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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 May 03. 2020

재생: 다시 펼치고 날리는 종이비행기

잃어버렸던 비행기에 맛과 멋을 담아 날리다, '누구랑'

작년 이 맘 때쯤, 집 앞 놀이터를 지나가다 종이비행기 하나가 제 앞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기와 함께 어린아이가 허겁지겁 달려오더군요.

다 큰 어른 앞에 떨어져 조금은 무서웠던지, 바로 줍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아이를 보고 얼른 주워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꾸벅 인사하는 아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바로 돌려주려던 찰나, 꼬불꼬불 종이에 적힌 몇 글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


아이의 소중한 기억이 담긴 종이를 얼른 돌려주고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하는데, 마음속에 접어두었던 무언가가 다시 꿈틀대는 느낌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잃어버렸던 종이비행기들이 다시 펼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종이비행기는 저만의 원고지였습니다.

형형색색 접은 종이비행기 안에 저와 친구들, 엄마 아빠 그리고 당시에 좋아하던 여학생까지 다양한 피사체들이 주제 거리가 되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 작은 세상에서 때로는 멋있게 세상을 구하는 영웅, 싸움을 잘하는 정의로운 남자, 망망대해를 항해하며 보물을 찾아다니는 선장까지 다양한 주인공들이 저만의 세계에 등장하곤 했죠. 

다 접은 종이비행기는 항상 동네 뒷산에서 날려 보내며 저만의 콘서트를 개최하곤 했습니다. 빼곡히 적힌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사는 것이 재밌을까 생각하며 날리고, 주워와 다시 날리곤 했어요. 이때부터 글을 쓰는 게 마냥 즐거웠고, 날려 보냈던 종이비행기들을 제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매주 개최했던 저만의 콘서트는 뒷산이 없는 곳으로 이사 가면서 한 달에 한번, 수능을 준비하면서 일 년에 한 번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직장인의 길을 택하면서 완전히 없어지기에 이르렀죠. 글을 쓰기 위한 상상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바빴습니다. 학교 시험도 봐야 하고, 친구들과도 놀아야 하고, 회사 업무와 회식도 열심히 해야 하니 어느새 어릴 적의 종이비행기 콘서트는 사라졌고, 저도 작가로서의 꿈은 마음속의 창고에 자연스럽게 봉인하기 시작했습니다. 


포기해야 할 건 포기할 줄 알아야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어린아이가 무심코 던진 종이비행기 하나는 그 닫혀 있던 창고를 연 기적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없어진 줄 알았던 작가로서의 꿈은 마음속 격납고의 종이비행기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죠. 마음의 문을 열자마자 비행기들은 먼지 냄새 풀풀 풍기며 서로 날려 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고, 낮에는 숫자를 다루는 회사원, 저녁에는 글쟁이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더 이상 쓸 수 없는 비행기들이 많아 난감했습니다. 제가 영웅이 아니기에 영웅담을 담은 비행기는 구식이 되었고, 좋아하던 여학생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기에 격납고에서 영원히 꺼낼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죠. 그렇다고 뜬금없이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보물을 찾는 어릴 적 선장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상상 속의 세계를 담기에는 제가 너무나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유년기의 상상 대신, 어른들의 삶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는 작가로서의 길을 택하고 브런치에 작년부터 담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삶 속에 담긴 맛있는 음식, 좋은 숙소에서의 휴식 이야기를 소개하는 '누구랑'으로서 10년 동안 지금도 쌓고 있는 즐거운 추억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이 좋은 맛과 멋을 느낄 수 있을 때의 희열이 있기에, 음식과 숙소 큐레이터 및 작가로서의 삶은 매일매일 짜릿함과 설렘의 연속입니다. 

 

긴 세월을 거쳐, 잃어버리는 듯했던 종이비행기들을 어렵게 다시 날리고 있기에 글 하나하나가 서툴기 짝이 없습니다. 맞춤법 검사를 할 때, 비슷한 분야의 다른 글들을 볼 때 작가분들의 내공에 감탄하고 스스로에게 민망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훌륭한 맛과 편안한 휴식을 글을 통해서 느꼈으면 하는 소망은 똑같기에, 오늘도 종이비행기들은 동네 뒷산이 아닌 제 방에서, 종이가 아닌 컴퓨터 화면으로 열심히 띄우고 있습니다. 

다시 열은 제 마음속의 종이비행기들이 많은 분들께 좋은 기억으로 남을 때까지, 어린아이가 제게 던진 소중한 선물을 오늘도 더 많은 분들께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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