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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SIA Dec 15. 2021

<공상가들>

1부- 2094 연쇄 살인 사건

출처 : ebs story 블로그
Imagine Dragons - Radioactive

Believer/ Thunder/ Warriors 등 파워풀하고 시원한 보컬로 매 앨범마다 실험적인 음악을 선보이는 Imagine Dragons는 이미 국내에서도 ‘상상용’이라 불리우며 팬을 여럿 두고 있다. Radioactive 라는 곡은 <공상가들> 프로그램 말미 2부 예고편에서 bgm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하는데 아포칼립스와 같은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 특히  ‘i’m breaking in, shaping up then checking out on the prison bus’ 라는 가사는 2부의 주제인 ‘미래 화성 교도소 폭동 사건’과도 절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으로 제작진의 아주 적절한 선곡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SF 소설가 김초엽의 작품 중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으로는 <관내분실>이 있다. 엄마라는 존재를 도서관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지만 사라져 버린 책, 관내분실된 책에 비유하는 이 단편 소설 속에는 흥미로운 미래 과학기술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마인드 업로딩. 주인공 지민이 살고 있는 세상에는 사망한 이들의 기억을 데이터로 저장하고 고인의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띄워서 얼마든지 재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가 그리우면 백골당이나 묘를 찾아가듯이 미래의 인간들은 고인의 데이터가 저장된, 일종의 도서관과도 같은 시설을 찾아가는 것이다. 마인드 업로딩 기술이란 건 이 소설을 보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이 예견하듯 2040년 즈음에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기술이라고 하니 그리 허황된 된 소리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EBS <공상가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이보다 더 먼 미래로 나아간다. 2094년. 이 시대에는 더욱 발전한 마인드 업로딩 기술로 더미라는 인공 신체에 의식을 옮길 수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은 모든 질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된 셈이고, 원한다면 영생을 살 수도 있다. 여기서 프로그램 패널들은 한 가지 논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시대가 오면 인간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질병이 사라진다고 해도 정신적인 질환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이 여러 신체를 오갈 수 있기 때문에 자아 정체성이 불분명해지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책임감이나 죄의식, 도덕의식도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줄어드는 사망률로 인한 인구 팽창 문제가 미래의 주된 문제로 봉착할 수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 억제 정책이 시행될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세상이 온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애초에 세상에 완벽한 과학 기술이란 없고, 어느 하나를 위해서 또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현재나 미래에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복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유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한계인 죽음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 같다. 모든 인간에게 종속된, 유한한 시간이란 한계가 사라진다면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마저 사라져 버릴 테니까.


출처 : ebs story 블로그

1부 에피소드는 2094년에 등장한 연쇄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다뤄진다. 20대 초중반 신원 미상 여성들의 시체가 연달아 발견된 것인데 사건의 전말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미래 현실에 절망했던 마인드 업로딩 서비스 회사 ‘이터널 라이프’의 CEO 리사 연이 이 기술을 활용해 자신의 의식을 주입한 여러 복제인간을 만든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다섯 명의 여자 복제 인간 그리고 한 명의 남자 복제 인간을 만든다. 이들은 정신질환 치료소인 MTD에 다녀야 할 만큼 정신적인 문제를 앓고 있었는데 특히 남자 복제 인간의 경우 두뇌는 여성이지만 더미는 남성이었기 때문에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남자 복제 인간이 자신의 불행이 리사 연의 갈망과 실험으로 불거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세상의 리사 연은 오로지 한 명이어야 한다는 일념 하에 다른 복제인간들을 살해하게 되었고, 마지막 목표였던 리사 연에 대해서는 살인 미수에 그치게 된다.


이와 같은 결말에 출연진들의 논의는 복제인간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도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더 깊게 파고든다. 엄격히는 자기 자신의 복제인간을 살해하는 것이 죄가 되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2090년대에는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의식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에 입력된 본래의 데이터는 악의적으로 세상에 복제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삭제를 하도록 입법되어 있는데 이를 어길 시에는 살인보다 무거운 형량의 불법이 성립하도록 상정되었다. 때문에 무단으로 인간을 복제한 리사 연의 경우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죄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자 복제 인간의 행위에 대해서는 입장이 갈렸다. 장동선 뇌과학자는 복제인간은 법에서 말하는 인간이 아니라고 보았다. SNS 계정에 주인이 자신의 모습을 마음대로 업로드하고 삭제할 수 있는 것처럼 미래에는 우리의 의식을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원래의 인간이 복제된 자신의 모습을 죽이는 것도 엄연히 불법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반면, 김윤희 프로파일러는 복제인간도 충분히 인간의 개념으로 성립할 수 있기 때문에 복제인간을 죽이는 것도 살인으로 보았다. 이는 복제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보다는 인간의 의식이 육체에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하면서 구별적인 개체로서의 자아가 성립하게 되면 그들도 하나의 인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처럼 첨예하게 갈리는 양 쪽 주장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의 입장은 김윤희 프로파일러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법이 어떻게 정립되느냐는 단순히 사후 처벌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도덕적, 윤리적인 기준점을 형성하는 요인이 되므로 복제인간 살인을 불법으로 보지 않게 된다면 복제인간을 인간보다 하등적인 신분이나 계급으로 취급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복제인간을 대상으로 한 심각하고 무분별한 범죄가 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장동선 뇌과학자의 말처럼 복제인간을 하나의 인간임을 증명하는 구체적인 기준이나 검증방법 자체가 확고하지 않다는 문제가 필연적으로 뒤따라 오게 될 것이다.


평소 <크라임씬>과 <대탈출> 시리즈처럼 미스터리한 사건을 마치 실제처럼 리얼한 세트장으로 구현하고 시청자들이 함께 몰입해서 추리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들을 즐겨보는 편인 나에게는 테서렉트를 통해 미래에서 벌어진 범죄 사건을 조사하는 범죄분석관의 기억을 재현한다는 <공상가들>의 설정 자체나 XR 기술을 활용한 생생한 비주얼이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박해영과 이재한이 나눴던 무전처럼 미래에 일어날 범죄 사건을 해결해달라는 일종의 신호 같기도 해서 마음 한 구석이 괜히 비장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케이스 브리핑 때 출연진들이 주고받는 대사들이 연기를 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웠던 점이 아쉽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는 해당 사건을 완전히 시각적인 이미지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타 방송사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나 <당신이 혹하는 사이>라는 프로그램처럼 하석진 배우의 이야기로 조금씩 풀어나간다는 점이 좋았다. 말과 말 사이의 호흡이 주는 긴장감이 있고,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말로 전해 듣는다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시청자의 상상력을 훨씬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아직 1부만 방송되었지만 <공상가들>은 35분가량의 짧은 러닝타임에도 알찬 내용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머지않아 미래의 새로운 과학 기술이 우리 인간에게 가져올 영향력과 그로 인해 생겨날 새로운 범죄 유형들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가’하는 철학적인 논제로도 깊게 파고드는 것. 기존의 김초엽의 SF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서 각광받았던 것도 이와 같은 밀도 있는 질문들을 던지며 독자들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인간에게 유용한 과학 기술이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최근 아파트 월패드 해킹 사건이 보도되기도 했는데 이 시스템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컨퍼런스에서도 이와 같은 보안 문제의 가능성이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철저한 대비를 소홀히 했던 것이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것 같다. 미래는 지금보다 차원이 다를 것이다. 기술이 더욱 발전하는 만큼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과 같은 민감한 문제와도 직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빠른 변화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오늘날, 머나먼 일이라 여겨졌던 미래를 현실감 있게 감각하게 하고 조금 더 위기의식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공상가들>과 같은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논의가 사전에 제대로 뒷받침되어 있을 때 위와 같은 미래의 범죄 사건과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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