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두 codu Nov 07. 2023

넓고도 좁은 얕고도 깊은,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걸어도 걸어도>(2008)

영화의 무대는 요코야마 의원과 이어진 가정집, 그리고 동네 주변의 몇몇 장소가 전부다. 조부모와 손주들까지 온 가족이 모인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기에 집은 결코 좁지 않다. 가족들이 쌓아 온 해묵은 기억과 감정이 일상적인 대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빈 방에 박혀 먼지 쌓인 짐처럼 가족의 역사는 차곡히 쌓여가고 쉬이 정리되지 않는다. 떨어져 나간 타일들처럼 다시 붙이기도 어려운 것이다.

어두운 화면에서 모녀가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로 영화는 시작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음식을 준비하고 정리하며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영화의 중심 장소는 부엌이 되고 중심인물은 부엌의 책임자인 어머니 토시코가 된다. 사소하고 날카로운 대화는 이 영화의 핵심이다. 어머니 토시코는 료타와 결혼한 유카리가 애 딸린 과부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감독 자신의 어머니를 반영했다고 하는 토시코는 자신의 아들이 하필이면 ‘남이 쓰던 것’과 결혼했다고 아쉬워한다. 이 날카로운 말보다 무서운 것은 친절로 덮은 증오다. 요코야마 가족의 장남이었던 준페이는 10년 전 요시오라는 아이를 구하다 목숨을 잃었다. 두 남매의 가족이 모인 것도 준페이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토시코는 기일에 언제나 요시오를 부른다. 곧 대학을 졸업하는 요시오는 변변한 직업을 얻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매년 체중이 늘어가고 있다. 요시오는 매년 준페이의 집을 찾아 목숨을 구해준 감사를 전하고 자신의 변변찮음을 사죄한다. 요시오를 그만 부르는 게 어떻냐는 료타의 말에 토시코는 “증오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년에 한 번쯤 고통스럽게 한다고 해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그렇다. 토시코는 부엌 식탁에 앉아 뜨개질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과 나긋나긋한 말투로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억눌린 증오와 상실의 슬픔은 무더웠던 여름의 영화를 서늘하게 만든다.


아무도 모르는 어머니만의 마음이 있고, 부모도 모르는 자식들의 사정이 있다. 각자가 그리워하는 사람과 시절의 모습이 다르다. 새로이 가족이 되기도 하고, 가족이면서도 더 이상 가족이 아니기도 하고, 곁에 없지만 영원히 가족이기도 하다. “서서히 들어오는” 그런 가족도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언제나 조금씩 엇갈리는 걸음과 마음속에서 가깝고도 먼 가족의 거리를 가늠해보려 한다. 넓고도 좁은, 얕고도 깊은.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식 가족 영화의 시작점 같은 작품이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엄마가 떠나고 남은 아이들에 관한 사회 문제를 관조했다면 <걸어도 걸어도>를 시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는 가족이란 어떻게 구성되고 분열과 통합이 이루어지는지를 다룬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류애의 범위를 넓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