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에서 나를 구하는 법
한 친구가 있다.
그와 나는 꽤 성향이 다르지만, 그래서 더 상호 보완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20년 넘는 우정이고, 인성 좋은 친구다. 그는 평범한 것 같지만,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았던 경쟁적이고 우울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성인이 되어서도 가정불화가 종종 일어나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홀로 버젓이 내로라하는 전문직 사회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사회적인 성취 이외에 감추어지고 채워지지 못한 이면의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겉으로나마 그렇게 잘 사는 걸 보면, 그 원천은 무엇일까.
그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욕심, 시기, 질투, 그리고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삶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 강하게 있었다고 한다. 그게 기반이 되어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았고, 도전했으며, 나름의 성취를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패들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현재 그의 모습은 비혼주의자에 홀로서기가 완벽히 되어 있는 중년의 사회인이다.
그는 또한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러면서 그는 늘 뭔가를 갈구했고, 현재도 위로 위로 올라가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는 늘 현재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낀다며 만족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보이는 모순이 종종 엿보인다. 그는 늘 이루지 못한 것들과 앞으로 바라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마음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고, 교회당에서 늘 주께 기도 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음의 안식을 찾고, 아직도 남들과 열심히 비교하며 시기하고 질투도 하지만, 그게 어쩌면 자연스런 인간의 본래 모습이며 삶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받아들인다고 까지 말했다. 그가 적어도 불행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와 나는 서로 '비교' 라는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
한편 정신적으로 성숙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기본 본성인 시기와 질투에서 최대한 멀어진 삶을 살아야 행복한 삶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어쩌면 일종의 '내려놓음'이나, 자존감을 지키며 삶을 좀 더 관조적으로 살아가라 권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나도 그런 삶을 지향하며, 수많은 '내려놓음'을 몸소 실천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한때 가까이 지냈던 모 회사 선배, 정확히 말하면 옛 직속상사의 연봉을 알게 되었다. 나이와 근무 연차로 치자면 10년도 채 차이나지 않지만, 나와 그의 경제적인 지위 차이는 10배 아니 20배, 그 이상이었다. '와르르' 자신감이 무너지고 급 우울해 지는 지점이 찾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인사철마다 초고속 승진을 하여 명실공히 회사 최고경영진이 되었고, 나는 거의 그대로 정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내가 그런 사회적 성공을 통한 물질적 차이를 비교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소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그저 자연스럽게 각자의 삶으로 여겨지며,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던 그 경제적 차이가 오늘 문득 그런 넘사벽의 회사 경영진과 굳이 나를 비교하게 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최근 나의 자존감이 한참 바닥을 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비슷한 사회적 공간에서 살아가는 타인과 성취면에서 차이를 본의아니게 자꾸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나도 소위 말해서 놀지않고 뭔가를 열심히 추구하고 실행하면서 살았지만, 최근 안팎으로 크게 암초에 부딪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해 남들은 대부분 아무 문제없이 승승장구하며 자기 자리에서 일가를 이뤄가고 있는 것으로만 보이니,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점점 조급해지고 초조해졌으리라.
모두 각자의 삶이 있고, 감내해야 할 몫이 따로 있기 마련이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것도 너무 유약하고 간사한 사람인지라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로 인해 수시로 약해진 나의 멘탈을 비집고 스멀스멀 '비교' 라는 늪에 빠지고 만다.
그것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것 쯤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자존감 때문인지, 한껏 늘어진 요즘 무더위 탓인지 좀체로 회복할 마음이나 계기가 생기지 않는다. 이대로 과연 괜찮을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근심,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 상태에서 발전과 성장까지는 욕심이고,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나는 스스로를 칭찬할 만한 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누군가 나에게 왜 사는가? 묻거든 그저 하루 하루 버티며 묵묵히 그냥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 줄 뿐이다. 내가 가만히 있던 발버둥을 치던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결과가 같은 것이라면 그냥 순응하고 최소한의 에너지로 버티는 삶을 택하는 게 현명한지도 모르겠다. 마치 다가올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겨울잠 자는 동물의 모습과도 같이.
결국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인생의 몫이다.
어쨌든 내 오랜 친구는 남들에 대한 시기, 질투, 끊임없는 비교가 그를 여기까지 살아오게 한 삶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로 인해 그도 때로는 마음이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것 또한 긍정적으로 승화하며, 자기 발전에 애를 써 왔노라고 말이다. 이토록 남과의 비교가 인생의 긍정 에너지로 승화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영혼을 갉아먹는 쥐새끼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실 멘탈이 흔들리고 뭔가 풀리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비교의 마음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다. 그래서 평소에는 언감생심 관심도 없던 넘사벽의 사람들한테까지도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고, 내 삶에 그저 충실하던 모습은 내동댕이 치고, 남들의 삶에 좌지우지 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애써 남과 비교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마음이 문득 올라왔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는 마음 자세가 절실하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나는 틈 날때 마다 ‘마음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나만의 명상이나 독서, 가벼운 숨고르기 등 시간을 굳이 정해놓지는 않더라도 어디서나 그런 실천을 하기로 다짐한다. 그러면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다양한 인생 스토리와 내면의 충만함을 얻게 되지는 않을지. 그래서 잃었던 내 인생의 방향계를 다시 찾아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