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만 해도 여러 가지 변화들이 버거웠는데 어느새 익숙해지고 금세 이것들의 변화를 거부하려 한다.
많은 삶이 바뀌었다. 3년 만에 군 제대 후 자취를 하려니 조금 불안했고, 서울 물가와 과제, 수업, 생계형 알바몬의 살인적인 스케줄에 눌려서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배달음식 자체보다 주문 이후 기다리는 어정쩡한 시간이 싫어서 잘 시켜먹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배가 고프면 배달어플부터 켜본다.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을 때는 편의점 샌드위치로 한 끼를 때우기 일쑤다.
이런 일상이 길어질수록 살은 찌는데도 어딘가 속은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달라진 세상에 적응도 그럭저럭 해 나가는 것 같고 삼시세끼 꼬박은 아니더라도 저녁과 야식 두 끼 정도는 우직하게도 먹어나가는데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음식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뭘 먹었는지 허전하다.
학창 시절부터 농구를 거의 매일 해왔다. 경기력은 그날그날 기복이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벽에 막힌 기분이 들 때는 언제나 기본기를 다지곤 했다. 기본기를 다지고 나면 엉켰던 동작도 정리가 되고 거짓말처럼 경기가 잘 풀렸다. 벽에 막혀버린 것 같은 내 소화기관과 생각을 정리하려면 건강한 몸 상태가 따라와 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좋은 음식이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 중의 기본이 되는 밥, 집밥 도심 속의 [가마솥 손두부 사당 본점]에서 만나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던가, 쌀이 들어가는 든든한 한 상차림이야 말로 진정한 한 끼를 위한 기본이다. 전 국민의 기본 메뉴이자 가능하면 잊을만하면 생각나는 메뉴, 해물순두부이다. 이곳은 전국의 가마솥 손두부의 본점이다. 본래 속편은 본편만 못하다 했다. 고민하지 않고 본점으로 달려갔다. 동해에서 공수한 해수를 사용하여 전통방식으로 만든 손 두부를 맛볼 수 있는 두부요리 전문점이다.
도심에서의 집 밥 한상. 내부는 뚝배기가 무척이나 어울릴 것 같은 전통형식으로 꾸며놨다.
원래 순두부 맛집을 가면 흰 순두부를 먹어보라는 얘기를 늘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나 보다. 십 분의 고민 끝에 정석대로 빨간 해물 순두부를 시켰다.
순두부찌개만 있어도 밥 한 공기가 뚝딱인데, 반찬이 다섯 가지나 나온다. 진짜 집에서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을 먹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엄마 반찬과 노하우
반찬의 조합도 밸런스가 잘 맞았다. 심심할 수 있는 순두부 보필하듯 다양한 심각과 짭짤한 김치, 봄나물까지. 과하지 않고 적절한 종류로 순두부의 맛을 한 층 더 끌어올려준다.
여기에 순두부까지 나오자 잘 맞춰진 한 벌 옷처럼 식탁이 완성됐다. 노하우가 상당하다. 집밥이 먹고 싶었던 필자에게는 이런 소박한 반찬이 너무나 반갑다.
어머니는 흰쌀밥이 몸에 안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흑미를 섞어 주셨나 보다.
본격적으로 먹방을 시작했다. 사실 나는 해산물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빨간 해물순두부는 순두부계의 바이블 같은 거다.
해산물은 싫어하지만 해물찜은 좋아하고, 미역국에 들어간 도미는 싫지만 회로 먹는 도미는 최고인 뭐 그런 거다.
특이한 점은 조개뿐 아니라 굴이 들어간다. 그것도 잔뜩. 심지어 새우는 두 마리나 있다! 바지락 한 두 개, 작은 새우 하나로 때운 다른 집과는 좀 다르다.
굴이 어디에나 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뒤적이면 굴 반 두부 반일 정도로 굴이 들어가 있다. 해물파전에서 해물 찾기 같은 느낌이 아니다.
크게 한 숟가락 떠서 밥과 비벼서 먹었다. 부모님은 이렇게 먹으면 혼내시겠지만, 지금은 나 혼자 뿐이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자유롭기보다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거 보니 조금은 철이 드려나 보다. 음식을 먹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당연할 것 같던 가족들과의 한 끼 식사가 이제는 한 달에 한두 번 조차 시간을 맞춰야 가능해졌다는 사실이 가슴이 쓰리면서 한편으로는 그래도 바쁘게 잘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 잡는다.
음식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좋은 생각들이 들고 이 좋은 생각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은 행동들이 따라온다. 지금 먹은 순두부는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음식 일 수도 있고 집밥의 맛이 기준이 된 누군가에게는 생각보다 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에게는 멀리 있는 고향이, 연인과 먹었던 추억이,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리움이 될 수도 있다 음식을 통해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금 나아갈 수 있도록 무엇인가를 불어넣어주는 것 또한 음식이다.
근사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하고 기본기 갖춘 한 끼가 필요할 때, 집 밥만 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