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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평선 Nov 05. 2022

매일 죽 쑤는 여자

암투병 남편과 구십 노모와 살기

 “당신 또 죽 쒔구나."

나는 분명 밥을 한다고 했는데 솥뚜껑을 열어보면 아직도 밥물이 거품을 풀썩이며 나 보란 듯 푸시시 꺼져 내려간다. 주걱으로 밥을 저으며 최대한 세게 입김을 후후 불어 댄다. 그러면 조금이라도 질척거림이 덜하다.

"내가 원래 죽밥을 좋아해. 소화도 잘되고 먹기 좋잖아. 흐흐."

나는 밥도 잘 짓지 못하지만 죽도 그다지 잘 쑤지 못한다. 사실 호박죽, 팥죽, 그리고 흰 죽이 내가 쑤어본 죽의 전부였다.

'나 주부 맞아?'

 하지만 최근 들어 나는 각종 죽을 쑤기 시작했다.

소고기죽, 야채죽, 전복죽, 잣죽, 녹두죽, 콩죽, 시래기죽, 닭죽 등.

죽을 쑤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인터넷을 열어 조리법을 찾고 각종 재료를 구입하는 것이다. 마트와 시장을 뒤지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각종 죽 재료가 냉장고에 가득하다. 어디 죽 재료뿐이겠는가. 급할 때 쓰려고 사둔 즉석 완조리식품 죽들도 찬장에 종류별로 줄지어 있다. 재료가 준비되어 있으니 이제 죽 쑤는 것은 문제없다.

 

 남편은 급성 백혈병 투병 중, 구십 육 세가 된 친정엄마의 치아는 하나도 없다.

두 사람의 식사는 죽이 최고의 만찬인 거다.

처음에는 멥쌀과 찹쌀을 깨끗이 씻어 두어 시간 담가 두었다가 물을 흥건히 붓고 죽을 쑤기 시작했다. 불린 쌀이긴 하지만 쌀이 익고 죽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죽은 정성으로 쑤어야 한다는데 입맛 까다로운 두 분의 식성대로 매 끼마다 다른 죽을 쑤어 대려면 쌀을 불리는 작업은 생략해야 한다.

 각종 채소를 썰고 다져서 육수 물에 끓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채소들이 익었다 싶을 때 밥 한 공기를 넣고 저어준다.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참기름을 살짝 뿌려주고 나면 채소 죽은 완성!


"오늘도 죽을 준비 했어. 자기가 좋아하는 시래기죽이야."

시래기죽이라는 말에 헤벌쭉 웃는 남편. 따끈한 죽을 먹이고 싶은데 늘 식은 죽만 골라먹는 남편에게 한마디 한다.

"식은 죽만 먹기야? 나에게 죽을 준비 해."


이젠 죽도 잘 쑤는데…….

식은 죽이라도 먹어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달 전.

추석 연휴 동안에도 죽만 먹던 남편이 연휴 다음날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오전에 검사한 X-ray 결과 폐에 이상이 있다며 급하게 입원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코로나 상황은 종식되는 것 같지만 병원 출입엔 여전히 벽이 높다. PCR 검사의 음성결과를 본 다음날 서둘러 입원을 했다. 병원 밥이 싫다는 남편을 위해 각종 죽을 쒀서 1회용 도시락에 예쁘게 담았다. 깨로 하트까지 그려서.

 다음날 이른 새벽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서 중환자실로 가야 될 것 같단다.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간호사는 남편이 가져간 입원 물품을 조심스레 전해준다. 이른 새벽이니 회진하는 의사를 만나려면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한단다. 차에 남편 물건을 갖다 놓고 기다렸다.

그. 런. 데.

이런 상황에 이 무슨 주책이란 말인가. 배가 고픈 것이다. 아침식사를 하러 병원 밖으로 나가려다가 남편에게 싸 주었던 도시락 보따리가 생각났다. 과일이며 음료수까지 하나도 먹지 못한 채 내가 넣어 준 그대로다. 죽 도시락을 열었다. 전복죽 위에 하트 깨가 나를 보고 헤벌쭉 웃는다. 죽 먹을 때마다 웃어주던 남편 얼굴이다.

무심한 사람.

꾸역꾸역 죽을 입에 꾸겨 넣었다. 눈물에 말아먹는데 식은 죽 맛이 좋다.

'이렇게 맛있는데... 이젠 죽도 잘 쑤는데…….'


 대기실에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의사가 급히 보호자를 찾는다. 혈증으로 온몸에 균이 퍼졌단다. 심폐소생술이 환자에게 의미가 없노라고 마지막 인사를 권유한다.

 때마침 독일에 있는 딸에게서 보이스톡이 왔다. 대학원 기숙사가 나와서 계약하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탔단다.

 "딸내미, 얼른 페이스톡을 해. 그리고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장 빠른 방법으로 한국에  동생이랑 와라.”

 잠자는 아들도 깨워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했다. 의식이 없어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갑자기 눈을 떴다. 기다려달라는 딸과 아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들썩이더니 눈물까지 흘린다.


그렇게 그 사람은 갔다.


사망신고를 하니 여기저기 남편과 관련된 곳에서 연락이 온다.

뭐부터 해야 하지? 각종 공과금이나 은행 관련 일은 남편이 도맡아 해 온 터라 모든 것이 서툴고 낯설다.

 “에고 그것도 못해? 진짜 죽 쑤고 있네.”

전에는 죽을 잘 쑤려고 인터넷을 뒤졌는데 이젠 죽 쑤고 싶지 않아 인터넷을 뒤지며 남편의 사후처리를 하고 있다.


“오늘도 죽을 준비 했어?”

남편의 물음이 내게 질문이 되었다. 그냥 죽어서는 안 된다고, 남겨진 이들을 위해서라도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얀 백지를 꺼내놓고 곱게 잘 써지는 펜을 하나 골랐다. 그리고 거기에 죽을(死) 준비를 한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엄마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엄마가 너희를 위해 남긴 것은 없지만…….”

평소 하지 못했던 말, 내 죽음 이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


난  오늘도 ‘죽을 준비’를 하는 여자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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