탕 도시락지요. 욕탕에 가면서 도시락이라니요. 그러나 이게 없으면 큰일 나지요.

 탕에 들어가면 엄마는 으레 껏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물로 바가지와 목욕 의자를 소독합니다. 심스레 들고 온 목욕탕 바구니를 엽니다. 커다란 바구니 속에 이태리타월이 종류별로 있습니다. 손가락 다섯 개가 다 들어가고도 남는 커다란 타월은 작은 수건이 빵빵하게 들어앉아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아담하게 작은 타월은 거칠거칠한 것이 어떤 때라도 홀딱 벗겨 놓을 태세입니다. 수건처럼 길어서 혼자서도 등을 닦기 좋은 기다란 타월도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타월을 보 무섭습니다. 엄마가 얼마나 박박 문질러 닦주시는지 목욕하고 나면 온몸이 칠면조가 됩니다. 복수라도 하듯 엄마 등을 박박 문릅니다. 하지만 엄마는 더 세게 문지르라고 합니다. 팔이 아파 쉬기를 여러 번...

엄마는 나오지도 않는 때를 불리고 또 불리기 위해 뜨끈한 탕 속에서 목까지 담그고 숨을 참습니다.

  엄마의 목욕시간은 족히 5시간 넘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탕을 나오면서 아쉬워합니다. 발뒤꿈치가 덜 닦였다는 둥, 등이 개운치 않다는 둥 엄마는 지쳐버린 나를 밖으로 내몰고 다시 들어가십니다.

그러니 목욕 중간에 목요탕 도시락에 들어있는 오이며 주먹밥으로 배를 채워야 합니다. 엄마가 오이를 챙길 때 얼굴에 붙이는 용도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버티려면 뱃속에 양보해야 합니다. 든든하게 채워야 5시간 목욕을 버틸 수 있으니까요.

탈의실 앞에서 머리를 말리며 엄마가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갈증이 나지만 꾹 참습니다. 곧 자장면 집으로 가게 되거든요. 마가 덜어주시는 자장면을 염치없이 받아먹으려면 뱃속을 비워야 하거든요. 끈한 물에 글쪼글 부풀었던 손가락이 포슬포슬하게 말라 갈 즈음 엄마가 나오십니다. 흡족한 표정을 보니 자장면 곱빼기를 시켜주실 듯합니다.


 엄마와 찜질방에 다녀온 지 어느새 2년이 었습니다. 뜨끈한 탕 속에 몸을 불려 자식들 키우느라 지친 엄마 등을 닦아드리고 싶은데... 주먹밥 대신 맥반석 계란도 까먹고 오이 대신 귤과 식혜도 먹고 싶은데...

코로나19는 언제쯤 잠잠해질까요? 유리문 사이로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만남을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요?

5년 후에 엄마는 백세.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엄마가 그리운 날은 오래도록 어르신의 등에서 추억을 떠올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달만의 외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