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것은, 그것도 연년생으로 키우는 것은 키워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울 때 1만큼 힘들다면, 연년생 둘을 키울 때는 2만큼 힘들어야 하는 게 맞는 이치 아닌가. 하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힘듦은 3만큼, 아니 그보다 더 높으면 높았지 결코 그보다 낮지는 않았다. 난 어릴 적부터 부모님이나 동네 사람들한테 착한 아이로 불렸다. 그래서 내 이름 '김정해' 대신 '김착해'로 불릴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나를 참 착한 아이라고 착각하며 살았다.(이런 생각을 한 걸 보니 안착했네. ) 아무튼 그랬던 내가 연년생을 키우며 내 속에 숨어있는 '악마성'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난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었구나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한 번도 큰 소리를 질러 본 적 없던 내가 천사 같은 아기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을 바르게 훈육해야 한다며 준비했던 '사랑의 매'로 방바닥을 무수히 내리쳤으니… 나는 이미 내게서 '악' 을 무수히 경험하고 있었다. 큰아이와 둘째의 터울은 16개월. 한창 활동이 왕성해진 첫째는 집안의 모든 물건에 호기심을 보였고 그래서 꼭 확인을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항상 안고 다니는 곰돌이 푸우에게 자기가 먹는 밥을 나눠먹겠다고 밥풀 투성이를 만들어 놓고, 그것도 모자라 젖을 먹어야 하는 신생아에게도 밥을 떠먹이려 했다. 돌 때부터 걷기 시작하더니 방을 그라운드 삼아 여기저기 활보하고 다녔다. 동생도 인형으로 여기는지 누워있는 아기 배를 마구 넘어 다니려 했다. 심지어 점프를 하려고 하다니... 가장 힘든 것은 둘의 취침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첫째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저녁형이라면 둘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아가였다. 그러니 엄마인 나는 둘째가 깰 때(아침 5시) 같이 일어나서 첫째가 잠드는 때(밤 12시)에 얼른 뒷정리를 하고 잠을 자야 했다. 중간에 한두 번 깨는 둘째 때문에 5시간의 잠도 충분한 숙면이 되지 못했다. (이보다 더 힘든 이야기들(?)은 본론에서...)
그래서 나보다 3년 먼저 연년생을 낳아 키우는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연년생을 키우는 게 왜 이렇게 힘들어? 도대체 언제까지 힘들면 나아지는 거야?
언니의 대답을 듣지 않을걸 그랬다. 아무렇지 않게, 아니 체념한 듯 충고하는 언니의 말이 너무 무서웠다.
"나아지기를 바라지 마. '연년생은 갈수록 힘들다.' 라고 생각하며 키우는 것이 속편하니까 ."
Oh my gosh!!!
하지만 언니 말이 틀렸다. 나는 딱 3년 정도 힘들고 그다음부터는 아주 편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언니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언니 말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으니까. 그리고 '연년생 키우기' 공부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